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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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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

대기업 횡포에 모든 걸 잃은 김용태씨
등록 2013-09-05 13:50 수정 2020-05-03 04:27

2012년 7월3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공정거래위원회 앞을 25t 트레일러가 막아섰다. 10개 차로 가운데 7개가 막히면서 출근길은 아수라장이 됐다(사진). 차량 키를 뽑아 사라진 운전사는 충남 천안의 중소 생수 유통회사인 ‘마메든샘물’ 대표 김용태(52)씨. 서초경찰서에 자진출두한 김씨는 “그렇게라도 해서 대기업의 만행을 모든 국민한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49일간 구치소에 잡혀 있다가 집행유예형으로 풀려났다.

CCTV 화면 갈무리

CCTV 화면 갈무리

2000년 5월 생수 유통회사를 설립한 김씨는 연매출 6억원을 올리며 충남 지역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석수&퓨리스(현 하이트진로음료) 임직원 3명이 찾아온 것은 2006년. 이들은 석수&퓨리스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씨가 거절하자 하이트진로음료는 대리점들과 직접 접촉한다. 2008년 7월 하이트진로음료가 작성한 내부 문건을 보면, △계약 중도 해지에 따른 법률 지원(변호사 비용 50%) △물량 지원(600%) △현금 지원(총 5천만원)을 영입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돼 있다. 출고가 2천원짜리 18.9ℓ(정수기용 물통)를 1720원에 공급하고, 특히 1년간 평균 판매량 대비 600%를 무상 제공한다는 계약이다. 그러면 연평균 공급 단가가 대리점별로 673.6~912.3원(부가가치세 포함)으로 떨어진다. 출고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덤핑’(헐값 팔기)이었다. 12개 대리점 중 9개가 하이트진로음료에 넘어갔다.

김용태씨는 2009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에 하이트진로음료를 부당 염가판매로 신고한다. 1년 뒤 공정위는 “피조사인(하이트진로음료)의 공급가격이 제조원가를 하회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혐의 결정한다. 김씨는 2010년 12월 하이트진로음료가 원가 이하로 샘물을 공급했다는 증빙서류를 갖고 2차로 신고했지만, 2011년 10월 공정위는 또다시 심의 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매출액이 80%나 급감해 집까지 경매로 잃은 김용태씨는 형사처벌을 각오하고 ‘트레일러 시위’를 단행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데다 ‘갑을 관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공정위 입장이 달라졌다. 지난 7월11일 마메든샘물의 사업 활동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하이트진로음료에 시정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너무 늦은, 솜방망이 처분이었다. 골리앗과 싸우던 김씨는 이미 파산 상태로 접어들었고 검찰 고발 조처도 없었다. “2009년 9월 처음 신고했을 때 대기업의 잘못을 공정위가 바로잡아줬다면 모든 걸 잃지 않았을 텐데…”라고 김씨는 말한다. 하이트진로음료는 공정위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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