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인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를 부여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의미가 부여된다. 대통령 당선부터 인수위원회 가동, 정권 출범에 이르는 기간의 행보로 사실상 정권 초반의 성공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말하고 글 쓰는 일을 즐겼다. 당선인으로서의 행보부터 그랬다. 16대 대선일 하루 뒤인 2002년 12월20일 아침 출근길에서부터 방송사와 즉석 인터뷰를 했다. “늦잠을 잤다” “앞으로 금연하겠다”는 등 소탈한 인간적 면모도 드러냈다. 12월23일에는 현직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회동했고, 이틀 뒤인 성탄절에 인수위원장 인선을 발표했다. 인수위원장은 임채정 민주당 상임고문이 맡았다. 당선 일주일 만에 인수위 구성을 모두 마친 노 전 대통령은 12월28일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신효순·심미선양의 유가족과 범국민대책위원회 인사들을 만났다. 당선 뒤 외부 인사나 단체와의 첫 만남은 상징성을 갖는다. 노 전 대통령은 ‘촛불’이라는 상징을 선택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최근 수석대변인으로 낙점했던, 하지만 수준 이하의 말과 글이 부른 논란 끝에 인수위 대변인으로 위상이 축소된 윤창중 대변인이 2003년 1월3일치 에 쓴 기명 칼럼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아직 독설의 독기가 무르익기 전이었다. 노무현 시대의 첫머리에서, ‘논설위원 윤창중’은 이렇게 썼다. “이번엔 양자 대결이었기 때문에 패자 세력이 어느 때보다 많다. 당선인 진영이 대선 후 민심의 한편에서 존재하고 있는 토라진 마음들을 더 달래야 할 때이다. 패자를 찍은 유권자 중에는 지금 TV를 끄고 사는 사람도 많다.”
정확히 5년 뒤인 2007년 12월28일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5단체장 및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간담회를 했다. 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을 막론하고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관을 방문한 첫 사례로 기록된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나를 보고 친대기업이라고 하는데 ‘친기업적’이라는 말은 분명히 맞다. 기업이 잘돼야 국가가 잘된다는 원칙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다”고 말했다. 기업 총수들에게는 “(만일 필요하면) 직접 전화로 연락해도 좋다”는 말도 했다. 분배보다는 성장, 상생보다는 대기업 몰아주기에 방점을 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권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박 당선인은 모친인 ‘육영수의 상징’을 차용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2012년 12월24일 서울 관악구 난향동에 위치한 ‘난곡 사랑의 집’을 방문해 도시락을 만들고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 이를 배달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하루 뒤에도 서울 창신동의 한 경로당을 방문했고, 쪽방촌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줬다.
이명박, 전경련-뉴라이트-소망교회박 당선인이 12월26일 중소기업중앙회와 소상공인 모임을 먼저 한 뒤 전경련을 방문한 것도 다분히 정무적 판단이 작용한 일정이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진정성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경제민주화’를 내건 박 당선인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선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을, 전경련을 방문해선 “대기업도 변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놨다. 박 당선인은 “경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라든가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어렵더라도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고통 분담에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이나 골목상권까지 파고들어 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을 침범하는 일도 자제했으면 한다”며 “서민들 업종까지 재벌 2·3세들이 뛰어들거나 부동산을 과도하게 사들이는 것은 기업 본연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선규 대변인은 “대선 기간 약속한 경제민주화 행보를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 모임, 그다음에 대기업을 전경련을 통해 만난다는 순서를 보면 박 당선인이 가진 경제에 대한 생각의 단면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 다음날인 12월20일에도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이승만·박정희·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 다음날인 2007년 12월20일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을 ‘글로벌 코리아’로 만들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뛰고 세계로부터 인정받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당선된 이 대통령이었지만, 실제로는 출범부터 강경 보수의 논리와 세력에 의존했다. 이어 12월22일 이 대통령은 서울 홍제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뉴라이트전국연합 송년회에 참석한다. 당시 이 모임의 상임의장은 김진홍 목사였다. 2011년부터 김 목사의 뒤를 이어 정형근 전 의원이 의장직을 맡고 있다. 성탄절을 즈음해선 자신이 다니던 소망교회에서 예배를 봤고, 12월24일에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한 사회복지법인을 찾아 시설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 자리에는 서울복지재단 대표를 지낸 박미석 전 숙명여대 교수가 참석했다. 박씨는 이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에 임명되지만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파문 끝에 낙마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문제적 인물들에 대한 ‘보은’을 잊지 않았다. 박씨는 2012년 초 국무총리 산하 정부업무평가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됐다.
