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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국 정치, 4개의 단서를 붙잡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앞둔 안갯 속 정치 지형… 안철수의 확신, 문재인의 운명, 여소야대, 2030세대란 열쇳말로 읽은 민심의 향배
등록 2012-01-19 13:25 수정 2020-05-03 04:26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셀프 탄핵’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은 상상 초월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안철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2030세대 등 새로운 화두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테러, 돈봉투 등 구시대의 유물이 한데 섞여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정치 지형을 만들고 있다. 한 해에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실시되는 것은 20년 만의 일이다. 선거를 앞둔 명절 민심은 결정적이다. “누가 그랬니, 누구는 이런다니, 그 당이 그랬니, 이 당은 왜 그러니” 하며 주고받는 말들 속에 민심의 향배, 선택의 방향이 결정된다. 총선과 대선의 몇 가지 열쇳말을 짚어봤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 <한겨레> 김태형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 <한겨레> 김태형



안철수의 확신

의사 안철수가 벤처사업가 안철수로 변신할 때 고민의 화두는 열정, 지속성 그리고 기여였다. 이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의사를 그만두고 보안 벤처를 할 때는 보안이 훨씬 의미가 크고, 7년 동안 해온 일이라 열정을 갖고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의사로서 기여하는 것보다 보안으로 기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지난 1월8일 미국 출장 전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정치 참여에 대한 고민의 기준도 똑같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정치와 사회 기여를 고민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열정을 갖고 계속 어려운 일을 이겨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어떤 선택이 의미가 있는가,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확신이다. 그는 “정치는 이미 많은 분이 하고 있는데다, 이전에 내가 하던 일과는 좀 다른 것 같다. 해본 적이 없는 분야라 게스워크(짐작), 상상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치에 몰입할 열정이 있는지, 정치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지속성을 가진 정치를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까지는 서지 않았다는 얘기로 읽힌다.

안 원장에게 확신은 ‘영혼’과 일치하는 개념인 듯하다. 그는 “글은 10~20년 뒤에도 생각이 안 바뀔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만 쓴다. 실제 10년 전 책에 쓴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영혼과 일치하도록 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미국 현지에서 만난 기자들에게는 “고민을 할 때 ‘고민’이라는 단어를 쓴다. 미리 정해놓고 나서 수순을 밟기 위해 고민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게 내 어법”이라고 했다.

안 원장이 고민의 결과로 확신을 갖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든 그가 정치 입문 여부에 대해 이만큼 얘기한 것은 이전과 사뭇 달라진 태도다. 다만, 기부재단 일을 우선적으로 마무리한 뒤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한다. 기부재단과 관련해서는 1월 말~2월 초 발기인대회 등 구체적인 행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에게 정치와 관련한 조언을 하고 있다는 김효석 민주통합당 의원은 “안 원장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라며 “하나 끝내놓고 다음 일을 하는 식인데, 지금은 기부재단 일이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치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대선만 놓고 보면, 기부재단과 서울대 업무 등을 고려할 때 4월 총선 전에 출마 선언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4월 총선 때 ‘야권을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뛰어들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는 야권의 ‘희망사항’에 가까워 보인다. 총선에 개입하지 않은 상태로 대선에 ‘직권상정’할 경우 ‘무임승차’라는 비난을 살 수 있으니 총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달라는 ‘압박성 희망’인 셈이다. 만약 대선에 나오려면 늦어도 하반기 초에는 결정을 해야 한다. 6~7월에는 야권이 대선후보 경선 국면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직접 출마할 경우는 물론, 불출마할 때도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올해 정치판이 요동칠 것은 분명하다. 기억해야 할 사실 하나. 안 원장은 대선 출마에 대해 한 번도 부정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4월 총선 때 부산 사상구에서 출마한다. 부산발 ‘문재인 태풍’은 과연 불 것인가. SBS ‘힐링캠프’ 에 출연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SBS 제공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4월 총선 때 부산 사상구에서 출마한다. 부산발 ‘문재인 태풍’은 과연 불 것인가. SBS ‘힐링캠프’ 에 출연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SBS 제공



문재인의 운명

‘문이열린캠프’. 1월12일 부산 사상구 사상지하철역 앞 건물에 문을 연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총선 선거사무소 이름이다. 선거 구호는 ‘바람이 다르다’. ‘wind와 hope 두 가지 뜻’이라고 한다. 민주당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부산·경남(PK) 지역에서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의 바람과 희망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문 후보가 지난해 4·27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에서 야권의 중재자로 나섰을 때, “신부님이 속세로, 시장통으로 나왔다”(백원우 민주당 의원)는 표현이 나왔다. 그만큼 그는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만으로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그는 야권 통합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과 부산 동구청장 보궐선거 때 생전 처음으로 유세 마이크를 잡았고, 12월26일에는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문 후보는 지난해 12월31일 트위터에 “제겐 참 특별한 해였다. 책, 베스트셀러, 북 콘서트, 통합운동, 출마까지. 새해 제 삶은 또 어떻게 될까요?”라고 썼다.

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묻자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높다. 분위기가 괜찮다”고 말했다. 의 새해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36.6% 지지율로, 이 지역에서 3선을 했던 권철현 전 한나라당 의원(27.4%)을 앞섰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당내 조사로는 아직까지 어느 후보를 넣어도 문재인 후보에게 지는 걸로 나온다”고 말했다. 문 후보 쪽은 1월9일 방영된 SBS 예능 프로그램 의 출연에 대한 반응이 좋다며 고무돼 있다.

