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에 이어 법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 밖으로 밀어냈다. 1989년 창립 이후 10년은 불법노조였고, 1999년 합법화 이후 지금까지 15년은 합법의 테두리 안에 서 있었다. 지금 전교조는 ‘노조 아님’ 혹은 ‘법외노조’라는 정체불명의 회색지대에 던져졌다.
‘효력 정지’ 결정한 같은 재판부가지난 6월19일을 기점으로 상황은 정확히 2013년 10월24일, 원점으로 돌아갔다.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법외노조’라고 통보한 날이다.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이 법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6만 조합원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문제 삼은 해고자는 9명. 0.015% 때문에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다. 해당 규약은 이미 14년 전에 제정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는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1심 판결 선고 때까지 노동부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8개월짜리 ‘인공호흡기’를 달아준 데 불과했다. 같은 재판부는 지난 6월19일 본안소송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실제로는 노조이나, 법적으로는 노조가 아닌 기이한 처지가 됐다. 노조 전임자 72명은 7월3일까지 학교로 복직해야 하고, 노동조합이란 명칭도 쓸 수 없다. 전교조는 “사법부에 정의와 상식을 기대했지만, 사법부 스스로 행정권력의 시녀임을 고백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교육 현장은 일대 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법적 논란은 그보다 한참 더 먼 과거인, 1980년대로 돌아갔다. “이번 판결로 인해 사법부와 민주주의의 시계는 정확히 1988년으로 후퇴했다.” 전교조 공동변호인단인 신인수 변호사의 말이다. 일찍이 노동조합법(노조법)에는 정부가 임의로 노조에 해산을 명령할 수 있는 조항이 있었다. 대표적인 노동악법이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이 조항은 삭제됐다. 그런데 다음해 노태우 정부가 ‘법외노조’ 통보 조항을 부활시켰다. 이름만 바꿨을 뿐, 사실상 행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 노조를 법 밖으로 밀어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국회 입법 논의도 거치지 않은 시행령에 불과했다. ‘노조 설립신고서에 누락되거나 허위 사실이 있는 경우, 정부가 시정을 요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뼈대다. 이게 바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이다.
신 변호사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시행령으로 국민의 권리·의무를 제한하는 건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하위 법령인 시행령이 법 위에서 춤추며 법률을 무력화하는, 이른바 ‘법 위의 시행령’ 논란이다. 전교조는 이 조항 등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노조법에 어긋나는 규약을 허위로 제출해 노조 설립신고를 했는데도 시정 명령이나 벌금 이외에 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실체 없는 노조가 난립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정적으로 전교조가 1999년 합법화를 앞두고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포함하는 규약을 제정해놓고도 일부러 신고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사실과 다르다. 당시 대의원대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규약 변경 사항이라 신고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교사로서의 특수성 있다” 이유 덧붙여이 밖에도 재판부는 법의 형식 논리에 철저할 정도로 충실했다. 노조법 제2조 4항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돼 있다. 전교조는 “헌법에서 보장한 노조단결권을 침해하는 조항”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조항으로 인해 제한되는 노동자의 단결권보다, 노조의 자주성이 확보됨으로써 달성되는 공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실업자나 해직자를 노조원으로 인정하는 초기업단위 노조에 대한 대법원 판례와 달리, 교원노조는 교사로서의 ‘특수성’이 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해직교사 몇 명이 조합원으로 있다고 몇만 명이 속한 조합에 법적 보호를 박탈(법외노조)한다면… 몇 명의 국회의원이 형사처벌까지 받고 의원 자격까지 박탈당한 새누리당부터 법외정당으로 처리하고 볼 일이다.”(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트위터 글) 재판부 논리를 따르면, 전교조뿐만 아니라 다른 노조도 해고자가 단 1명이라도 활동할 경우 언제든지 ‘노조 아님’ 통보를 받을 수 있다. 더구나 9명의 해직은 대부분 전교조 활동 때문이었다. 상문고 부패재단 반대 투쟁을 돕다가, 혹은 2008년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에게 전교조가 선거자금을 대여해준 일과 관련해 노조 간부로서 책임을 지고 형사처벌 받는 바람에 해직된 것이다. 재판부가 해친다는 노조의 ‘자주성’이 뭘 뜻하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까닭이다.
전교조는 일단 즉각 항소하고, 1심 판결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고등법원에 낼 예정이다. 김정훈 위원장은 판결 직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6만 명의 조합원이 해직교사와 함께하는 건 참교육 실천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또 12일째 홀로 계속해왔던 단식투쟁을 16개 시·도지부장으로 확대해 박근혜 정부의 반교육 행태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6월21일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이후 계획을 논의한다.
교육부는 바로 맞불을 놨다. 법원 판결이 난 뒤 2시간 만에 노조 전임자에게 복직 명령을 내리고, 그동안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제공해온 사무실과 지원금 반환(52억원가량)을 전교조에 요구했다. 6월23일엔 시·도교육청 회의를 소집해 후속 조처를 점검한다.
교육부를 앞세운 박근혜 정부와 전교조 간 팽팽한 기싸움이 예상된다. 이 과정에선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진보 교육감 13명이 전교조 응원군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행정법원 판결을 앞두고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들 중 8명은 전교조 출신 교사다.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은 “몇 분 지각했다고 학생을 퇴학시키는 것과 같은 조처”(박종훈 경남도교육감 당선자), “현장에서 땀 흘리는 선생님들의 뜻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판결”(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자) 등 법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교육부의 후속 조처 이행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진보 교육감 13명 중 8명 전교조 출신상급심 판결이 남긴 했지만 사법부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전교조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우선 해고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교원노조법 개정이 시급하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개정안이 올라가 있지만, 새누리당의 반대가 심해 법안 통과가 이뤄지지 않았다. 또 하나 기대를 거는 건 국제사회의 강한 요구와 압박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세 차례나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을 제한한 노조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하는 긴급개입서를 한국 정부에 보낸 바 있다. 영국과 독일에선 해직교사는 물론 은퇴자, 예비교사에게도 교원노조 가입 자격을 준다. 교사의 노동권을 특수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이 특이한 것이다.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최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등 한국 사회가 거꾸로 가고 있다”며 한국에 실태조사단을 파견할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가시밭길을 다시 걸어야 한다면 걷겠다. 몸에 생채기가 나더라도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겠다. 그 길이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변성호 전교조 사무처장은 말했다. 전교조의 발걸음이 무겁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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