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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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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일대일로 맞설 진보대연합을”

심상정이 말하는 후보 사퇴 이유와 진보정치의 미래…
“민심과 소통 위해 단일화 선택, 이제 진보가 집권 시나리오 가져야”
등록 2010-06-18 19:47 수정 2020-05-03 04:26
심상정 전 대표

심상정 전 대표

조금 지친 듯했지만, 특유의 자신감과 당당함은 여전했다. 심상정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지방선거 사흘 전 급작스럽게 경기지사 후보를 사퇴한 뒤 당원들로부터 출당 요구 등 갖은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지만, “이제는 진보가 분명한 집권 전망을 갖고 집권 시나리오를 밀고 나갈 때가 됐다”는 의지는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은 지난 814호 표지이야기에서 6·2 지방선거가 진보정치의 미래에 대해 던진 물음을 곱씹으면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심 전 대표의 인터뷰을 추진했으나, 당시 심 전 대표 쪽은 “앞으로 어떤 메시지를 내놓아야 할 지 내부 논의를 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며 고사했었다. 6월11일 서울 서교동 그의 연구소인 ‘정치바로’에서 심 전 대표를 만나 미뤄뒀던 질문을 던졌다.

-올 초 야권의 선거 연합 움직임과 관련해 “연합은 할 필요성이 있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보다 먼저 우리 힘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와의 단일화는 그 전제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에 이뤄진 것인가.

=연합정치는 작은 정당에 독도 약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연합을 하려면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을 갖춰야 한다. 진보신당은 이번 선거에서 적극적·능동적 전략을 갖추지 못했다. 막판 단일화는 ‘반이명박’ 민심과 소통하기 위한 절박함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내가 완주할 경우 당이 고립되고 피해받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보 사퇴로 진보신당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민심의 요구에 당이 부응함으로써, 민심과 소통할 수 있는 비상구는 열어둔 것 아닌가. 내 결단이 당내 혼란과 충격을 가져온 건 사실이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당이 정치 연합을 포함한 진보의 재구성 과제를 적극적이고 책임 있게 논의할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본다. 논의가 잘 진행된다면, 그게 가장 중요한 성과가 되지 않겠나.

-경기지사 후보 사퇴 기자회견 때 얘기했던 “제가 짊어져야 할 짐”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진보의 현실적인 집권이다. 진보신당, 진보 정치 세력은 기존 역사에서는 주로 반대 집단, 문제제기 집단일 뿐, 대안 세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제는 진보가 분명한 집권 전망을 갖고 집권 시나리오를 밀고 나갈 때가 됐다.

-한 인터뷰에서 ‘진보신당+민주노동당+친노 세력+시민사회’의 진보대연합 구상을 밝혔는데.

=그런 광범위한 진보 정당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다만) 그 틀은 ‘조직 노선’이라기보다 새로운 진보 정당을 구성하는 비전과 정치 노선을 융합하는 범주다. 대안 세력으로서 집권을 전망하는 진보 정당은 10년 개혁 세력의 집권 경험, 10년 진보정치 세력의 성과와 한계, 시민사회운동의 정치적 성과를 종합하고 성찰한 토대 위에 서야 한다. 개혁 세력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자기성찰, 민주노동당은 북한 문제, 진보신당은 민주와 진보의 관계에 대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는 그동안의 수혈론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받아안는 가치와 비전을 정립해야 한다. 그런 정치 노선을 융합하고, 각 주체가 가진 경험과 한계를 융합하는 정치 과정, 즉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 연합의 수준과 방법은 논의 과정과 결과에 따라 규정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진보 시민을 자임하는 사람들이 흔쾌히 선택할 정당이 없다. 안티로 출발한 정당, 분화된 세력이 융합해 이들이 흔쾌히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 돼야 한다. 2012년엔 민주당과 일대일의 경쟁·협상 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정당이든 연합 수준이든, 민주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내 진보의 시대적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 논의엔 필수적으로 “이럴 거면 왜 분당했느냐, 지금은 결별의 이유가 해소됐느냐”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또한 이번 선거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연합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과 연합해 실리는 얻었지만, 당의 독자성 측면에선 주변화됐다. 진보의 토대가 더 확장되고 있지만, 진보대연합을 확고히 하지 못해 민주당의 패권이 보장된 상황 아닌가. 민주노동당도 이에 어찌 대응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럴 거면 왜 분당했느냐”는 문제제기는 친노 세력과의 연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거다. 하지만 나는 각 정치 세력의 ‘과거’와 연합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은 역사적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 각 세력이 시대 변화와 민심도 확인했을 것이고, 이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가 성찰·평가도 할 것이다. 또한 그런 성찰과 평가를 각 정치 세력이 상호 주문해야 한다. 민심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결국 정치 아닌가.

-하지만 한명숙·유시민 후보는 이번 선거 토론회에서도 여전히 ‘개방형 통상국가’를 주장했다. 이는 진보 정당이 그토록 비판한 신자유주의 문제와 직결된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 아닌가.

=그분들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선거 토론 과정만으로는 알 수 없다. 또한 시대적 요구와 민심에 부응하기 위한 성찰을 상호 촉구하고 끌어내야 한다. 서로의 과거에 ‘딱지’를 붙여 단절할 때가 아니다. 진보 시민이 마음놓고 선택할 수 있는 정당과 정치 세력을 만들기 위해 각 주체가 서로에게 성찰을 요구하고, 광장에서 융합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융합 과정에 왜 국민참여당은 되고, 민주당은 안 되는 건가.

=민주당을 무조건 배척하겠다는 건 아니다. 어떻게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정치를 할 것이냐의 문제다. 민주당의 기득권·패권은 반이명박 민심의 반사이익 때문이고, 진보 정치의 구심 형성에도 많은 지장을 주고 있다. 실제 민주당 내부의 시장만능주의자들은 진보의 가치나 정책에 동의하지 않을 거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개혁적인 학자도 많이 참여했지만, 다 제거되고 시장만능주의가 더 강화되지 않았나. 이런 낡은 가치가 주도권을 쥔 민주당을 극복해야 한다. 진보의 구심이 국민 속에서 확고할수록 민주당도 혁신될 것이고, (개별 정치인도) 민주당의 품을 벗어나 진보 쪽을 선택할 수 있다.

-유시민 후보가 경기지사에 당선될 경우, 이런 진보대연합을 함께 추진한다는 ‘이면계약’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선거 과정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후보로서의 만남 이외에 진보 정치, 진보 정당의 미래를 갖고 이야기를 나눈 바는 전혀 없다.

-노회찬 대표와는 얼마나 공감대를 이루고 있나.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노 대표와 내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앞으로도 밀도 있게 논의할 거다.

-시민사회 일각에선 미국 민주당식 연합정당 모델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도 개혁 세력과 진보 세력의 대통합을 주장한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세력 불균형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연합정당 틀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30년 동안 진보 진영과 운동권이 민주당에 수혈됐지만 독자적 블록은 형성하지 못했다. 그런 경험을 봐야 한다. 한편으론 이번 선거 결과를 잘 봐야 한다. 국민이 이명박 정권 심판의 도구로 선택한 건 민주당이 아니라 야권 연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을 제외한) 연대는 진보 정치가 더 확장되고 힘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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