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우린 달라” 두 후보 서로 “따라하지 마”

안철수 ‘정당 혁신 공격’에 문재인 ‘정당 후보론’ 반복… 약점 인정 않고 오히려 장점이라며 싸우는 두 후보는 단일화의 덫을 피할 수 있을까
등록 2012-10-16 17:00 수정 2020-05-03 04:26

지난 10월9일 오후 2시40분 서울 종로구 공평빌딩 안철수의 진심캠프. 송호창 민주통합당 의원이 안철수 대선 후보와 함께 등장했다. 기자실이 술렁였다. 송 의원은 안 후보에게 자신의 책을 전달했다. 안 후보는 물론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가 추천사를 쓴 책이다. 송 의원은 이틀 전 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김성식 전 한나라당 의원, 박선숙 전 민주당 의원과 함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그는 탈당 이유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단일화론, “홀로 벌판에 서 있는” 안 후보 보호론을 들었다.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의왕·과천 유권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민주당 ‘외부 인사 영입’ 1호, 안 캠프로

송 의원은 지난 2월7일 민주당 외부 인사 영입 1호로 입당해 전략공천을 받았다. 4월 총선 때 안 후보의 공개 지지를 받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 시민캠프의 최승국 공동대표는 트위터에서 “송 의원의 탈당이 마치 의로운 구국의 결단처럼 비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그는 시민사회 출신의 몇 안 되는 전략공천 당선자다. 민주당을 개혁해야 할 책임이 있다. 책임과 도의를 버렸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사무처장 출신인 최 공동대표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캠프에서 송 의원과 함께 일했고, 총선 때 민주당 서울 은평을 경선에서 패했다. 송 의원의 후원회장인 조국 서울대 교수도 탈당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진심’이 무엇이든 ‘도의’에 어긋난 선택을 한 송 의원과 “사람의 선의가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환영한 안 후보를 향해 “이런 게 새 정치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단일화의 덫’이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 현역 의원의 안철수 캠프 합류로 양쪽에 냉기류가 형성됐고, 이 일을 전후로 ‘정당후보론’과 ‘무소속 대통령론’이 격하게 충돌했다. 정치 혁신의 구체적인 그림은 드러나지 않은 채, 양쪽의 감정 골이 깊어진 모양새다.
“정당 개혁 방안이 많은데 하나라도 실천하면 국민이 진심을 알지 않을까.”(안 후보, 10월8일 대구대 강연)
“정당 밖에서 정치를 바꿔야겠다고 말하기는 쉽다. 나도 정치 참여 이전에는 늘 그래왔다. 정당 혁신과 새로운 정치는 결국 정당을 통해서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다.”(문 후보, 10월8일 원외지역위원장단 간담회)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불가능한 일이다.”(이해찬 민주당 대표, 10월9일 라디오 연설)
“지금 상태에서 여당이 대통령이 되면 밀어붙이기로 세월이 지날 것 같고, 야당이 당선되면 여소야대로 임기 내내 시끄러울 것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무소속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고 양쪽을 설득해나가면서 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안 후보, 10월10일 대전에서 기자들에게)
10월11일 안 후보 발언의 초점은 달라졌다. 청주교대 강연에서 안 후보는 “저도 무소속 대통령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당에 소속되는 게 좋겠죠”라고 말했다. 자신의 전날 발언이 ‘정당 쇄신’을 뜻하는 발언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을 향한 발언 수위는 훨씬 높아졌다. “지금 와서 정당후보론을 꺼내는 게 참 어처구니가 없다. 지금까지 정치에서 정당이 어떤 책임을 졌느냐.” “같은 정당 안에서 패가 갈리고 손가락질하고 대통령 탈당하라고 요구했다. 정당 대통령을 스스로 무소속으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민주당이 정당후보론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따진 것이다. 안철수 캠프의 김성식 공동선대본부장도 이날 기자 브리핑에서 “국민이 식상해하는 정당후보론을 내세운 모습이 딱하다. 지금 저렇게 말하면 ‘후보가 좀 모자라도 정당이 뒷받침되니 뽑아달라’는 주장 아니냐”고 말했다. 문 후보는 안 후보의 정당후보론 비판에 대해 “아유 정말, 그렇게 험한 말을…”이라며 직접적인 대응은 자제했다.

