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라는 인물이 정치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건 2011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한 달 남짓 앞둔 시점이었다.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그의 지지율이 50%로 치솟았다.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원순 시장을 밀어주자, 지지율 1위의 대선 주자가 됐다. 일거수일투족에 언론이 따라붙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사람들이 주목했다. 그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갖은 ‘주석’이 따라붙었고, 누가 어떤 풀이를 내놓느냐에 따라 정국이 요동쳤다. 가공할 파괴력을 확인한 그의 언어와 행동은, 결국 정치 데뷔까지 이어졌다.
지난 2년여 새 그는 지난해 대선 출마 및 후보 사퇴, 그리고 올해 국회 입성을 통해 현실정치에 입문했다. 지난 11월28일에는 드디어 ‘안철수 신당’의 모태가 될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이하 새추위) 출범을 선언했다. “당연히 지향점은 창당이다. 추진위원회는 그 과정에 있다고 보시면 된다”고 했다.
박 대통령과 다름없는 현실 인식2년 전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일이다. 국민적 성원이 답지하고, 무수한 정치인들이 그를 따랐을 것이다. 직후 선거에선 신당의 대약진이 유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신당의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보는 이는 드물다. 한때 안 의원 쪽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뭘 하겠다는 건진 알겠는데(창당), 아직도 누구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새추위의 명칭을 빼면, 안 의원의 이야기는 사실 익숙한 내용이었다. 11월28일 기자회견문을 보면 지난 3월 현실정치 입문을 선언한 이후 사용해온 논리와 어휘가 반복된다.
대표적인 게 ‘엄중시국론’이다. 안 의원은 이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와 미·일의 반발, 그리고 북한의 핵무장까지 들어 “이런 엄중한 현실 속에서, 우리 정치는 극한적 대립만 지속하고 있다. 우리 정치는 건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3월11일 미국에서 돌아와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할 때도 그는 “현재 북한에서 위협을 하고 있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여야 가리지 않고 협력해서 반드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5월17일 영남권 ‘내일’ 간담회에서는 “우리나라가 점점 더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총체적 위기가 지금 현재 다가오는 중이다. 그걸 이제 국민 대중들이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잔뜩 겁을 주기도 했다.
정치권이 적대적 공생 속에 중도의 공간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비판도 꽤나 낯익은 대목이다. 안 의원은 “세계사에서 기득권과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양극화되었던 냉전은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념·소득·지역·세대 등 많은 영역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거기다 냉전의 파괴적인 유산까지 겹쳐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다. 양당 구도가 ‘정치 실패’를 야기했고 세계사의 냉전처럼 무너져야 하는 체제라는 인식이다. 안 의원은 유래를 ‘87년 체제’에서 찾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제도와 절차의 수준에 정치 행태와 문화가 따라가지 못했다. 금권정치, 보수정치, 밀실정치를 극복하기도 전에 배제와 증오, 이념 과잉의 정치가 자리잡았다”.(5월18일)
그러다보니 안 의원은 ‘한국 정치의 재편’에 방점을 찍는다. 판을 완전히 흔들어 바꾸고 싶다는 얘기다. 그는 새추위의 미래에 대해, “새 정치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 정치의 재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정치의 틀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새 정치를 추진하는 목표”라고 했다.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개선시킬 수 있어야 한다”(5월17일)거나 “정치의 중심 의제를 대한민국의 전반적 구조개혁으로 바꿔야 한다”(5월18일)고 한 것과 연장선상에 놓인 언급이다.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도와 양비론 사이에서안 의원은 그동안 이 지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혁명적 변화의 주체나 자신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마 선언 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3월11일)던 그는 당선 직후까지도 “지금까지는 선거에 집중했다”(4월24일)며 유보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후 ‘그릇 만들기’로 묘사된 그의 창당 이론은 과연 실체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했다. “제가 먼저 그릇을 만들고 사람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좋은 분들을 먼저 만나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공유되면 그분들과 함께 같이 그릇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좋은 분들을 만나고 서로 교감하는 단계지, 신당은 고민하고 있지 않다.”(7월18일)
안 의원은 자신이 그릇 만들기를 주도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창당보다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적절한 정도의 사람이 모이면 나도 거기에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결정하게 될 것이다.”(8월26일) 창당 과정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치세력화 추진을) 서두르지 않는다. 정치세력화의 문은 국민들께 활짝 열려 있다. 그런 민주적 구조와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다”(9월15일)고 했다. “정치세력화는 시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내용을 담아내고 그만하면 됐다는 평가를 받을 때까지, 내실을 다지고 더 많은 분과 함께하도록 할 것”(9월15일)이라고도 했다.
