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일까, 포장일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한국형 복지국가 구축’을 위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제출에 앞서 12월20일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법안과 관련해 박 전 대표가 공청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박 전 대표가 ‘복지’를 화두로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시작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쏟아진다.
예산이 필요 없는 한국형 복지?
특히 민주당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월16일 당 고위정책회의에서 “날치기로 그 많은 복지예산이 삭감될 때는 아무 말도 않다가 ‘박근혜표 복지’를 이야기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적 민주주의’는 유신독재로 나타났는데, ‘박근혜표 복지’는 예산이 필요 없는 복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4대강 사업처럼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하고, 유리할 땐 고개를 쳐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며 다소 자극적인 발언도 쏟아냈다.
그럴 만도 했다.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무상급식 같은 보편적 복지에 대한 공감대는 넓게 확산됐다. 야당과 시민사회에선 복지를 중심으로 정치권이 재편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여론을 확 끌어당길 만한 세력도,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가 진보·개혁 진영의 담론인 복지를 가져가면, 민주당 등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표의 측근들은 “고령화·저출산·양극화가 심각해지는 시대에 복지는 당연한 얘기 아니냐”며 복지 관련 행보에 특별한 정치적 노림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한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세 축이 외교안보, 경제, 복지라고 생각한다. 복지와 관련해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공청회는 예산안과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표 복지’의 바탕이 될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의 틀은 크게 △소득과 사회서비스의 균형적 보장 △사회보장위원회를 통한 복지 관리체계 통합 두 가지다. 개정안 작업을 총괄한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기존 사회보장기본법은 복지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현금 급여(소득보장) 중심이어서 위험을 예방하지 못한다. 또한 복지정책이 보건복지부, 노동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흩어져 있어 중복·누락되는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내용의 복지정책을 실행하려면 돈이 든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겠다는 뜻) 공약을 통해 감세를 주장한 바 있다. 세금을 깎으면, 복지에 드는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박근혜계 이혜훈 의원은 “‘줄푸세’와 복지는 전혀 상충되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세율을 낮추면 세 부담이 줄어 가계소비와 기업투자가 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 결국 국민의 세 부담은 줄지만 정부의 세수는 늘어나 복지 지출 여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재정 대책 없다면 정치적 수사 불과”하지만 여기엔 “감세로 경제가 살아난다는 건 이미 틀린 얘기다. 보편적 복지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이를 뒷받침할 실질적인 재정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진정성 없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라는 비판이 따른다.
‘세금을 깎아 경제가 성장하면 복지가 확대된다’는 주장에서 ‘복지를 확대해야 하니 세금을 깎아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의 변화는 진화일까, 포장일까? 판단은 결국 당신 마음의 문제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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