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다시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먼저 조사4국의 위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세청 내부 조직 중에서도 심층·기획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핵심 부서로 ‘국세청의 중수부’라는 별칭처럼 재계에선 저승사자로 통한다. 정보 수집을 위한 자체적인 정보팀도 보유하고 있다. 조사4국의 정보망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뻗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font size="4">“2008~2009년 문제가 의혹 핵심” </font>서울청 조사4국장을 거치면 통상 본청 조사국장이나 법인납세국장 등으로 영전한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도 서울청 조사4국장, 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차장 등을 거쳐 결국 청장의 자리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귀결된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도 조사4국의 작품이었다. 한상률 전 청장은 조사4국을 통해 태광실업을 쳤고, 자신의 자리 보전을 위해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권력 실세들에 줄을 댔다. 이 밖에도 조사4국은 2007년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 2008년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공군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 굵직한 세무조사를 도맡아왔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검찰의 CJ 비자금 수사에서 조사4국이 ‘주연’으로 부상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CJ는 2006년 전군표 전 청장과 허병익 전 차장에게 금품을 건네고 3천억원대의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검찰이 최근 전 전 청장 자택과 함께 압수수색한 곳도 바로 서울청 조사4국이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2006년 이재현 CJ 회장의 주식 이동과 관련한 세무조사 자료 일체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했다.
2006년의 문제가 국세청 고위 관계자들을 향한 CJ의 직접 로비였다면 2008∼2009년의 상황은 좀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경찰은 CJ의 전 재무팀장 이아무개씨의 청부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CJ의 차명계좌 400여 개와 고가 미술품 거래내역 등이 담긴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발견하고 검찰의 지휘를 받아 2008년 8월 국세청에 공문과 함께 차명계좌 자료를 보낸다. 횡령·탈세 등의 혐의가 확인되면 고발 조치해달라는 요청과 함께였다. 하지만 국세청은 고발 조치를 하지 않았다. 2009년까지 검찰과 경찰은 모두 세 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국세청은 세 차례의 고발 요구를 모두 묵살했다. 이 과정에서 CJ 이재현 회장은 문제의 비자금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라고 주장했고, 양도소득세 체납을 자진 신고하고 1700억원의 세금을 낸다. 탈루 세금을 자진 납부받는 선에서 국세청이 사안을 봉합한 셈이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대목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자진 납부를 했더라도 국세청은 ‘조세범칙 조사심의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밟아 수사기관 고발 여부를 결정한다. 이 위원회는 통상 국세청 내부 인사 6명, 외부 인사 8명 등 14명으로 구성된다. CJ 사건의 경우 위원회 구성과 운영을 다름 아닌 서울청 조사4국이 관장했다. 위원회는 열렸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고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세청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경찰이 공문까지 보냈는데 고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의 상황 자체가 매우 비상식적이다. 조세범칙 조사심의위원회를 통해 고발 여부를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는 건 국세청이 자체적으로 적발한 건에 한해서고, 경찰 등 외부 기관에서 의뢰가 왔다면 100% 고발이 이뤄지는 게 맞다. 그런데 당시 국세청은 위원회을 열고도 고발을 하지 않았다. 2006년보다 오히려 2008~2009년의 문제가 의혹의 핵심이다.”
<font size="4">정권 코드 맞춘 세무조사, 조사4국 </font>CJ에 대한 세무조사가 진행된 2008년 하반기 시점 국세청장은 한상률, 세무조사를 총괄하는 조사국장은 나중에 국세청장을 지낸 이현동이었다. CJ 비자금 수사가 전군표·허병익을 넘어 한상률·이현동 등 MB 정권 시대 국세청 우두머리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돌고 돌아 다시 한상률’인 셈이다. 당시 서울청 산하 조사4국 국장은 조홍희씨였다. 조씨는 한상률 전 청장의 ‘오른팔’로 통하는 인물로, 태광실업과 우리들병원 등 MB 정권 초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여러 건의 세무조사를 진두지휘한 실무 책임자이기도 했다. ‘조사4국장 조홍희’의 파워를 대내외에 과시한 상징적 사건이 있다. 조씨는 2008년 12월 중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호출을 받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룸살롱에 무려 10차례 드나들면서 한 대기업 계열사의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그를 소환한 것은 다름 아닌 민간인 사찰 파문의 주인공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이었다. 그는 조씨에게 ‘구두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 문제는 2009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검찰 수사에선 이 전 지원관과 조씨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조씨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호출을 받은 직후 벌어진 일이다. 조씨가 출석하기 전에 공직윤리지원관실에는 청와대의 고위직, 전·현직 국세청 고위 인사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들은 “무슨 일이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조홍희 국장을 왜 불렀느냐”고 문의했다. 그만큼 조씨가 MB 정권의 권력 실세들과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상률 전 청장이 이른바 ‘학동마을’ 파문으로 물러난 뒤에도 조씨는 건재했다. 그리고 백용호 전 청장 시절인 2010년 6월에는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 승진한다. 서울청장을 끝으로 그는 공직에서 물러나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2008~2009년에 걸친 CJ 세무조사 무마 의혹과 관련해 조씨의 설명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과의 통화에서 “난 이미 국세청을 떠난 지 몇 년 된 사람이다. 드릴 말씀이 없다. 국세청의 현직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라”고만 답했다.