독자 출마 가능성 열어뒀다는 해석도

안 후보의 무소속 대통령론은 원론일까, 진심일까. 발언의 초점은 왜 달라졌을까. 안 후보에게 민주당이 제기한 정당후보론과 무소속 후보 불가론은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정당 기반이 없다는 게 약점으로 부각될 수 있고, 후발주자로 선거운동을 본격화하는 마당에 ‘단일화 블랙홀’에 휩쓸릴 수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본인의 핵심 지지층인 중도·무당파의 동요나 이탈을 막고 완주 기대감을 주기 위한 전략적 발언으로, 민주당과의 단일화라는 어려운 협상에서 우위를 갖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안 후보가 무소속 대통령론을 강조하면 단일화에 부정적인 것으로 비쳐, 안 후보를 지지하는 야권 지지층의 상당수가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안 후보는 10월10일 발언에 대한 추가 설명 자료를 통해 “제가 꼭 그렇게(무소속 대통령)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토를 달기도 했다. 결국 무소속 후보의 한계를 집중 공략하려는 민주당에 맞서, ‘정당 쇄신부터 하라’는 역공을 펼쳤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 후보의 무소속 대통령론이 독자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정치 혁신이라는 상황 조건이 형성되지 않으면 단일화에 응할 명분이 줄어들고, 특히 민주당이 입당을 전제로 단일화를 요구할 경우 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철수 캠프의 일부 참모들은 무소속 대통령론에 근거한 독자출마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희웅 실장은 “안 후보에게 민주당 입당은 대선 불출마만큼이나 어려운 얘기”라며 “안 후보가 새로운 정치세력을 도모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일정은 비슷하다. 지지층이 상당히 겹치기 때문이다. 양쪽은 최근 ‘정당 후보론’과 ‘무소속 대통령론’으로 맞붙었다. 정책 차이는 뚜렷하지 않다. 경기 남양주의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소에 참배하고 있는 안 후보(9월29일)와 문 후보(10월2일). 사진 안철수 캠프 제공, 사진 한겨레 이정우.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일정은 비슷하다. 지지층이 상당히 겹치기 때문이다. 양쪽은 최근 ‘정당 후보론’과 ‘무소속 대통령론’으로 맞붙었다. 정책 차이는 뚜렷하지 않다. 경기 남양주의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소에 참배하고 있는 안 후보(9월29일)와 문 후보(10월2일). 사진 안철수 캠프 제공, 사진 한겨레 이정우.

민주당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안 후보가 정치 혁신을 지렛대로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송호창 의원이 민주당을 지칭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안철수 캠프 합류 기자회견에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낡은 정치세력에게 맡기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원론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이 당연하지 않나? 안 후보 자신은 민주당에 계속 낙인을 찍으면서, 정당 기반이 없다는 얘기에는 왜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주의가 제도화한 나라에서 무소속 대통령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안 후보로서는 무소속 대통령론이 원론이든 진심이든 자신에게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고,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 소속인 문 후보로서는 정당후보론이 약점으로 작용하는데, 서로 자신의 현실적 약점을 인정하지 않은 채 오히려 장점이라며 싸우고 있는 셈이다.


야권 지지층 내부 이동, 외연 확장 없어

정작 정치 혁신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뚜렷한 그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 후보 쪽은 선대위 구성을 통해 정치 혁신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10월11일 기자간담회에서 “계파 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용광로 선대위, 시민참여형 거버넌스 체제인 시민캠프, 기존 정당의 서열·선수 구조를 파괴한 인사 배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10월7일 정책 비전 발표회에서 ‘플랫폼(열린광장) 정치’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안 후보의 정책포럼 ‘내일’이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해 대안을 내면 이를 포럼이 검토해 우선순위를 결정해 내놓는다는 구상이다. 정치혁신포럼 대표인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생산적으로 소통하는 정책 네트워크를 통해 시민들의 정치 참여 욕구를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김 교수는 “플랫폼 정치는 시스템을 이야기한 것이고, 선거제도와 권력구조, 정당 혁신 문제는 앞으로 선거 과정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양쪽은 서로 말로만 정치 혁신을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우상호 단장은 안 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겨냥해 “다른 캠프처럼 말로만, 또는 내분에 휩싸인 형태가 아니라 문재인표 정치 혁신의 구상이 제시되고 실현됐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청주교대 강연에서 “말만 하지 말고 (나한테) 정당 개혁 방안을 내보라고 하는데, 자기 집 대문을 수리해야 하는데 옆집 가서 물어보는 것과 같다. 스스로 사흘 정도만 국민을 찾아가 물어보면 그 답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IMAGE3%%]

한편에서는 문 후보와 안 후보 양쪽 모두 ‘착시 현상’에 빠져 기싸움만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추석 이후 여론조사를 보면 안 후보는 주춤, 문 후보는 상승 흐름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야권 지지층 안에서 안 후보 지지자 일부가 문 후보 지지로 이동하며 야권 지지층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시 현상일 뿐, 야권 지지층의 외연 확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연구위원은 “문 후보는 이슈 주도권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안 후보도 을 넘어선 구체적이고 절박한 어젠다를 내놓으리라는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투표 시간 연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새누리당의 네거티브 정치 공세 등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현안이 많은데, 무소속 대통령론과 불가론으로 싸우는 게 정치 혁신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현안이 많은데…”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동선은 매우 비슷하다. 지난 10월10일에는 시차를 두고 대전을 다녀왔고, 대구·경북 지역도 하루 차이로 방문했다.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호남 지역도 경쟁적으로 두 번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지난 9월에는 사흘 간격으로 전태일 열사와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 묘소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을 찾았다. 심지어 안 후보가 10월9일 영화 를 관람했고, 문 후보도 10월12일 이 영화를 봤다. 서로 따라하지 말라고 신경전을 벌일 정도다. 두 후보는 각각 행사장에서 박근혜 후보와 마주친 적이 있지만, 두 후보는 어디에서도 만난 적이 없다. 두 후보는 만남의 길에 놓인 덫을 피해갈 수 있을까.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