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정당이다. 2011년 10월30일 창당준비위원회가 꾸려졌을 뿐이다. 강령과 당헌의 초안도 안 나왔다. 발기인(당원) 수는 정당 설립 요건에 한참 못 미친다. 5개 광역시도에서 최소 1천 명씩을 확보해야 하는데, 2012년 1월1일 현재 전국의 창당 발기인을 다 더해도 1200명이 안 된다. 이 추세면 창당의 1차 목표시한인 1월 말을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녹색당을 눈여겨보라고 말한다. 2012년 정권의 향배가 어찌되든 ‘시간은 녹색의 편’이라는 것이다.
“녹색당, 이제야 당 같은 당 만나”
2011년 12월28일 서울 영등포로터리 인근에 자리잡은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실을 찾았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어수선했다. 회의 공간과 사무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것은 물론, 기본적인 사무 집기도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뿜어대는 열기만큼은 어지간한 다단계 판매조직 사무실 못지않았다.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렸고, 사무실 한쪽에선 자원봉사를 하겠다며 찾아온 당원들을 상대로 교육이 한창이었다. 이따금 입당원을 들고 찾아오는 시민들도 있었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정당이란 곳도 작은 권력을 두고 내부 다툼에만 골몰해. 시민의 자유와 권익을 위해 진심을 갖고 싸우려는 자세가 안 보인다니까. 녹색당, 이제야 당 같은 당을 만났어.”
당원 가입을 위해 이날 강원도에서 상경했다는 김완순(57)씨였다. 그는 지난달 2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가 처음 창당 소식을 접하고 당원이 되기로 결심한 경우다. 시민단체 2~3곳의 회원으로 활동한 적은 있지만, 정당 가입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의석수보다 녹색의 정신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펼쳐나가느냐가 중요하다”며 “정권 장악이 정당의 최고 목표라는 고루한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서 녹색당 창당이 시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 번째 시도는 1989년 대한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전·반핵·환경보전 등의 가치를 내걸고 동물학자와 자연보호운동가 등이 중심이 돼 발기인 대회까지 열었지만 정식 창당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2002년 지방선거에선 녹색평화당이란 이름으로 광역의원 후보를 내기도 했고, 2004년엔 초록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정당 설립 작업에 착수했다. 물론 정당 설립 단계까진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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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서부터 차근차근 조직 틀 다져
이번에 꾸려진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는 환경운동가와 주민운동 활동가, 생활협동조합 조합원 등이 주축이다. 여기에 7천여 명에 달하는 독자 모임의 일부와 과거 민주노동당 등에서 활동했던 정당원들도 가세했다. 서울 지역 조직책임자인 김현씨는 과거 녹색당 창당이 실패했던 이유를 지역의 풀뿌리 조직과 결합하지 못한 채 서울 중심의 명망가 조직에 머물렀던 데서 찾았다. “머리만 있고, 몸통과 손발은 없는 기형 조직이었던 거죠. 이번에 모인 사람들은 다릅니다. 지역의 주민들을 조직하지 않고선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아래로부터 차근차근 조직의 틀을 다지고 있습니다.”
진보정당 쪽에서 제안하는 ‘적(노동운동)-녹(환경운동) 연대’에 대해선 신중한 분위기다. 적과 녹은 근본 원리가 다르다고 보는 근본 생태주의자부터 적-녹-흑(아나키즘)이 함께 가야 한다는 생태주의 좌파까지 당내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서다. 물론 다수의 흐름은 진보정당이나 노동운동과의 연대는 필요하지만 우선은 녹색의 독자적 가치를 내건 정당 설립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창당준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성장에 기반한 분배를 강조하는 진보정당과 달리 우리는 성장 이데올로기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며 “정책 이슈나 사안별 연대는 가능하겠지만, 당 대 당의 연대 문제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야권 연대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이냐는 점이다. 실제 지역에서 발기인을 모으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야권의 표 분산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다. 창당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야권의 통합과 연대가 필요한 시기에 당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며 “총선 전략도 이런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비례 후보에 집중하는 방안 유력
일단 4·11 총선에 후보를 내되 지역구 출마는 최소화하고 비례 후보에 집중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경쟁력 있는 인물들을 비례 후보 명단에 포진시키고, 선거 공간을 활용해 핵발전소 신설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같은 환경 현안을 정치 쟁점으로 부각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들의 복안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득표율 2%를 채우지 못해 어렵게 창당한 정당이 해산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비관하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계기로 경쟁보다는 서로 돌보는 삶을, 수량적 성장보다는 행복의 증진을, 자연과 동물에 대한 착취 대신 겸허한 공존을 생각하는 시민들이 하나둘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확실히 녹색당의 편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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