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5일 김태호 경남도지사의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으로 경상남도가 6·2 지방선거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3선 도전을 내비쳤고 한나라당 내에서 뚜렷한 경쟁자가 없어 출마할 경우 무난한 당선이 예상됐던 김 지사가 뜻을 접자, 무주공산 입성을 노리는 지원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운동 여파로 강기갑 당선
흔히 격전지라고 하면 당내 경선, 혹은 정당 후보자간의 치열한 경쟁을 예상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대통령을 만든 실세 정치인과 대통령을 만들고 싶어하는 정치 팬클럽 간의 대결 양상이다. 이 전 사무총장과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박사모) 사이에 2008년 총선 당시의 ‘사천 전투’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시 박사모는 이 전 총장을 “(친박근혜계) 공천 학살의 핵심”으로 지목한 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 전 총장 낙선운동을 벌였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결국 이 전 총장은 고배를 마셨고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당선됐다. 친이명박계의 핵심으로 공천을 좌우했던 사무총장이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100% 당선된다는 경남 사천에서 낙선한 것은 큰 이변이었다.
김태호 지사의 불출마 선언으로 이 전 총장은 언론에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지만 본인은 아직 뚜렷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1월26일 등에 “주변의 여러 분들과 상의하고 있다”고 말한 정도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후보자를 어떤 방식으로 공천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여의도와 경남 지역 정가에서는 이 전 총장의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사모에 의해 2008년 총선 ‘5적’으로 지목됐다가 낙선한 인사 가운데 정치적으로 ‘복권’되지 않은 사람은 이 전 총장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에서 낙선한 이재오 전 의원은 국가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부산에서 낙선한 박형준·김희정 전 의원은 각각 청와대 정무수석과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으로 갔다(전여옥 의원은 그 와중에도 당선됐다). 이 전 총장만이 서울과 사천을 부지런히 오가며 재기를 꿈꾸는 ‘정치 낭인’ 신세였다. 이 때문에 ‘떼놓은 당상’이던 김 지사의 불출마, 그리고 김 지사의 선언을 전후해 잠재적 후보군이 줄줄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 이 전 총장에게 주는 이명박 대통령의 선물이 아니냐는 해석이 분분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거나 청와대의 속내를 헤아려 알아서 접은 것이라는 얘기다.
이 전 총장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는데 느닷없는 복병을 만났다. 또 박사모다. 박사모의 정광용 회장은 이 전 총장의 경남도지사 출마 검토가 보도된 직후인 1월27일 ‘이방호라니?’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이 폐기물 활용 전문당이냐”며 “박사모가 있고 경남도민의 주인의식이 살아 있는 한 이런 공천이나 선거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1월29일 에 “이방호 전 총장이 공천 학살에 대해 사과와 참회를 한다면 개입하지 않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며 “당내 경선이 벌어지면 경선에서, 본선이면 본선에서 이방호 전 총장의 경쟁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아예 싹부터 자르겠다는 식으로 쐐기를 박고 나선 셈이다.
“박근혜계 공천 학살 참회하면 불개입”한나라당에서는 친박근혜계인 3선의 김학송 의원이, 야권에서는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김두관 전 장관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사천시와 경상남도는 유권자 규모가 달라 이번엔 박사모의 영향력이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예선이든 본선이든 팽팽한 접전 양상으로 진행된다면 결과는 알 수 없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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