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약세지역 출마후보 비례대표로 구제?

중앙선관위가 내놓은 ‘지역구결합 비례대표의원제’안…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 구조 깰 수 있나
등록 2011-03-31 11:34 수정 2020-05-03 04:26

피로회복제가 그렇듯이 ‘지역주의’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어폐가 있다. ‘주의’(ism)의 사전적 의미는 ‘굳게 지키는 주장이나 방침’ 또는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이다. 지역 뒤에 붙어 어울리지 않는다. 흔히 지역주의라고 표현되는 말의 뜻풀이는, 지역감정 혹은 지역구도로 인한 폐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견고한 지역 편중 투표 성향

정치권에서 지역구도에 따른 폐해, 영·호남의 극심한 표 쏠림 현상은 해묵은 숙제였다. 두 지역 간 갈등의 근원이 삼국시대에서 비롯됐다거나 고려 태조 왕건의 유훈인 ‘훈요 10조’(8조 차령 이남 출신은 반역의 염려가 있으니 벼슬을 주지 말 것)에서 확인된다는 말도 있다. 지역주의를 논하는 또 하나의 논점은 지역 발전과 자원 배분, 인사 등에서 이익을 누려온 쪽과 그렇지 않은 쪽, 즉 지역주의의 역사성과 정치 성향의 차이를 무시하고 드러난 양태만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정치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사회 통합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결국 지역주의를 해소해야 하는 정치가 오히려 거기에 의존하거나 확대시켜왔다는 점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해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3월24일 정치관계법 개정 토론회를 열었다. 첫 번째 세션은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국회의원 선출제도 개선’이었다. 선관위는 독일과 일본의 제도를 참고해 ‘지역구결합 비례대표의원제’를 제안했다.연합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3월24일 정치관계법 개정 토론회를 열었다. 첫 번째 세션은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국회의원 선출제도 개선’이었다. 선관위는 독일과 일본의 제도를 참고해 ‘지역구결합 비례대표의원제’를 제안했다.연합

영·호남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가 눈에 띄게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와 신민당의 윤보선이 맞붙은 1967년 6대 대통령선거였다. 이후 호남 출신의 김대중이 나선 1971년 7대 선거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야권이 분열한 가운데 치러진 1987년 13대 대선을 포함해 최근의 국회의원선거까지, 노무현의 당선과 열린우리당의 출현으로 일시적으로 완화된 시기를 제외하곤 지역 편중 투표 성향은 견고해졌다.

가장 가까웠던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대구에서 69.37%의 득표율(전국 평균 48.67%)을 보였지만 광주에선 8.59%에 그쳤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의 전신) 정동영 후보는 광주에서 79.75%의 득표율(전국 평균 26.14%)을 보였지만 대구에선 6%에 그쳤다. 국회의원선거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전신인 신한국당·민주자유당 포함)은 1992년부터 치러진 네 차례 총선에서 호남에서 단 한 석(1992년 14대 총선)을 얻었고, 민주당(열린우리당·국민회의 포함)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4석, 2008년 18대 총선에서 2석을 얻는 데 그쳤다(표 참조).

계급과 계층, 혹은 그와 관련이 깊은 정책에 기반한 선거가 아니라 지역의 강한 지지세에 근거를 둔 정치와 선거는 여러 폐해를 낳았다. 정치인은 표와 돈이 나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정당 민주화의 영향으로 과거보다 완화되기는 했으나, 지역주의가 강한 구조에서는 제왕적 총재와 그를 중심으로 한 계파에 충성을 바쳤다. 그러다 보니 정책선거가 실종되고, 유권자들은 정치와 선거에서 멀어졌다.

역대 대통령선거에서의 정당별 득표율 현황(위) / 역대 국회의원선거에서의 정당별 당선인수 현황

역대 대통령선거에서의 정당별 득표율 현황(위) / 역대 국회의원선거에서의 정당별 당선인수 현황

지역구와 비례대표 동시 출마 허용

지난 3월24일 열린 정치관계법 개정 토론회에서 중앙선관위는 지역주의 완화를 위해 독일과 일본의 비례대표제에서 착안한 ‘지역구결합 비례대표의원제’ 방안을 내놓았다. 일본의 석패율 제도와 닮았으나 “한국의 현행 선거제도에 맞게 접목시켰다”는 게 선관위 쪽 설명이다.

‘지역구결합 비례대표의원제’는 현행 소선거구제와 전국단위 비례대표제, 의원정수와 비례대표의 의석 배분 방법에서 큰 변화가 없다. 하나의 지역 선거구에서 1명을 뽑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가 배분되며, 전체 의석 299석 가운데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18%인 54석(지역구 245석)을 유지한다.

변화가 있는 대목은 현재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동시 출마가 불가능한데 이를 허용한다. ‘불리한 지역에 출마해 선전할 경우’ “지역구도 완화에 기여한 후보에게 비례대표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이 제도의 도입 취지다. 득표율과 의석 비율 간 괴리를 완화한다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쉽게 말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영·호남 독점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설정해둔 ‘불리한 지역 출마와 선전’이라는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다는 점이다. 특정 조건을 달성할 때만 이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한나라당 후보가 호남의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에 출마해 당선되는 조건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나라당이 광주와 전남·북 지역구에서 각각 3분의 1 미만으로 당선돼야 한다 △한나라당이 지역구 출마 후보자 중 이 제도의 수혜 가능성이 높은 후보들을 당선 안정권인 상위 순번에 올려야 한다(한 번호에 2명 이상) △이 후보들은 지역구 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의 100분의 10 이상을 얻어야 한다 △100분의 10 이상 득표하고 비례대표 같은 순번에 공동으로 올라간 후보 가운데, 해당 후보자의 평균유효득표수(유효득표총수÷후보자수) 대비 득표율이 가장 높은 이가 해당 번호의 비례대표 의원이 된다. 한나라당에 민주당을, 호남에 영남(부산·울산·대구와 경남·북)을 대입해도 성립한다.

광주에 출마 의지가 있는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을 예로 들면, 지역구에서 일단 10% 이상 유효득표를 해야 하고, 당선 가능성이 있는 비례대표 순번에 올라야 하고, 그 번호 내 경쟁자(광주의 다른 지역구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에 비해 득표율이 높을 경우 지역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 의원으로 구제되는 방식이다.

지역주의 완화가 선결 과제일까?

선관위가 제안한 ‘지역구결합 비례대표의원제’ 설계가 이렇게 복잡해진 이유는, 유권자들의 정서상 의석수를 대폭 늘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지역구 의석을 줄이기도 어려운 한계 속에서 지역 독점 구조의 변화를 꾀하려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새 제도를 도입할 경우 각 분야의 전문가와 소수집단의 대표를 충원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비례대표의 문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지역주의 완화가 가장 중요한 선결 과제일까. 가장 최근의 전국단위 선거인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거둔 주요 정당의 평균 득표율(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준)을 299석의 국회 의석으로 환산해보면 한나라당 110석, 민주당 109석, 민주노동당 29석, 국민참여당 20석, 진보신당 9석이다. 그런데 실제 의석수는 한나라당 171석, 민주당 87석, 민주노동당 5석, 진보신당 1석, 그리고 국민참여당 0석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