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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반전 카드 과연 있나

친노 그룹과 현역 의원 위주의 공천 이뤄지며 기준·원칙 모호… ‘기득권 공천’ 등 비판에 계파간 불협화음 일며 지지율 하락세
등록 2012-03-08 17:45 수정 2020-05-03 04:26
2월5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왼쪽)과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의 첫 상견례 모습. 강 위원장은 2월29일 “국민은 딴전에 두고 각자의 이익이나 당선에 연연하고 있다”고 민주당 지도부를 비판하며 이틀간 ‘파업’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2월5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왼쪽)과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의 첫 상견례 모습. 강 위원장은 2월29일 “국민은 딴전에 두고 각자의 이익이나 당선에 연연하고 있다”고 민주당 지도부를 비판하며 이틀간 ‘파업’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과반 의석은커녕 제1당이 되기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어처구니없는 자충수로 지지율을 까먹고 있는 민주통합당 얘기다. 초반 공천 경쟁에서 확실히 새누리당 분위기에 밀렸다. 새누리당이 잘했다기보다는, 민주당이 ‘과거 회귀성’ 공천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힘센 계파 등에 업은 공천?

“2000년 총선 때 ‘허주’가 공천에서 탈락한 게 가장 충격적인 공천이 아니었나 싶다. 앞으로 민주당에 그에 버금갈 반전 카드가 있을까?” 민주당 관계자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허주 김윤환은 1996년 혈혈단신으로 신한국당에 들어온 이회창의 킹메이커였다. ‘빈 배(虛舟)에 창(昌)을 싣고’ 당내 경선에서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만들었다. 그러나 2000년 총선 때 ‘개혁공천’을 표방한 이회창 전 총재는 그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1997년 대선에서 패한 이 전 총재가 당내에 큰 지분을 갖고 있던 그를 탈락시킨 것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격분한 허주는 “배은망덕하다”며 탈당했다. 이 전 총재는 “시대 흐름과 개혁 여망을 거부하는 것은 역사의 요구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한가해 보인다. 충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지점도 이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민주당이 시대 흐름과 개혁 여망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가한 민주당의 한복판에는 한명숙 대표가 있다. 당직 인선 과정에서 비판받은 한 대표의 리더십 부재와 측근 챙기기가 공천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이 2월29일 공천 심사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강 위원장은 공천 결과가 최고위원회에서 유보되거나 사전에 언론에 유출되는 데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강 위원장은 3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공천은 겉으로만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뒤에서 리모컨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당 지도부를 겨냥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민주당이 시민통합당과) 통합할 때만 해도 국민을 무겁게 생각하더니, 공천이 중반 이상 가면서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국민은 딴전에 두고 각자의 이익이나 당선에 연연해 국민을 가볍게 생각한다.” 한 대표가 이날 급히 요청한 점심 회동에서 “더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고 고개를 숙여 공심위는 이틀 만에 재개됐지만, 공천을 둘러싼 파문의 본질은 여전하다. 강 위원장은 누구를 배제하는 방식의 네거티브 공천이 아니라 민주당 정체성에 맞는 사람을 찾겠다는 포지티브 공천을 표방했는데, 결국 힘센 계파가 밀어주는 사람이 공천받는 방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3월2일까지 나온 세 차례 공천 내용을 들여다보면, ‘리모컨 공천’ ‘기득권 공천’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공천의 기준과 원칙은 사라지고, 한명숙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 그룹과 현역 의원 위주의 공천이 이뤄졌다. 영남권 공천을 제외하고 단수 공천 지역 59곳 가운데 전·현직 의원이 47명이나 됐고, 38개 경선 지역 가운데 전·현직 의원이 후보로 나서는 곳이 17곳이었다.

‘X맨’ ‘MB맨’도 거르지 못하는 기준

특히 임종석 사무총장과 이화영 전 의원을 공천하면서 도덕성 기준은 애매모호해졌다. 임 사무총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고, 이 전 의원은 공천받기 전날 저축은행 관련 불법 자금 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내에는 지도부가 밝힌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재판에 계류 중인 다른 공천 신청자들도 구제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재판 계류자들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심사하겠다는 건 결국 지도부와의 친소 관계에 따라 구제하겠다는 말 아니었나. 어쩌면 형평성을 고려해 전원 구제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심위가 가장 눈여겨보겠다고 밝힌 정체성 기준도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재벌 개혁 등과 관련해 민주당의 ‘X맨’으로 지목된 김진표 원내대표의 공천 여부를 놓고 외부 공심위원들과 내부 공심위원들이 찬반 토론만 거듭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 선거구에서 ‘MB맨’으로 활약하던 구인호 전 강원도의원을 경선 후보로 결정했다가 뒤집는 헛발질까지 했다. 이마저도 잘못된 결정을 취소한 게 아니라, ‘후보 자격 박탈’이었다.

이러다 보니 들리는 건 계파 간 불협화음뿐이다. 자신들의 몫을 차지하는 데 실패한 쪽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친노 공천’ ‘486 공천’이라는 비판은 총선은 물론 대선 과정에서도 두고두고 민주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학영 전 한국YMCA 사무총장, 송호창 변호사 등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과 여성 법조인 등 정치 신인들의 전략공천도 당의 전략 부재 속에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의 안이함이다. 광주 동구 투신자살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이런 안이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2월26일 광주 동구에서 모바일투표 선거인단 불법 모집 의혹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를 받던 전직 동장이 투신해 숨지자, 한명숙 대표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광주 동구를 ‘전략공천지’로 결정했다. ‘호남의 정치 1번지’라고 불리는 곳에서 동원 선거라는 구태 정치를 보인 것도 문제이지만, ‘민주당 공천=당선’인 지역에서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광주·전남 지역 60여 개 시민·사회·노동단체로 구성된 ‘체인지 2012 광주연대’가 2월29일 비상시국회의를 열어 “지역에서 새누리당과 똑같은 독식의 정치를 해온 민주통합당을 심판해야 한다”며 민주당의 ‘무공천’을 요구하는 등 지역 여론이 악화하자, 민주당은 3월2일 ‘무공천’ 방침으로 선회했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100% 돌려드리겠다”며 대대적으로 내걸었던 국민참여경선이 조직 세몰이 경쟁으로 변질돼 앞으로 경선 불복 등 후유증이 예상되는데도, 민주당은 이렇다 할 보완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허주’ 나올까

그러는 사이, 민주당 지지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2월24~25일 조사에서는 새누리당(38.2%)이 민주당(32.9%)에 5.3%포인트 앞섰고, 2월27일 리서치뷰 조사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율(38.6%)이 민주당(31.1%)보다 7.5%포인트 높았다. 대체로 새누리당 지지율은 상승세를,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인다는 게 특징이다.

민주당의 ‘반전 카드’로는 호남 물갈이와 야권 연대 등이 꼽힌다. 지금까지 까먹은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공천 개혁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공천 혁명 수준이어야 할 듯하다. 민주당의 ‘허주’가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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