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폐족’이란 한때의 꼬리표는 미래의 권력을 약속하는 ‘상징 자본’이 됐다. 그 상징의 부스러기라도 나눠가지려고 너도나도 죽은 자와의 인연을 부각하자, 실현되지 않은 미래 권력에 대한 기대감은 현실의 지분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야권 내부에는 ‘범친노’라는 유력 집단이 형성됐다. ‘친노 직계’로 불리는 코어(core) 집단은 그 안에서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권력의 단맛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행복한 고아들’이었다.
대선 가도 역할 분담, 소외된 친노 방계
이해찬·문재인 등 정치권 외곽의 친노 핵심들이 속속 민주통합당으로 결집하고, 대모(代母) 한명숙 전 총리가 당권을 거머쥐자 상황이 달라졌다. 제1야당의 명실상부한 당권파가 돼 정치적 책임이 무거워진 것이다. 4·11 총선을 앞두고 터진 공천 파동은 시련의 서막이었다. ‘노이사’(친노+이대라인+486)가 공천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당 내부에서 강력한 견제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친노 내부에선 구심력이 강하게 작동했다. 당의 실질적인 원내 권력을 장악하려면 총선에서 더 많은 친노 당선자를 내는 것이 급선무였던 까닭이다.
4·11 총선은 친노 세력에겐 ‘절반의 성공’이었다. 18대 국회에서 10명 안팎에 불과하던 친노계 국회의원이 4배 가까이 늘었지만, 새누리당에 과반 의석을 내줌으로써 총선 패배 책임론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친노 직계가 대거 후보로 나섰던 부산·경남 지역에서 사실상 문재인 상임고문 혼자 생환한 것도 적지 않은 타격이었다. 친노 내부의 구심력은 눈에 띄게 약화됐다. 잠복해 있던 ‘직계’와 ‘방계’의 균열도 표면화됐다. ‘성공의 역설’이다.
친노 균열이 본격화한 계기는 5월4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이었다. ‘친노의 좌장’ 이해찬 전 총리가 대표적인 ‘친노 비토론자’이자 ‘호남 맹주’를 자처하는 박지원 최고위원을 원내대표로 밀자 이른바 ‘이-박 담합 논란’이 터져나왔다. 양쪽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강력한 대여 전선 구축을 위해선 효과적이고 능력 있는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정당화했지만, 당 안팎에선 이를 ‘당 대표 이해찬-원내대표 박지원-대선 후보 문재인’ 구도를 상정한 친노 직계의 패권 구상으로 해석했다.
친노 진영에선 원내대표에 도전했던 중진그룹의 유인태 19대 국회의원 당선인과 대선 도전을 꿈꾸며 방계의 독자 계보를 이끌던 정세균 전 대표 쪽 반발이 거셌다. 유 당선인은 “나를 더 이상 친노로 부르지 말아달라”고 했고, 정 전 대표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결정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친노와 전략적으로 제휴해온 486 그룹도 격하게 성토했다. 한 서울 지역 당선인(재선)은 “당의 역동성을 떨어뜨려 대선 필패를 부를 하책(下策) 중의 하책”이란 냉소를 쏟아냈다.
이를 두고 친노 직계로 분류되는 한 당선인(초선)은 “친노·비노 갈등의 해결책을 궁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문제일 뿐, 친노의 분화로 보면 안 된다”고 했지만, 다수의 의견은 달랐다. 직계 그룹의 한 핵심 인사는 “친노를 비판해온 박 최고위원을 원내 파트너로 선택한 이해찬 전 총리 쪽과 생각을 달리하는 친노 그룹 인사들이 등을 돌린 것”이라고 했다. 친정세균계의 한 관계자도 “이-박 합의가 ‘대선 후보 문재인’을 염두에 둔 구상인 만큼 결국엔 친노 세력도 문재인을 지지하는 직계만 남고 나머지는 각자도생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죽은 노무현’, 상징만 있으니 원심력 강해
당 안팎에선 이런 친노의 분화를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수도권의 한 당선인(재선)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질 수밖에 없는 과정이 ‘담합 파동’을 계기로 앞당겨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권력 노무현’을 구심으로 뭉친 것이 아니라 ‘죽은 노무현’이란 ‘정치적 기표’를 매개로 결합한 세력인 만큼, 내부의 정치적 역학관계나 미래에 대한 기대 수준에 변화가 생기면 분화와 균열의 원심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진단도 다르지 않다. “어떤 조직이든 권력자원의 분포와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 내부의 연대 세력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친노의 균열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후반 부산에서 태동한 뒤 친노가 걸어온 30년 궤적에는 두 개의 변곡점이 있다. 노무현이 부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2000년과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2004년이다. 2000~2004년은 구심력이 지배한 시기였다.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결성됐고, 16대 대선 후보 광주 경선(2002년 3월) 승리를 계기로 노무현의 캠프에는 유능한 전문가와 정치인이 속속 결합했다.
친노가 명실상부한 다수당의 주류로 등극한 2004년 총선은 구심력이 최대치에 이른 순간이자 분화와 분열의 원심력이 작동하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청와대·행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장악하게 되자 잠복해 있던 권력투쟁이 표면화했다. 노사모에 뿌리를 둔 당내 계파 국민참여연대와 참여정치연구회가 당권을 두고 격돌했고, 대통령 지지도가 눈에 띄게 하락한 2006년부터는 대권을 노리는 차기 주자들의 차별화 행보가 노골화했던 것이다.
