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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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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장관’에 떨고 있는 공적연금?

공적연금제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나오는 문형표 복지부 장관 후보자… 공공성보다 수익성 중점, 연금 시장주의자
등록 2013-11-06 14:41 수정 2020-05-03 04:27

임무는 명확하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로까지 이어졌던 박근혜식 기초연금안(65살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10만~20만원씩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을 매끄럽게 입법화해야 한다. 덩달아 임의가입자 탈퇴가 줄이을 정도로 불신을 받게 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회복시켜야 한다. 이것이 지난 10월25일 내정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게 주어진 과제다. 청와대가 보건·복지 정책을 아울러야 할 복지부 장관 자리에 연금 전문가인 그를 호출한 배경이다. 그가 이러한 청와대의 기대에 부응해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낼 수는 있다. 그러나 ‘연금 장관’인 그가 오히려 공적연금제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그의 발언과 글에 근거가 있다.

‘보편적 기초연금’에 반대

문형표 장관 후보자는 국내의 대표적 연금·재정 전문가다. 1989년부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공공경제학과 사회보험 분야를 주로 연구해왔다. 누구보다 그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KDI와 한국노동연구원이 2002년에 펴낸 ‘공사연금제도의 균형적 발전방안 연구’에 게재한 논문에서 뚜렷한 소신이 읽힌다. “연금제도는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으로서 선진 복지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인구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연금제도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그는 국내 주류 연금 연구자답게 지속 가능한 국민연금제도를 위한 재정 안정성 확보를 연금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왔다. 진보적 연금 연구자들이 국민연금 개혁의 선결 과제로 주장하는 사각지대 해소는 그의 우선순위에선 뒤로 밀린다. “연금 개혁에 있어 선(先) 재정 안정화, 후(後) 사각지대 해소의 단계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구조적 문제(저보험-고급여)를 방치할 경우 연금재정은 지속적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고 후세대의 부담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반면 기초연금제 도입 여부를 포함한 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개혁은 그 중요성이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나 좀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심층적인 검토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2005년 6월호 )
그를 복지부 장관으로 만든 ‘국민연금-기초연금 연계’에 대한 그의 소신은 이러한 관점에서 나왔다. 그는 정부의 재정 부담을 이유로, 모든 노인에게 세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초연금’에 반대해왔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만 선별적으로 기초연금을 지급하려는 박근혜 정부와 인식이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조세 방식의 기초연금 도입할 경우 노인빈곤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반면 장기적으로 국가의 재정 여력이 노인집단에게 대부분 할애됨으로써 후세대의 부담 가중 및 여타 국가경쟁력 제고에 필요한 제 투자(청소년에 대한 교육 투자 등)가 소홀해질 우려가 있다.”(2008년 12월, ‘공적연금제도의 평가와 정책과제∥’(문형표 편저))
다만 그가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액을 줄이는 연계 방식에 찬성하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 장기가입자·저소득층에게 불이익을 주는 기초연금안이 평소 그의 생각과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선별적으로 저소득 노인은 공적 노후보장 체계를 통해 적절하게 연금을 지급받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문 후보자는 장관 내정 직후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해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연계 방식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민간 연금시장 활성화도 주문

재정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국민연금 개혁도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방식은 소득재분배를 위해 설계된 연금급여액 중 균등부문(전체 가입자가 낸 돈)과 소득비례부문(자신이 낸 돈)을 완전히 분리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균등부문은 보험료 대신 세금으로 충당되는 기초연금으로 바꾸고, 소득비례부문은 민간보험처럼 가입자가 보험료를 낸 만큼만 돌려받자는 것이다. “이런 이원화 구조는 현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재정 불안정성과 세대 간 불형평성을 개선하는 데 기여한다.”(2002년 12월, ‘공사연금제도의 균형적 발전방안 연구’)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초래하는 ‘저부담-고급여’ 구조가 개선될 수는 있지만, 국민연금이 추구하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의 보험료 인상 역시 그가 주장해온 재정 안정화 조처다. 그는 지난 10월10일 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방식(보험료 9%-연금 개시 연령 65살)을 유지하면 후세대가 월소득의 23%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이런 일이 안 생기게 하려면 (보험료율을) 13%까지만 올리되 연금 개시 연령을 67살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초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장을 맡은 뒤에도 이러한 주장을 피력했지만, 결국 정부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서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강조하는 것도 연금 분야 다른 주류 학자들과 통하는 대목이다. “안전성과 수익성을 추구해야 할 국민연금에 공공성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제도는 정부가 운영하되 운용은 철저히 민간에 맡겨야 한다.”(2007년 2월14일치 ) 현재 국민연금공단에 소속된 기금운용본부를 별도의 공사로 설립한 뒤 기금운용 계획을 심의·의결하는 위원회를 민간 투자 전문가로 채워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이런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장과 기업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의 지배구조에 관여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의 지적은 이렇다. “기금운용본부의 별도 공사화는 정치적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가 목적이다. 현재 국민연금이 복지부에 정치적으로 종속된 건 맞지만, 냉혹한 시장에 던져지는 게 더 위험하다. 그나마 복지부에 속해 있어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목소리라도 낼 수 있는 거다. 만약 기금운용본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면 가입자가 주권을 가지기 더 어렵다.”
그는 민간 연금시장의 활성화도 주문해왔다. 개인이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민간 연금저축에도 가입해 스스로 다층적인 노후소득 보장 체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연금은 사회 전체의 연금보험 비용을 높일 뿐만 아니라 소득재분배 기능도 없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연금 연구자들이 권장하지 않는 방식이다. 그는 소신대로 민간연금을 노후 대비에 충분히 활용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30일 국회에 제출된 그의 인사청문 요청안을 보면, 그는 모두 3개의 연금저축에 6400만여원을 예치해놓았다. 배우자 연금저축액 역시 2160만원에 이른다. 민간연금으로 든든히 노후 준비를 한 그가 국민연금 개혁을 주장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연금정책에 얼마나 반영될지 미지수

연금 시장주의자인 그의 소신이 연금정책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공적연금 손질은 국민적 저항으로 번번이 좌절돼온 까닭이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학자의 소신과 장관의 소신은 다를 수 있어 (문 후보자 내정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국민연금제도 손질은) 행정부 영역을 떠나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는 달리 연금 등 복지를 시장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인사청문회에서 자질을 철저하게 검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11월12일 열릴 예정이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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