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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인가 위선인가

민주당 광역단체장 후보들, 불공정 방식 문제 삼으며 경선 포기 속출…
‘당권파의 자기 사람 심기’ 내홍 격화
등록 2010-04-22 17:27 수정 2020-05-03 04:26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 방식 등을 둘러싸고 민주당의 내홍이 심해지고 있다. 4월7일 국회 정론관에서 유필우·이종걸·이계안(왼쪽부터) 등 민주당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경선 보장을 요구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 방식 등을 둘러싸고 민주당의 내홍이 심해지고 있다. 4월7일 국회 정론관에서 유필우·이종걸·이계안(왼쪽부터) 등 민주당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경선 보장을 요구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좀 심했다고 봐요. 경선 지역으로 거론된 모든 지역의 비주류 후보가 오늘 연석회의를 만들었어요. 이건 초유의 사태 아닙니까. 이번 경선을 불신 덩어리, 의혹 덩어리로 만든 모든 책임은 당 지도부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 식의 경선 관리를 계속한다면 이는 곧 민주당 사망선고와 마찬가지입니다.”

<font color="#00847C">선거인단 명부 경선 이틀 전에 받아</font>

4월15일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목소리에는 정세균 지도부를 향한 짙은 아쉬움이 실려 있었다. 이 의원은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 레이스에 참여했다가 ‘중도 포기’를 선택했다. 그때가 4월9일이었다. 그의 경선 불참으로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자연스레 김진표 최고위원으로 결정됐다.

경선 ‘포기’와 ‘완주’ 사이에서 수차례 고민을 거듭한 이 의원이 끝내 출마 의사를 접은 까닭은 간단하다. 민주당 지도부가 불공정 경선을 조장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국민참여경선을 한다고 하면서 약 9천 명에 이르는 선거인단 명부를 경선 이틀 전인 4월8일 밤에 받았습니다. 인지도가 낮은 후보일수록 선거인단에게 자신을 알리는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경선 이틀 전 명부를 건네면 후발주자는 어떻게 운동을 합니까.”

이 의원은 이와 함께 △선거공보물 발송 무산 △합동연설회 무산 △TV 토론회 무산 △여론조사 방식의 문제 등을 지적했다. 이런 경선 규칙이라면 흥행 위주의 역동적 경선은 아예 불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뒤지는 이 의원에게는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의원은 경쟁자인 김진표 최고위원이 경선 방식의 결정 권한을 행사한 최고위원회의에 계속 참여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경기를 뛰어야 할 선수가 심판 역할까지 했다는 주장이다.

이종걸 의원처럼 정세균 지도부의 경선 관리 행태를 문제 삼으며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을 포기하거나 후보 등록을 유보한 비주류 예비후보는 한둘이 아니다. 전남지사 선거에서는 주승용 의원과 이석형 전 함평군수가 후보 등록을 유보했다. 전북에서는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와 정균환 전 의원이 김완주 현 지사의 후보 자격 문제를 들어 후보 등록을 거부했다.

4월15일 현재 민주당은 경기(김진표)와 충북(이시종), 대전(김원웅), 충남(안희정), 전북(김완주), 전남(박준영) 등 6곳의 광역단체장 후보를 확정했지만 단 1곳에서도 경선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이것이 지난 2002년 국민참여경선을 처음 도입해 당내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진전시켰다는 민주당의 현주소다.

문제의 핵심은 이른바 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이다. 광역단체장 경선에 참여할 뜻을 보였다가 중도 포기하거나 후보 등록을 유보한 예비후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정세균 지도부가 경선을 빙자해 ‘자기 사람 심기’에 여념이 없다는 지적이다. 당내 비주류 인사는 “최근 빚어지는 공천 잡음을 보면 지도부의 전횡이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보다 훨씬 더 심하다. 경선 탈락자나 포기자의 주장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러 의견 가운데 하나 정도로 수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당내 어떤 선거도 이런 식으로 운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font color="#C21A8D">유일한 경선, 광주시장도 후폭풍</font>