적잖은 정치권 인사들이 이번 사태에서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의 기시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전사(前史) 때문이다. 실제 ‘폐족의 부활’을 알린 2010년 6·2 지방선거부터 지난 4·11 총선 국면까지 친노 세력 내부에서 작동한 힘은 명백히 구심력이었다. 확보한 권력의 양이 최대치에 이른 순간 분열했던 2004년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지금은 원심력이 작동할 수 있는 국면이다. 유념할 대목은 2004년과 달리 지금은 대선을 불과 6개월 남짓 남겨두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을 앞둔 정국의 역동성이 발휘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가능성은 문재인이 지금의 지지율 정체를 뚫고 극적 반등을 이뤄내는 경우다.
변수는 안철수라는 장외 후보의 존재다. 지금처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당 밖에 머물며 야권에 실망한 유권자의 지지를 흡수하는 양상이 지속될 경우 문재인의 지지도가 반등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5월11일치 인터뷰를 통해 문 고문이 안철수 쪽에 공동정부 구성을 제안한 것도 그를 어떻게든 장내로 끌어들여 그의 지지율을 흡수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반MB 협박 담론’ 말고 이념 제시 없어”
관건은 안철수와 겨루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스스로 자신의 지지율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당내 구심력을 강화하고 총선 패배 뒤 빼앗긴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와 장외 후보에 쏠린 야권 성향 유권자층의 지지를 회복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친노 직계와 문 고문은 이해찬-박지원 투톱 체제를 구심력 강화의 유력한 수단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선주자를 선출한 뒤 안철수와의 후보단일화 경선까지 갈 수 있는 복잡한 국면에서, 원내 전투를 성공적으로 지휘하고 당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에는 박지원·이해찬만 한 사람이 없다”는 한 친노 직계 당선인의 발언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친노의 고민은 구심력 강화를 위한 ‘이-박 투톱’ 구상이 기대와 달리 비노 세력의 결집과 친노 내부의 균열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왜 상황이 이처럼 꼬이게 됐을까. 일각에선 친노 세력의 근본적 한계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가치와 이념, 정책의 부재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박근혜도 박정희 모델을 재해석해 자기식 복지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데, 친노는 여전히 5년 전 노무현 정부의 현실 인식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만약 노무현 모델이라는 게 있다면, 복지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판본으로 정교화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진단도 비슷하다. 그는 “아무리 뜯어봐도 친노의 정체성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반MB’ 말고는 주장하는 가치와 지향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경제나 사회 정책에서 다른 세력과의 차별점을 찾기 힘들다.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비정규직 제도 개선을 말하긴 하는데, 자기들 언어가 아니다. 남들이 다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 이상이 아니다. 친노가 한국정치의 퇴행적 존재로부터 벗어나려면 이명박에 대항하기 위해 뭉쳐야 한다는 ‘협박 담론’ 말고, 자신들이 어떤 이념을 갖고 어떤 정책을 펼치려고 하는지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
친노가 주도하는 지금의 야권 내 권력 구도를 만들어준 것이 야권 지지층이란 점에서, 지지자들 스스로 친노에 대한 착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나온다. 고 김근태 상임고문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엄밀히 따져 친노를 ‘진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노동·복지 현안과 관련된 그들의 발언을 들여다보면 잘 봐줘야 ‘합리적 중도’ 아니겠느냐”고 했다. 박상훈 대표도 “관료 출신이나 호남에 기반을 둔 구민주계에 비해 운동권 경력자가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보이는 것”이라며 “지금 같은 계파 구도에서 그런 걸(과거 경력) 이유로 특정 집단에 대한 선호를 정당화하는 것 자체가 구차한 짓”이라고 일축했다.
친박·친노·경기동부, 당권파가 문제다
특정한 가치와 이념을 중심으로 뭉친 세력이 아니라, 특정 시기의 인적 네트워크를 매개로 뭉치다 보니 폐쇄성이 강하다는 것은 친노에 대한 단골 비판 가운데 하나다. 총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도와달라고 해서 갔는데 일거리 자체를 주지 않고 소외시키더라”며 “몇몇은 친노라는 테두리를 대단히 배타적으로 사고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씁쓸해했다. 이런 조직적 폐쇄성은 노무현의 의원 시절 비서진과 청와대 참모 출신이 주축을 이루는 친노 직계 그룹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천정배 전 최고위원계로 분류되는 한 당선인은 “다른 출신성분의 인사들이 서클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강력하게 견제한다는 점에서 친노의 조직문화 역시 과거 동교동계나 상도동계와 다를 게 없다”며 “공천 과정의 잡음이나 최근의 패권주의 논란도 이런 구조적 한계와 관련이 깊을 것”이라고 했다. 폐쇄적 이너서클의 독선과 독주와 승자독식. 2012년 한국의 정당판에선 어딜 가나 당권파가 문제다. 그 이름이 ‘친박’이든 ‘친노’든 ‘경기동부연합’이든.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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