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처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54)씨가 떠올랐다. 비영리 독립언론 가 6월3일과 6일 두 차례에 걸쳐 그의 ‘활약상’을 발표하고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도 누리집 메인 화면을 그로 바꾸었다.
재국씨는 2004년 7월28일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라는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페이퍼컴퍼니의 단독이사이면서 단독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자본금은 5만달러로 등록됐지만 실제로는 1달러짜리 주식 1주만 발행했다. 정상적인 사업이 아니라 검은돈 거래 등 다른 용도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2004년 8월13일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는 이사회를 열어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계좌를 개설하기로 의결한다. 는 이 은행이 큰손 고객을 위주로 영업하는 프라이빗뱅킹이라고 밝혔다. 아랍은행인데도 한국인 임원이 2명이나 있어 한국인 큰손이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싱가포르 계좌를 개설할 당시 재국씨는 상당히 다급했던 모양이다. 원래 2004년 9월22일까지 계좌를 만들려고 했는데 공증서류가 전달 도중에 분실됐다. “고객인 전재국씨의 은행 계좌에 있는 돈이 모두 잠겨 있고 이 때문에 전씨가 몹시 화가 났다.” 재국씨의 싱가포르 법률회사와 페이퍼컴퍼니 등록을 대행한 업체(PTN) 직원이 주고받은 전자우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자우편은 2004년 9월17일에 오갔다.
2004년 9월 당시 한국에서는 전씨의 동생 재용(49)씨가 아버지(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때문에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었다. 재용씨가 “외할아버지(이규동 전 대한노인회장)에게 받았다”고 주장한 채권 가운데 73억원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고 1심 재판부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10월10일 항소심 재판부도 유죄로 인정했지만 재용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최소 6년 이상 유지됐다.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한 PTN에도 재국씨는 수수료를 몇 차례 지급했다. 2004년 9월 등록비용 850달러를 건넸고 5개월 뒤인 2005년 2월 1210달러를 또 입금했다. 별도의 서비스를 받고 추가 수수료를 낸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 계좌는 아랍은행에서 ‘특별관리’를 받았다. 페이퍼컴퍼니 이사회 의결서를 보면, 회계 장부와 회의록, 주주 및 등기이사 명부 원본 등을 모두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보관한다는 내용과 함께 ‘C/O’(care of)라는 영어 약자가 나온다. 싱가포르 지점에 행정·회계 업무를 위탁 대행한다는 뜻이다. 한국에 페이퍼컴퍼니가 노출될 것을 우려한 조처로 추정된다.
궁색한 해명… 검찰로 넘어간 공재국씨는 6월4일 보도자료를 냈다. “1989년 미국 유학생활을 일시 중지하고 귀국할 당시 갖고 있던 학비·생활비 등을 관련 은행의 권유에 따라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부친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실이며 탈세나 재산 은닉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관계기관의 조사가 이뤄진다면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 유학에서 돌아와 15년이나 국내에서 보관하던 돈을 아버지의 비자금이 들통나 동생이 감옥에 갇혔을 그 시점에 아랍은행 싱가포르 계좌로 갑자기 옮기고 싶어져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웠을 뿐이라는 해명이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겨졌다. 마감 시각은 10월11일이다. 추징금 집행 시효(3년)가 지나면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은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되니까.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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