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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출마’ 민주호 공멸하나

“출마 땐 대선후보 포기 선언을”…정세균의 봉합 카드 주목
등록 2009-03-26 17:14 수정 2020-05-03 04:25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4월 재선거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이 심각한 당내 갈등을 겪고 있다. 당 지도부는 정 전 장관이 출마하겠다는 지역(전주 덕진)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정했다. 사진 연합 고승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4월 재선거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이 심각한 당내 갈등을 겪고 있다. 당 지도부는 정 전 장관이 출마하겠다는 지역(전주 덕진)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정했다. 사진 연합 고승일

“DY(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가 무소속으로 전주 덕진에 출마하면 정세균 대표의 정치적 생명은 사실상 끝이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쪽의 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다. 당 최고위원회에서 전주 덕진구의 전략공천 방침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직후(3월18일)였다. 흥분한 목소리였다. ‘전략공천=정동영 공천 배제’이기 때문이다.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것은 DY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뜻인데, 그럼 당에서 쫓겨나는 모양새를 만들어야지. 모양새가 처절할수록 DY는 유리해. 지역 지지율은 더 올라가지. 그 기세를 모아서 전주 완산에 출마하는 무소속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 선언하면 동반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야. 텃밭인 호남에서 전패하면 정세균은 대표직 내놔야지.”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 선언이 판을 흔들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호’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정세균 체제에서 짜놓은 재보선 전략과 정국 구상이 물거품이 될 상황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정세균 대표는 이번 4·29 재보선을 ‘이명박 정부 심판’과 ‘변화하는 민주당’이라는 두 가지 구도로 이끌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정 전 장관의 등장으로 변화하는 민주당을 이야기하기 어렵게 됐다. 이명박 정부 심판론도 당내 갈등 때문에 정당성을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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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사분오열도 예상된다. 정세균 대표로서는 전주 덕진에 정 전 장관이, 완산에 한광옥 상임고문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상황이 최악이다. 이 2명이 승리할 경우는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내놔야 한다. 민주당은 새 전당대회에서 새 선장을 찾아야 한다. 뚜렷한 구심점이 없는 상황이 문제다. 지난 2005년 4월 재보선 참패 이후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당대표가 갈렸던 열린우리당 상황을 연상시킨다. 당시 혼란의 이유도 단 하나. 당에 중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주류-구주류 갈등 증폭 가능성

이른바 ‘신주류’와 ‘구주류’의 갈등도 증폭될 상황이다. 정세균 대표 체제의 면면을 보면 신주류가 그려진다. 김부겸 의원과 송영길 최고위원, 비서실장인 강기정 의원, 조정식 원내대변인 그리고 최재성 의원 등이 코어 그룹이다. 그 외곽에 백원우·서갑원·이광재 의원이 있다. 윤호중 전략기획위원장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 ‘386’ 출신들이다. 이너서클에는 손학규 전 대표를 돕던 그룹이, 그 외곽에 친노 그룹이 포진한 형국이다. 반면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핵심이던 정동영계와 김근태계, 그리고 천정배계 의원들은 뒤로 밀려나 있다. 이들은 정동영 전 장관의 복귀를 자신들의 자리 찾기와 엮을 수 있다.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 이유다.

이종걸 의원은 3월19일 평화방송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당에 굉장히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천정배계의 대표주자다. 이 의원은 정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민주당 의원과 당원들이 깊은 혼란과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적어도 덕진 지역 또는 완산 지역까지 확대된 지역에 분당 사태와 유사한 것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과의 통화에서 “정세균·원혜영 체제는 이제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며 “정동영 전 장관뿐만 아니라 손학규 전 대표와 김근태 전 의원도 당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태계의 최규성 의원은 “당이 정동영의 출마를 막을 권리는 없다. 그러나 당을 뛰쳐나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양비론적인 입장을 취했다.

정 전 장관 쪽이 출마를 강행하는 속내에는 ‘호남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박지원 의원은 3월17일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정 전 장관은 우리 당의 대통령 후보였고, 또 여러 가지 국정 경험을 갖춘 인사이기 때문에 원내 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박 의원은 다음날인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발언에 대해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이 아닌 본인의 생각을 말한 셈이다. 정 전 장관 쪽에서는 출마 계획을 잡으면서 가장 먼저 박 의원을 접촉했다고 한다. 박 의원은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지만, 몇 차례의 통화 등을 거쳐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 박 의원의 ‘지원사격’은 이런 사전 준비의 결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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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장관이 호남을 잡았다고 생각되면 신당 창당까지 할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정세균 대표와 가까운 당직자는 “DY는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열에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995년 이기택 대표가 민주당을 이끌고 있을 때 당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때 후농(김상현) 등이 영국에 있던 DJ를 설득해 논란 속에 데리고 와서 당을 깼다. 호남 지역을 내세운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었다. 영남 기반의 이기택 대표나 김부겸, 노무현 등은 계속 남은 거고. DY는 그런 상황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오해다”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 쪽에서는 이런 흐름을 만들기 위해 “정세균이 호남을 버렸다”는 ‘호남홀대론’을 내세운다. 신주류의 구성이 손학규 전 대표 쪽과 친노 세력의 결합 구도로 이뤄졌다는 것이 그것을 방증한다.

정세균 대표 쪽의 김현 부대변인은 “그런 구도를 만들면 DY는 노무현도 털어낼 수 있고, 자신의 복귀도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의 출마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반이명박 진영 전체의 위기를 만들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이번 4월 재보선은 일종의 ‘정초(定礎) 선거’이다. 정초 선거는 정치 질서와 정치 세력의 판도, 유권자의 지지 판도에 새로운 변화가 생기는 선거다. 열린우리당의 몰락이 시작된 것은 2005년 4월 재보선이었다. 국회의원 6명과 기초단체장 5명을 뽑는 선거에서 전패하면서 열린우리당은 끝없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4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도 위험해질 수 있다.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지는 흐름에서 계속 무너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이런 전망 아래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위한 포석을 진행하고 있었다. 울산 북구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단일 후보를, 인천 부평을에서는 민주당 단일 후보를 내자는 전략이다. 정동영의 등장은 각 당 내부의 강경주의자들에게 ‘단일화’를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 민주당의 분열은 국민들의 외면을 초래할 것이다. 정 전 장관이 별다른 명분을 찾지 못하고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경우, 이후의 모든 선거를 망친 ‘공공의 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 뻔하다. 정동영-정세균의 정면 충돌은 결국 양쪽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정세균 대표가 물러나게 되면 손학규 전 대표의 조기 복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손 전 대표가 어부지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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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을 출마 권유 놓고 고심

정세균 대표는 정동영 전 장관에게 인천 부평을 출마를 권유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장관이 귀국하는 대로 곧바로 만나는 것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인천 부평을은 정 전 장관 쪽에서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패배할 경우 정치생명을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정동영 전 장관이 출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음번 대선 출마 포기 선언을 하고 원내에서 이명박 정부와의 투쟁에 앞장서 다음번 대선 승리의 토대를 닦겠다고 외치고 다니는 것”이라며 “지난 대선 패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인정하고, 민주당과의 대립 전선이 아닌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최성진 기자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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