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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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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인양한 원양어업

쿠데타 뒤 ‘외화 낚시’ 사업으로 원양어업 적극 육성한 박정희 정권… 출판업자들 정권 배려로 수산업 진출 나서기도
등록 2013-04-20 15:29 수정 2020-05-03 04:27

“과거 산업화 시대에 아버지께서도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많은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 부경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어 감회가 참 깊습니다.”

1968년 9월23일, 당시 고교 2학년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원양어업 전진기지였던 남태평양의 섬 사모아에 방문했다. 정부기록사진집

1968년 9월23일, 당시 고교 2학년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원양어업 전진기지였던 남태평양의 섬 사모아에 방문했다. 정부기록사진집

출판사가 모태인 오양수산

박근혜 대통령은 2008년 부산에 위치한 부경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 대통령이 명예 박사를 받은 국내 대학은 서강대·카이스트·부경대 3곳이다. 부경대는 1996년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가 통합되면서 출범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4년 부산수산대 원양 실습선이 진수될 때 직접 ‘백경호’(白鯨號)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과 원양어업은 깊은 인연이 있다. 한국 원양어업의 첫 시작은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6월26일, 해방 뒤 미국으로부터 원조 물자로 지원받은 선박을 개조해 만든 지남호(指南號)가 부산항을 출발해 인도양에서 참치를 잡는 데 성공한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외화 낚시’ 사업으로 원양어업을 적극 육성하기로 한다. 1962년 정부는 이탈리아·프랑스와 1억달러 규모의 차관 어업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협정에 대해 이선희 전 경제기획원 차관보는 이렇게 회상한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수산회사로부터 1억달러라는 거액의 차관을 한국에 공여하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최고위원들은 ‘웬 떡이냐’ 생각했는지 내용도 제대로 검토해보지 않고 협정에 서명했다. 내용을 검토해보니, 중고 어선 수백 척을 일반 상업 차관의 조건(7년 만기, 연리 8%로 기억함)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수백 척의 선단을 운영할 선원도, 자금도 없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와 프랑스 대사의 격렬한 원성을 들으면서 차관을 2500만달러로 축소했다.”(, 매일경제신문사, 1999)

정부가 원양어업 지원을 확대하자 수산업에 뛰어드는 이들도 늘어났다. 그중 한 명이 5·16 쿠데타 당시 ‘혁명공약’을 인쇄했던 이학수 광명인쇄공사 사장이다. 이 사장은 박 전 대통령의 배려로 1963년 고려원양을 설립해 출판업자들의 수산업 진출에 포문을 연다. 1953년부터 출판사 ‘법문사’를 운영한 고 김성수 회장은 1969년 오양수산(현 사조오양)을 설립한다. 출판사 ‘사조사’의 고 주인용 사장도 1971년 사조산업을 설립했다. 1968년 9월23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순방을 다녀오다 남태평양의 섬 사모아에 들른다. 사모아는 당시 한국 원양어업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지역이었다. 당시 순방에는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도 함께했다.

가파르게 성장하던 원양어업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1977년 미국과 당시 소련이 해양자원의 보존 등을 이유로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약 370km)까지의 바다를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선포하는 등 어업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1979년 2차 석유파동까지 겹쳤다. 국가 차원의 경제 손실도 컸다. “당면한 타격이 심각한 것은 원양어업이 최근에 급신장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차관으로 들여온 어선 대금 3억7600만달러 가운데 상환된 것은 9500만달러로 25.4%에 불과하다.”(1977년 3월19일치 사설) 이런 어려움은 국제 정세와 경제변동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 탓이 컸다.

국제 윤리 수준과 맞을까

박근혜 정부는 수산업을 관광·레저·스포츠 등으로 확대해 미래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해양수산부를 5년 만에 부활시켰다. 수산업의 미래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윤리 수준과 맞닿을 수 있을까.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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