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문성근, 안희정 그리고 이해찬.
2012년 정권 교체라는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가는 길은 각각인, 그래서 한 뿌리에서 나왔으면서도 최근엔 좀처럼 한자리에 모여 앉기 힘든 정치권과 정치시민단체 인사들이 만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전 총리가 이끌고 있는 정치시민운동단체 ‘시민주권’의 워크숍에서다. ‘권력이동과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주제로 모인 이들은, 2012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뿔뿔이 흩어진 진보개혁 진영의 통합과 연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워크숍은 11월20일 충남 아산의 한 콘도에서 열렸다.
야권단일정당론과 소통합연합론
우선 모인 이들의 면면이 간단치 않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지난 6월2일 지방선거에서 도지사로 당선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노 전 대통령은 그를 “동지”라고 불렀다)에서 일약 잠재적 대권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 원장)은 각종 지지도 조사에서 야권의 대선주자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문화예술인 문성근씨는 시민의 힘으로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자며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유쾌한 100만 민란 프로젝트’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날 워크숍에서 문성근씨의 야권단일정당론과 유시민 전 장관의 소통합연합론이 맞섰다. 하지만 합의점이 모색되지도, 뜨거운 논쟁으로 번지지도 않았다. 이 전 총리는 원론적 수준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통합과 연대를 강조했고, 안 지사는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이유로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한 구체적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야권단일정당론과 소통합연합론의 목표는 유권자의 투표용지 선택지를 한나라당 대 진보개혁 진영의 단일후보로 단순화하자는 데 있다. 하지만 야권단일정당론이 한나라당과 유사 극우정당을 제외한 모든 정파를 포함한 무지개연합정당을 추구하는 반면, 소통합연합론은 당장 하나의 정당으로 합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연대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여가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목적지는 같으나 그에 이르는 경로는 서로 다르게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워크숍에서 문씨가 밝힌 ‘무지개연합정당’ 구상은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 주장해온 ‘빅텐트론’과 맥을 같이한다. 하나의 정당으로 뭉치되, 현재 여러 정당으로 흩어진 각각의 정치세력들이 당내에서 공존하며 경쟁하자는 것이다. 지역구도를 완화할 수 있는 선거구제 개편이 이뤄지고 각급 선거에서 결선투표가 도입돼 야권 단일정당이 정책과 이념에 따라 나눠지더라도 극우정당인 한나라당이 제3당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설 경우 생산적인 세포분열을 해도 좋지만, 그 이전까지는 단일정당의 틀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야권단일정당론의 핵심이다.
문씨는 “지금은 다름으로 서로 다툴 만큼 한가하지 않다. 같음을 찾아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 야권 단일정당의 당원 예약운동인 ‘민란 프로젝트’의 서약자가 5만 명이 넘으면 “매주 토요일 저녁에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당사 앞에서 합류를 호소하는 촛불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문씨가 제안한 ‘100만 민란 프로젝트’에는 11월 말 현재 3만4천 명 정도가 참여했으며,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지역별 ‘번개’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참여는 저조한 편이다. 민주당의 이인영·천정배 최고위원과 원혜영 의원 등이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정도다.
유 전 장관은 “결국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투표용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한나라당 대 온리 원(only one)으로 선택설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여러 정치세력들이 손을 잡는 연대에서는 강도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가능하고 그중 하나가 소통합연합론이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이해 따라 민주당에 대한 인식도 달라통합과 연합.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른 말에 대한 유 전 장관의 인식은 이렇다. 연대 대상으로 거론되는 정당 가운데 민주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이 통합을 먼저 이룬 뒤, 정권 교체라는 국민의 광범위한 요구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민주당과의 연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꽉 끌어안는 것이 통합이라면 느슨하게 손을 잡는 것이 연합”이라며 “문성근씨는 당장 스크럼을 짜라는 얘기인데 일단 손부터 잡고 가장 높은 수준의 연대인 대통합을 위해 노력해보자”고 말했다.
야권단일정당론과 소통합연합론의 갈림길에는 민주당에 대한 인식 차이와 현실적 이해관계가 있다. 문성근씨도 “민주진보 진영의 맏형인 민주당이 배타적 폐쇄 구조로 기득권만 누리지 커가는 시민세력에게는 빗장을 열지 않는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유시민 전 장관과는 강도의 차이가 있다. 유 전 장관은 “민주당이 제1야당이고 다른 야당에 비해 압도적 지지를 받는 정당임은 인정하지만, 밖으로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민주적 질서가 없는 정당”이라면서 ‘민주당의 민주화’를 주장한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이던 시절을 왕정, 총재직 사임 이후를 귀족정에 비유하면서 열린우리당은 공화정을 시도했으나 다시 귀족정으로 회귀했다고 비유했다. 지역위원장(옛 지구당위원장)이 대의원들을 임명하고 이 대의원들이 국회의원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을 보면 지역구에서는 왕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민주당에 대한 인식 차이는 현실적인 이해관계로 직결된다. 문성근씨는 “전망이 서지 않는 연대나 후보 단일화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야권 단일정당에서 정파로서 활동하는 것이 지지자를 확대할 가능성, 경선을 통과해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지만, 유 전 장관은 현재 상태에서는 공정한 내부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이런 생각은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대연합을 주장하는 쪽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총선은 지방선거와 달리 한자리를 놓고 싸우는 구도여서 지방선거처럼 자리 나누기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링 안에서 사자와 토끼가 ‘공정하게’ 싸우는 룰이 아닌, 일정한 지분을 보장받는 정치 협상이 더 현실적이라는 셈법이 깔려 있다.
시민사회 진영, 정치시민운동 선행 주장이와 별개로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정치권의 상층연합 논의만으로는 어떤 식의 연대나 연합이 불가능한 만큼, 시민들의 구체적인 정치적 요구를 모으는 정치시민운동이 선행돼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 시민운동가는 “여러 부문으로 분화됐던 시민운동이 정치권력의 교체 없이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상황이라는 데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며 “무상급식처럼 거대담론이 아닌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모아 ‘내가 꿈꾸는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림이 그려지면 ’어떻게’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복안이다. 곧 2011년이다. 1년 뒤 정치권력의 격변기를 앞두고 여러 세력의 움직임이 분주해질 전망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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