‘혼전’이라 준비 못했다?
박 당선인은 인수위 인선과 가동이 전임자들에 비해 눈에 띄게 지연됐다. 당선인 시절부터 ‘일하는 정부’를 강조한 이명박 인수위는 신속했다. 성탄절 직후인 2007년 12월26일 인수위원·전문위원 등 인수위 인선 작업이 모두 마무리됐다. 같은 날 현판식을 하고 공식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2008년 1월2일부터는 각 정부 부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노무현 인수위 역시 2002년 12월30일 첫 회의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반면 박 당선인은 대변인단·비서실장 임명(12월24일)과 김용준 인수위원장 인선 발표(12월27일), 인수위 각 분과 조직의 구성(12월31일) 등을 거쳐 1월4일에야 인수위 인선을 마무리했다. 전임자들보다 열흘가량 늦어진 일정이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는 많은 분들이 결과를 예측한 선거였고, 그러다 보니 선거 전에 인수위 준비를 미리 했다고 들었다”며 “이번 선거는 당일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혼전이었고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거 전에 준비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같은 당 조해진 의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크고 도덕성 잣대에 대한 국민들의 눈높이가 굉장히 엄격해진 게 사실”이라며 인수위 출범 지연의 원인으로 ‘인사 검증’을 들었다. 그는 “인수위가 당선인이 선보이는 첫 인사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당선인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대치가 높다”며 “생각보다 더 꼼꼼하고 치밀하게 들여다봐야 할 상황 때문에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의 ‘거북이 행보’를 ‘신중함’만으로 포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윤창중 대변인을 비롯해 김경재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윤상규·하지원 청년특별위원 등 몇몇 인사들의 행태나 비리 전력이 인수위 출범과 가동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아예 이 인사들을 ‘밀봉 4인방’으로 규정하고 사퇴를 촉구했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보복과 분열의 나팔수인 윤창중 대변인, 돈봉투를 받은 하지원 청년특별위원, 하청업자에게 하도급 대금도 제때 안 주면서 이자를 떼어먹은 윤상규 특별위원, 대선 때 호남민을 역적으로 매도하고 대선 후 언론을 협박했던 김경재 부위원장을 즉시 교체하라”고 말했다.
대외적으로 ‘시스템을 통한 검증’을 여러 차례 강조했던 이명박 인수위도 인사 문제로 출범부터 삐걱거렸다. 사회의 ‘평균적 기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도덕적 기준과 공신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낳은 결과다. 박 당선인은 인사를 전적으로 본인의 결단과 검증에 의존한다. 교차 검증 등 피드백이 불가능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대적인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한 깜짝 카드보다는 기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조직을 수평 이동하는 것이 비교적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국 인수위는 외부 인사들이 상당수 참여하는 형태가 됐다. ‘차분한 인수위’라는 콘셉트가 여권에서 주로 거론되는 것도 의욕만 앞세운 점령군 행세와 설익은 정책 발표로 오히려 정권 초반 몰락을 자초한 전임자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는 ‘정치인 박근혜’가 수차례 비판받았던 ‘불통의 리더십’을 재현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최측근 보좌진 3인방’의 인수위 합류다. 선거 기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춘상 보좌관을 제외한 이재만 보좌관과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은 당선인 비서실을 포함한 인수위 합류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여권 내부의 관측이다. 이 중 수행과 일정을 담당해온 안봉근 비서관은 이미 인수위 행정실로 배속돼 업무를 시작했다. 대통령이 제도가 아닌 측근에 의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미 여러 전임 정권이 생생하게 보여준 바 있다. 인수위 출범과 함께 박 당선인은 차기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 인선 작업에도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시작부터 문제점을 노출한 그의 ‘인사 철학’이 짧은 기간 동안 바뀔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성패가 여기에 달렸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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