정권의 ‘코드’에 발맞춘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늘 서울청 조사4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국세청 주변에선 한 전 청장 사례가 대표적인 동시에 “가장 악질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또다시 다시 서울청 조사4국을 중심으로 이 전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과 가까웠던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아이러니다. CJ뿐 아니라 효성, 롯데 등 올해 이뤄진 굵직한 대기업 세무조사를 조사4국이 담당한다. 효성은 이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이다. 롯데 역시 ‘제2롯데월드’ 허가 등 적지 않은 특혜를 입었고,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46개의 계열사를 79개로 확대하고 자산 총액도 약 50조원에서 100조원으로 두 배가 늘었다.
<font size="4">박영준·곽승준 등 MB 측근 도움?</font>박근혜 정부 출범 과정에서 일련의 ‘사정기관 개혁론’을 타고 조사4국의 폐지가 거론됐던 것도 그 권한이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올해 초 대검찰청 중수부는 폐지됐지만 국세청의 핵심 무기인 서울청 조사4국은 끝내 살아남았다. 단순히 조직을 유지한 것을 넘어 오히려 권한이 강화됐다. 지난 4월 국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조사4국은 법인 분야의 지하경제 추적조사 전담 조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각종 논란과 관련해 국세청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국세청은 7월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유관기관 수사 과정에서 조세포탈 혐의가 발견된 경우 조세범처벌법상 전속고발권 규정에 따라 국세청에 고발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런 경우 제공된 자료는 포탈 여부, 포탈 세액 등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탈세 혐의 자료에 해당하는 사례가 많다”고 해명했다. 외부 수사기관을 통해 받은 CJ 비자금 관련 자료는 일종의 ‘로 데이터’일 뿐 구체적인 조세포탈 혐의는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어 국세청은 “검찰로부터 통보된 자료를 검토한 뒤 실제 조사를 실시한 경우, 조세범칙 조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형사처벌에 해당하는 조세포탈 및 고발 여부를 판단한다. 적법절차에 따라 조세범칙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결국 시선은 ‘MB 실세들’로 향하고 있다. 이 회장이 자신과 가까운 대통령 측근을 통해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벌인 게 아니냐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고려대 출신인 이재현 회장은 동문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유독 가까웠다. ‘왕차관’으로 통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MB노믹스’의 기획자이자 ‘왕의 남자’로 불리기도 했던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 등이 이 회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과의 관계도 각별하다. 모두 고려대 출신이다. 2008년 CJ 자회사인 엠넷미디어는 세중나모 계열사인 세중디엠에스 주식 38만여 주를 매입하기도 했다. 매입가는 37억1천만원이었다. 곽승준 전 위원장은 이 회장과 함께 룸살롱에 드나들며 접대를 받아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font size="4">방송법 개정 위해 전방위 로비 의혹 </font>이 밖에 CJ가 2010년 프로그램 공급 업계(PP)의 2위였던 ‘온미디어’를 인수해 케이블TV 시장의 절대 강자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한 로비가 이뤄졌는지도 검찰의 수사 대상이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양아들’로 통했던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이 이 과정에서 CJ로부터 5억원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과, CJ 쪽이 방송 사업자의 독과점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방송법 개정을 위해 정치권에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도 불거져 있는 상태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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