내년 2월8일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당권·대권 분리 논란이 한창이다. 당내에서는 아직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적으로 밝힌 사람은 없지만, 당 안팎에서는 문재인·박지원·정세균 의원이 당대표 후보로 거론된다. 본인들도 간접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가운데 당권·대권 분리 원칙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는 박지원 의원이다. 박 의원은 11월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의 승리를 위해서는 당권과 대권의 분리가 적합하다. 이것은 당과 국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강력한 당권 경쟁자인 문재인 의원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당권·대권 분리 원칙을 들고나왔다는 분석이 많다. 대체 당권·대권 분리가 뭐기에 이러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일까.
당헌에는 분리 명시돼 있어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금까지 일종의 정치 쇄신책으로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 한 명의 대권 주자가 당권까지 장악할 경우 다른 대선 주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공천권을 가진 당대표가 대권에 도전하게 되면 의원들이 해당 대선 캠프에 줄 서기를 하는 등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정치 개혁 차원에서 당권·대권 분리 논리가 나온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새정치연합과 새누리당의 당헌에는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 마련돼 있다. 새정치연합 당헌 제25조에는 “당대표 및 최고위원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때에는 대통령 선거일 전 1년 전까지 사퇴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새누리당 당헌 제93조에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자는 상임고문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대통령 선거일 1년6개월 전에 사퇴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대선이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근거로 잠재적인 대권 주자의 당권 도전 자체를 막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많다. 대권 주자가 대선 1년 전에만 당직에서 사퇴하면 당헌상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11월1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그때(대선 1년 전) 가서 그만두면 된다. 지금 대권 후보니 당권에 나가지 말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박지원 의원의 당권·대권 분리 주장을 일축했다. 문재인 의원도 11월20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아직 대선을 말하기에 까마득한 시기고, 국민들에게도 와닿지 않는다. 배 바닥에 구멍이 뚫려 물이 차오르는 상황인데 당권·대권 분리 문제는 국민들 보기에 한가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최창렬 교수는 “지금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당권·대권 분리는 한국 정당의 발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강한 당권 주자를 배제하며서 자신이 당권을 차지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권·대권 분리는 실질적으로는 일종의 당내 역학 구도의 문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당권이든 대권이든 정치만 잘해주면 되기 때문에 그 문제는 자신들의 권력다툼의 일환일 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도 “새정치연합 안에 당권·대권을 분리할 만큼의 자원이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 상황에서는 당 조직의 능력을 최대화하는 방법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당장 자기들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베스트 초이스’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2년 새누리, 한 사람을 위한 개정일부에서는 당권·대권 분리 원칙이 아예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차기에 국가를 운영할 대선 주자라면 우선 당내에서 리더십을 평가받는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새누리당의 경우 2012년 박근혜 당시 의원이 당대표의 권한을 갖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기도 했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전 새누리당)은 ‘모든 당직자는 대통령 선거 1년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당헌에 대해 “비상대책위원장 및 위원은 예외로 한다”는 예외 규정을 추가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박근혜 당시 의원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기기 위한 자구책으로 사실상 한 사람을 위한 당헌 개정이었다. 이전부터 원칙적으로 당권·대권 분리를 강조해왔던 박근혜 당시 의원에게는 다소 민망한 당헌 개정이었으나, 그는 이 예외 규정을 통해 비대위원장직을 맡으면서 당명을 개정하는 등 정당 이미지 쇄신과 2012년 총선을 승리로 이끄는 등의 리더십을 보인 끝에 결국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대통령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이른바 ‘아웃사이더의 급부상’이다. 정치권에 얼굴을 디밀지 않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혜성같이 등장해서 판을 흔드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아웃사이더가 좋은 결과를 빚었는지 따져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유권자에게 판단을 내리고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근거를 주지 못했고, 일종의 인기투표 성격이 강했다. 대권에 출마하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을 끌고 가면서 정치력도 보이고 성과를 내며 대선 국면에서 일종의 포인트로 삼아야 하는 측면도 있다. 원칙론에서 당권·대권 분리 규정이 굳이 필요하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재인 의원, 리더십 보여줘야 할 시기”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도 같은 의견을 내왔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 자체가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당대표라는 것이 대통령 선거에까지 나가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의지를 가지고 뭐라도 좀 해볼 수 있는 것인데, 그런 목표에 대한 동기부여도 없이 직책상으로 대표직만 수행하라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당대표에게 (대선 주자로서) 어느 정도 이익이 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다른 대선 주자와 기계적으로 형평성을 맞추는 문제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문재인 의원이 새정치연합의 ‘해법’이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본인이 대선 주자로서 책임지고 당을 운영해보겠다는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것을 막아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문재인 의원의 경우 대선을 3년 앞둔 시점에서 그동안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던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내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복경 선임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당 하나 운영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국가를 운영하겠나. 광역단체장을 맡았다면 어느 정도 조직 운영 능력을 평가할 근거가 생기지만, 지금 국회에 있는 분들의 경우 국가 운영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무엇을 가지고 검증해야 하나. 냉정하게 말해서 문 의원이 지금까지 보여준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라도 보여줘야 한다. 만약 (당을 이끌면서) 상처를 입어 (대선에) 못 나가게 되면 그것이 자신의 능력인 것이다. 초선 의원이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 않고 바로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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