사상구는 부산에서 가장 큰 공단이 있고, 젊은 노동자와 타 지역 출신 비율이 높은 곳이다. 2010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김정길 후보의 득표율(48.5%)이 부산에서 가장 높았다. 문 후보 쪽은 “사상구는 경남 양산과 김해로 이어지는 곳으로, ‘낙동강벨트’의 승리를 위해 문재인 카드를 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가 당선된다면 ‘PK 지역을 돌파해낸 야권 대선주자’라는 자산을 확보하게 된다.

당선을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부산·경남 지역에서 반한나라당 정서가 커지긴 했지만, 그게 야당 지지로 옮아갔다고 보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문 후보가 전면에 나섰던 지난해 10·26 동구청장 선거 때 민주당 후보 득표율은 36.6%에 그쳤다. 현역인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한나라당이 ‘문재인 맞불 작전’으로 전략공천을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영남 지역 전체의 선거판이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로 형성될 경우 어려운 싸움이 될 가능성이 여전하다.

총선 출마를 말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낙선할 경우 대선주자로서 정치적 타격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문 후보는 “대선 행보로 생각한다면 이번 총선 출마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부산 지역 총선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의 전부를 던질 생각이고, 그다음 문제(대선)는 그다음에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의 운명은 부산 사상구 총선 결과에 달렸다.

2008년 7월11일 18대 국회 개원식 모습. 당시 총선에서 153석의 과반 여당이 된 한나라당(현재 166명)은 올해 4월 총선에서는 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줄 위기에 처했다. <한겨레> 강재훈

2008년 7월11일 18대 국회 개원식 모습. 당시 총선에서 153석의 과반 여당이 된 한나라당(현재 166명)은 올해 4월 총선에서는 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줄 위기에 처했다. <한겨레> 강재훈



여소야대

‘탄핵풍’이 몰아쳤던 2004년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은 전체 299석의 절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했다. 여대야소.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천막 당사를 치고 “개헌저지선(100석)만은 확보하게 해달라”고 읍소해 얻은 한나라당 의석은 121석이었다. 영남 68석 가운데 60석을 쓸어담은 결과였다. 수도권(109석)에선 33석을 건졌다.

4년 뒤인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대선 4개월 만에 치러진 총선이어서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됐다. 공천 갈등으로 튕겨나간 ‘친박연대’(현 미래희망연대)가 14석을 차지해 예상보다 줄긴 했지만 153석을 얻었다. 여대야소. 민주당은 81석에 그쳤다. 수도권(111석)에선 26곳을 건졌다.

올해 4월 19대 총선은 어떨까. 여소야대가 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대통령 임기 말에 치러지는 선거에서는 ‘정권 심판론’이 작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야권의 전략가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민주당 의석이) 절반이 넘을 거다. 한나라당 스스로 120~130석을 보는 것 같은데, 진보 진영은 20석 넘기가 쉽지 않을 거고, 그러면 나머지는 어디 가 있겠나”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몇 가지 변수가 있다. 우선 ‘박근혜 파워’다. 한나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 돈봉투 사건 등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지만,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쇄신 성적표에 따라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 둘째 변수는 ‘야권 분열’이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민주당이 대선을 위해 통합진보당에 어느 정도 양보를 하겠지만, 선거 연대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민주당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150석을 넘기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정당들은 어떨까. 통합진보당은 원내교섭단체(20석) 라는 목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언론사들의 세밑·새해 여론조사에서 통합진보당은 1~3%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민주노동당 때보다도 낮은 최악의 수치다.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까지 ‘복지 강화’ ‘부자 증세’ 등을 외치며 좌클릭하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차별성 있는 의제를 제시하지 못하는 탓이다. 낯선 이름을 알리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현 상황을 타개할 방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사실상 대전·충남 정당인 자유선진당은 현역 의원 3명이 민주당으로 빠져나가 15명이 남았는데, 이 수를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총선에서 내세울 만한 대선주자가 없다는 건 치명적 약점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의 안희정 지사가 당선된 것도 자유선진당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2030세대’의 위력은 인터넷 선거운동 허용을 계기로 더 폭발력을 갖게 됐다. 서울 덕수궁 앞의 한 정치 집회에서 스마트폰으로 행사 장면을 촬영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한겨레> 김정효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2030세대’의 위력은 인터넷 선거운동 허용을 계기로 더 폭발력을 갖게 됐다. 서울 덕수궁 앞의 한 정치 집회에서 스마트폰으로 행사 장면을 촬영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한겨레> 김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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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

2030세대는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20대 69%, 30대 76%가 박원순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게임 끝. 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끈 건 분노와 SNS였다. 살인적 액수의 등록금과 청년실업, 전세난 등에 대한 분노와 불안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되고, 투표라는 행동으로 옮아갔다. 집권세력에 대한 강한 거부 정서와 함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은 투표 의지를 강화한다.

2030세대의 이런 투표 성향이 짧은 기간에 달라지진 않을 듯하다. 투표율 상승 추세도 지속될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를 비교하면, 20대는 8.4%포인트, 30대는 6.8%포인트 투표율이 높아졌다. 반면 50대와 60대는 오히려 각각 4.2%포인트, 1.0%포인트 낮아졌다. 2006년 참패했던 민주당은 2010년 대승을 거뒀다. 올해 총선·대선에서도 2030세대의 투표율이 높아지면 야권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월13일 인터넷 선거운동을 상시적으로 허용한다는 결정을 내려, 2030세대의 위력에 더 불이 붙게 됐다. SNS를 ‘갖고 노는’ 젊은 층의 투표 참여 열기가 더 뜨거워질 것이란 얘기다. 윤희웅 실장은 “총선에서 20~30대는 강한 심판 정서를 나타낼 것”이라며 “대선에서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바람도 상당한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뒤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결국 장외 후보인 안철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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