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없는 토끼가 나타났다. 일본 쓰시마의 한 농장에서 지난 5월 태어났다. 토끼가 태어나기 두 달 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농장은 후쿠시마에서 북서쪽으로 30km 떨어져 있었다. 일본 시민단체 ‘식품과 생활의 안전 기금’이 조사에 나섰다. 어미 토끼가 방사능에 심하게 내부 피복됐다. 원전을 운영하던 사기업은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 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반원전 시위를 했다.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전 반대 펼침막을 지브리스튜디오에 내걸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난 6월 스페인이 수여한 문학상 시상식에서 원전을 비판했다. “일본인은 핵에 대해 ‘노’(No)라고 계속 외쳐야 했다. …‘효율’과 ‘편의’라는 이름을 가진 재앙의 개들을 좇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강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비현실적인 몽상가여야 한다.” 하루키는 원전유지론자가 탈핵론자를 비난할 때 쓰던 용어인 ‘비현실적 몽상가’라는 말을 명예로 받아들였다.
탈핵이 지금 절박한 이유
‘비현실적 몽상가’라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정치세력이 한국에서도 만들어진다. 녹색당 중앙당 창당발기인 대회가 10월30일 오후 2시 서울 양화동 선유도공원에서 열린다. 시민운동을 오래 한 하승수 변호사(법무법인 이안), 김현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오관영 ‘함께하는 시민행동 좋은예산센터’ 상임이사 등 주로 지역자치운동과 환경운동에 몸담은 이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법률상 중앙당 창당 기준은 200명이다. 이들은 정당법에 따라, 중앙당 발기인대회를 마친 뒤 경기도(11월5일), 서울과 부산(11월11일) 등의 순서로 지역별로 발기인대회를 열 예정이다. 5개 시도에서 각각 1천 명씩 모두 5천 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법률상 정당을 만들 수 있다. 당장 내년 총선에서 전체 유권자 가운데 3%의 지지층을 확보하고 당원 3만 명을 모집하는 것이 중기 목표다. 녹색당은 2012년 총선 전략으로 정당투표를 최대한 이끌어내고, 지역구의 경우 범야권 통합 논의에 “능동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생활협동조합, 지역운동 활동가와 후원자들이 먼저 당원이 되리라 기대한다. ‘진보신당 녹색신좌파 활동가 네트워크’ 등 기존 정치세력도 정책과 지향이 일치하면 함께할 수 있다는 태도다.
이들은 ‘녹색당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0월8일 창당 준비 워크숍 자리에서 발기대회 취지문을 공개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성장 지상주의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더욱 피폐시키고 있다”며 “경제공황·기후변화·빈부격차·핵사고 등이 이를 증명하며, 이는 녹색사회로의 전환을 알리는 엄중한 신호”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우리는 2001년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서 합의한 ‘지구녹색당헌장’의 생태적 지혜, 사회 정의, 참여 민주주의, 비폭력, 지속 가능성, 그리고 다양성 존중이라는 가치를 녹색 전환의 원칙으로 삼는다”며 “다음 세대가 이어받을 수 있게 (지구를) 보전하는 것은 우리가 회피하지 말아야 할 최우선 가치”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당장 시급한 핵심 의제로 ‘탈핵’을 꼽았다. 워크숍 자리에서 “핵, 그리고 핵발전은 생명, 평화, 미래 세대와 지속 가능성, 다양성, 탈성장, 탈토건, 녹색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또한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탈핵은 녹색당의 최종 지향점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라고도 했다. ‘녹색당을 만드는 사람들’이 탈핵을 핵심 의제로 꼽은 데는 정부의 원전 정책 결정이 올해 하반기와 내년 초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경북 울진 등 전국 4곳에 원전 신규 부지 유치 신청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내년 3월에는 세계 각국이 핵무기 및 핵발전 안전성을 논의하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이명박 정부는 이 자리에서도 ‘원전 르네상스’로 표현되는 원전 확대 방침을 재확인할 계획이다.
원자력이 복지의 걸림돌
서구에서 녹색정치는 일찌감치 정치적 목소리를 내왔다. 1968년 혁명으로 등장한 진보적인 젊은 세대가 창당 주역이다. 사회당, 공산당 등 기존 진보정당은 불신당했다. 독일 녹색당은 연정에 참여할 정도로 성공했다. 냉전, 오랜 군사독재 등을 겪었고 여전히 분단국가인 한국의 역사 시계는 이런 세계사의 시계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다. 녹색평화당이 2000년 지방선거에 참여했으나 실패하고 사라졌다. 2004년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기초의회 의원 등 100여 명이 ‘초록정치연대’를 만들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노무현의 시대였고 진보정당의 시대였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도 환경주의를 내걸었으나 대표 의제는 아니었다.
창당 작업을 주도하는 하승수 변호사는 지난 10월19일 이 ‘환경 의제를 내걸었던 기존 진보정당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한 질문에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환경이 핵심 의제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하 변호사는 “민주노동당조차 대선 국면에서 경제성장률에 집착했다. 성장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진보조차 그것을 이야기했다. (탈성장주의는) 기존 진보정당이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창당 준비 워크숍 자료에서 탈핵캠페인의 과제로 “탈핵이 낡은 의제, 내 삶과 동떨어진 의제, 시기상조의 문제라는 인식을 깨는 것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그런 인식과 선입견이 녹색당을 둘러싸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2012년 총·대선을 가늠할 키워드로 ‘복지’ ‘야권 통합’을 꼽는 학자가 많다. 하 변호사는 탈핵이 복지만큼 절박한 삶의 문제라고 거듭 주장했다. 특히 그는 원자력발전이 앞으로 복지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의 최대 적은 핵발전과 토건주의다. 핵발전이야말로 복지의 최대 적이다. 현재 한국의 핵발전은 하나의 거대한 분식회계다. 실제보다 비용을 줄여 전기요금을 싸게 하고 있다. 정부는 핵발전소를 나중에 폐쇄할 때의 비용을 계산하지 않으며 (폐쇄비용) 적립조차 안 한다. 계획대로라면 2030년께 원전 16개를 폐쇄해야 하는데, 그 비용과 폐기물 처리 비용이 반영돼 있지 않다. 지금 계산해야 할 비용을 뒷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탈핵에 관한 오해가 있다. 원전을 줄여도 일자리가 줄지 않는다. 독일은 원전을 없애고 재생가능에너지산업을 만들어 일자리 35만 개를 만들었다.” 하 변호사는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했다. 정당정치를 멀리했다. 진보정당 당적도 가진 적이 없다. 참여정부 시절 전북 부안의 핵폐기장 갈등을 현지에서 지켜봤다. 원자력을 고민하게 됐다.
진보정당도 주춤하는데
하 변호사는 ‘탈핵이 정말 절박한가’ ‘진보정당도 주춤하는데 왜 다시 녹색당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인터뷰 말미에 “참 많이 들은 질문”이라고 말했다. 녹색정치 실험에 대해 ‘비현실적 몽상가’라는 비판의 시선이 원전확대론자 사이에 존재한다. 하 변호사는 그 비난을 명예로 받아들인다. 그 비난을 명예로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이 10월30일 많이 모일 것이라고, 하 변호사는 기대하고 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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