원칙은 제시됐지만, 누구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오리무중이었다. 안개만 자욱한 채 언어만 난무했던 까닭에, 앞으로 새추위는 ‘이게 새정치냐’며 날아드는 거친 공격도 감수해야 할 판국이다. 특히 인재 영입에 대해 안 의원은 ①생활인으로서 현장에서 전문성을 쌓고 문제의식을 갖췄으며 ②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면서 ③사회구조 개혁에 동참할 의지를 갖출 것 등의 인재상을 제시한 바 있다(5월18일). 만약 기존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소속 당을 떠나 합류할 경우엔 ‘헌 정치’라는 비아냥도 나올 수 있다. 안 의원 쪽은 ‘정치권 출신이라 해서 무조건 배제할 게 아니라 능력과 자질을 갖췄음에도 기득권 구조에서 밀려난 이들은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안철수 의원은 국회 입성 이후 줄곧 차기 대선 주자로서는 지지율 1위를 달리면서도, 그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하기보다는 양비론적 중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올해 초 여야가 정부조직 개편안 통과를 놓고 실랑이를 벌일 땐 “어느 쪽 한쪽은 양보를 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어느 한쪽이 대승적 차원에서 정치력을 발휘해서 모범적으로 푸는 쪽이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3월11일)고 했다. 복지 논쟁의 핵심인 증세에 대해서도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9월15일)는 묘한 제안을 했다. 이번 새추위 출범 선언에서도 그는 “보편과 선별의 전략적 조합을 통해 지속적으로 실현해나가야 한다”며 애써 중간을 찾았다.
그러다보니 여야가 극렬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그는 정국에서 비중 있는 인물이 되지 못한다. 안 의원은 여야가 공히 찬성 당론으로 추진했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표결 때 반대표를 던졌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그는, “입장을 밝히고 실제 표결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줬지만, 거대 양당의 강제 당론 표결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며 자신의 한계를 한탄했다.
존재감이 곧 지지율인 현실여야 대립과 정쟁은 정치에서 불가피한 부분이기도 하다. 안 의원은 ‘외부 위협’에 맞서 정치권이 ‘민생’을 위해 똘똘 뭉쳐야 할 것처럼 말하지만, 저마다 서로 다른 지역과 집단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300명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갖기는 어렵다. 안 의원은 현재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국가기관 정치·선거 개입 사건 관련 특검 도입 등의 사안에선 야당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안 의원이 당을 만들 경우를 가정한 지지율 여론조사를 보면, 신당은 새누리당에서 7~10%포인트, 민주당에서 9~10%포인트, 부동층에서 4~7%포인트를 가져와 지지율이 확고한 2위를 기록한다(표 참조). 시기에 따라 변동폭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변동이 있다고 한다. 안 의원 쪽 관계자는 “큰 지지율 변동은 없지만, 여야가 세게 맞붙어서 안철수의 존재감이 작아지면 지지율도 떨어진다. 그러다 호재든 악재든 다시 이름이 거론되면 지지율이 올라간다. 심지어 최장집 교수 (결별) 때도 지지율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존재감이 곧 지지율이란 얘기다. ‘안철수 신당’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신당은 여전히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지 않은 채 ‘출범을 위한 준비단체(새추위)의 출범’을 선언했다. 새추위는 우공이산처럼 안철수 의원의 혁명적 변화 시도를 끌어가는 견인차가 될까? 아니면 안 의원의 존재감을 사그라뜨리는 괴물이 될까?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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