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를 탈퇴하면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
성아무개 노조 지부장은 응하지 않았다.
“(노조를 그만두지 않더라도) 지부장을 그만두면 불이익 처분은 없다. 보장한다.”
성 지부장은 부당한 요구라고 생각했다. 회사는 업무를 주지 않았다. 동료들은 상사의 불이익이 두려워 성 지부장과 함께 점심을 먹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왕따가 됐다. 그렇게 4개월을 버텼다.
“괴롭다”고 말하니 상사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이 정도 왕따는 참아라. 네가 자초한 것이다”였다. 그 상사는 “희생당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노조로부터) 조직을 보호해야겠다”고 말했다. 성 지부장은 서울서부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았다. 노동청에서는 성 지부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을 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결국 그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노조가 “조합비 공제 말라” 요청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현재 임금체불·부당노동행위 등으로 노조와 개발원 사이에 걸려 있는 소송만 4건이다.
처음부터 노사가 갈등한 건 아니었다. KMI에서 공금횡령과 관련한 비리가 적발된 2007년 당시만 해도 노사 동수로 제도개선위원회가 꾸려질 만큼 관계는 원만했다. 관계가 악화된 것은 2009년부터였다. 정부가 시행한 ‘공공기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 시작이었다. 같은 해 단체협약이 해지되고, 노조가 사무실을 잃고 거리에 나앉았다. 제도개선위의 해체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2년이 흐르고 노조원도 하나둘 떠나갔다. 107명 정규직 가운데 92명이 노조원이었지만 지금은 20명 남짓한 수만 남았다. 결국 노조는 지난해 “조합비를 공제하지 말아달라”고 회사 쪽에 요청했다. 조합 보호를 위해서였다. 노조는 KMI 쪽에서 조합비 공제 목록을 들여다보고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구분한 뒤 탈퇴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조합비가 없어 조합 운영 자체가 어렵지만 어쩔 수 없다. 실제로 조합비 공제를 중단하자 조합원의 노조 탈퇴 행렬이 멈췄다. 전·현직 노조 간부 4명은 해고(1명은 계약해지)됐다. 쫓겨난 노조는 KMI 근처 건물에 조그만 사무실을 얻었다.
지난 10월27일 김경신 부지부장을 만났다. 그도 해고자다. 전 지부장이었던 한광석씨와 함께 해고됐다. 쫓겨난 지 2년이 된 이들은 집을 장만하고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김 부지부장이나 한 전 지부장의 직장 생활은 평범했다. 그런데 ‘평범’했던 김 부지부장의 해고 사유는 47가지에 이른다. 업무방해·명예훼손·절도 등이 주된 이유다. “노동청이 생긴 이래로 47개 사유로 해고를 당하는 사람은 처음일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해고 뒤 KMI는 47가지 혐의를 이유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47가지 혐의 모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부지부장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에서도 47개 사유 가운데 어느 하나도 징계 및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현재 고등법원까지 소송이 진행됐고,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비위 사실 고발한 노조 간부 해고”
해고된 노조 간부들이 억울해하는 것은 해고 사유가 터무니없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입수한 ‘확인서’를 보면, 적게는 수백만원부터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허위 출장 등으로 부서 운영비를 전용한 13명이 등장한다. ‘확인서’는 일종의 자술서로 자신들의 법 위반 사실을 인정하는 문서다. 하지만 해당 임직원들은 경고·주의 수준의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인정한 비리에 KMI 쪽은 왜 가벼운 처분을 내렸을까. 노조 쪽에서는 “징계 처분을 내리는 인사위원회에 비위 당사자가 2명이나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노조 간부에 대한 징계가 시작된 2008년과 2009년 등에도 비위 당사자들은 각각 4명, 3명씩 인사위원회에 적을 두고 있었다고 노조 쪽은 주장했다. 당시 비리에 연루된 임원급 직원들은 지금도 개발원 내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은 이뿐만 아니다. 2009년 노조 간부들은 비리에 연루됐지만 경징계로 끝난 임원급 직원 1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노조에서 법 위반자들을 고소한 뒤 노조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 부지부장은 “비위 사실을 고발한 노조 간부들은 검찰이 무혐의를 내린 사유들로 해고 등 중징계를 받았다”며 “인사위원회가 기형적으로 구성된 상태에서 노조 간부들에게만 가혹한 판단을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간부들이 고발한 13명에 대해 KMI는 법률자문 비용을 지원했다고 노조 쪽은 주장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법 위반자들의 변호를 도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법률 지원을 요청한 곳은 KMI의 현직 감사가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이었다. 원래 소송비 지급 규정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도 않았다. KMI는 비리 연루자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쳤다. 2010년 당시 소송비 지급 규정 신설을 심사한 규정심의위원회 9인 가운데 위원장을 포함한 4명이 비리 연루자라는 게 노조 쪽 주장이다.
지난 국정감사 당시 이성남 민주당 의원이 낸 자료를 보면 KMI의 운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07년부터 KMI의 비리 연루 연구원 13명 가운데 6명이 인사위원회, 규정심의원회 등의 위원을 지냈다. 김경신 부지부장은 “결국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인사위원회를 열고, 규정도 바꿔가며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KMI 쪽에서는 노조의 주장을 전면 부인한다. KMI의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에서 노조 해체를 조직적으로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소송 비용과 관련해서도 “소송과 관련된 비용은 당사자가 지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소송업무 처리규정과 관련해 여러 차례 문제가 돼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다.
해고한 임원들 건재해 복직해도 걱정
김 부지부장 등 해고자들은 최근 고등법원까지 해고 무효 취지의 판결이 내려져 대법원 판결 뒤에는 복직을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다. 자신들을 해고한 비리에 연루됐던 임원급 연구위원들이 조직에 건재하기 때문이다. 김 부지부장은 “감사원 감사 등 고강도의 감사를 통해 비리를 근절하고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나선다고 해결이 될까.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관할 경찰서, 관할 지방검찰청, 관할 지방고용노동청 등에서 KMI의 비리와 부당노동행위를 지적했다. 2009년과 2011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됐다. 그러나 지금껏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KMI이 속한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KMI에 대한 기관평가에서 2008년부터 매년 ‘우수’ 평가를 내렸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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