경선이 무산된 전남이 그랬다. 전남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승용 의원과 이석형 전 군수는 경선 여론조사를 앞두고 중앙당에 두 가지를 요구했다. 경선 여론조사를 할 때 ‘재질문’을 금지하고, 유력 후보인 박준영 현 지사의 경력 소개에서 ‘김대중 대통령 공보수석’의 ‘김대중’이란 이름을 빼고 공식 경력인 ‘청와대 공보수석’을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여론조사 재질문 금지란 최초 질문 당시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은 응답자에게 재차 같은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해당 응답자는 이미 의사를 밝힌 셈인데, 재차 질문을 던지면 결과적으로 인지도에서 앞서는 현 지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박 지사가 15%가량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후보 등록을 유보하며 반발했지만 소용없었다. 민주당은 더 나아가 경선 후보 등록 시한인 4월8일까지 두 사람이 등록을 하지 않았다며 박 지사를 단수 후보로 결정해버렸다.

전북에서도 비슷했다. 경선 예비후보로 나선 유종일 교수와 정균환 전 의원이 김완주 지사의 후보 자격에 문제가 있다며 후보 등록을 거부하며 반발했다. 두 사람은 전국공무원노조가 3월30일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등의 문제를 들어 김 지사를 검찰에 고발한 만큼 후보 자격을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도부는 역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종일 교수는 “외부에서 봤던 민주당과 몸으로 부딪힌 현실은 달랐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부터 부패한 기득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지만, 이렇게 시도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는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 정세균 지도부가 소위 당권파와의 결탁 속에서 당을 비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나마 거의 유일하게 경선을 치른 광주는 혹독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은 4월10일 당원 여론조사와 시민공천배심원제 경선으로 강운태 의원을 광주시장 후보로 확정했다. 그러자 시민공천배심원제 경선에서 앞섰지만 여론조사에서 뒤져 2위로 탈락한 이용섭 의원이 강운태 의원 쪽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이 의원은 정세균 지도부와 가까운 인사로 꼽힌다. 3위에 그친 정동채 예비후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중앙당에서 강 의원을 배제하고 차점자인 이 의원을 재당선시킬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흘러나오자 이 의원의 불법 선거운동 의혹을 폭로하고 나섰다.

비주류 쪽에서는 “전남에서 비주류 후보가 당권파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여론조사 방식을 바꿔달라고 수차례 요청할 때 모르쇠로 일관하던 지도부가 막상 광주에서 당권파가 지자 재심을 즉각 받아들인 것은 물론 재심이 끝나기도 전에 검찰 수사부터 의뢰했다”며 “여론조사에서 앞선 후보(강운태 의원)가 여론조사 방해를 조장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재심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모자라 검찰 수사까지 의뢰한 지도부 행태에도 문제가 있다”고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협상 종료 시한인 4월15일까지 막판 진통 중인 야권연대에 대해서도 비주류의 불만이 여전히 거세다. 3월16일 ‘5+4회의’는 수도권 기초단체장 지역 11곳에서 민주당이 다른 야당에 공천권을 넘겨주기로 합의했다. ‘공교롭게도’ 이 가운데 비주류로 분류되는 문학진·안민석·추미애 의원의 지역구가 포함된 것이 문제였다. 이종걸 의원은 “현재 당 지도부가 심지어 야권연대마저 자신들이 원치 않는 쪽을 죽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사자인 문학진 의원 역시 3월16일 합의가 번복되지 않는다면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font color="#008ABD">민노당 등에 양보한 기초단체 11곳도 부글부글</font>

당권파로 분류되는 당내 핵심 관계자는 “애초 민주당이 양보하기로 한 11개 기초단체장 후보 지역의 경우 우리가 자의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민노당 등 다른 야당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결정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비주류 인사의 지역구 3곳이 포함됐다”며 “경선 방식이나 야권연대 협상의 결과를 놓고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를 빌미로 ‘당 안의 또 다른 당’을 만들어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천정배·이종걸·정동영 등 비주류 의원들이 구성한 ‘쇄신모임’을 겨냥한 발언이다.

4월9일 검찰 수사에 시달리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며 민주당은 잠시 축제 분위기에 젖었다. 하지만 6월2일 지방선거를 한 전 총리 무죄 카드만으로 치를 수는 없다. 당내 주류-비주류 갈등이 원심력을 더해가는 상황에서 정세균 지도부가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지방선거 이후 파열음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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