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9월23일 이정희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지명했다. 이로써 지난 7월 말 강기갑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정책위의장 자리가 비어 있던 민노당의 정책 라인은 초선의 이 의원이 이끌게 됐다. 변호사 출신인 이 의원은 대학시절 서울대 총여학생회를 이끌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복지위원회 위원장과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냈다.
이정희 의원이 일반인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6월24일 서울 경복궁 근처에서 벌어진 강제연행이었다. 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끌려가던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의 공분을 자아냈고, 은 그를 ‘거리의 정치’ 상징으로 표현했다.
이정희 의원은 9월25일 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드라이브에 대해 “국민들이 다시 촛불을 드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의원은 최근 공안정국에 대한 민노당 등 진보 진영의 책임론도 제기했다.
민노당 이정희 신임 정책위의장
=‘강부자·고소영’ 내각의 민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0년간 야인으로 있으면서 소득은 없는데 종부세만 내 나도 종부세 피해자”라는 말을 했는데, 결국 이명박 정부의 내각과 집권 여당의 민원 해결을 위해 내놓은 정책 아닌가. 종부세는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발생한 불로소득 가운데 일부를 지방의 저소득층 복지와 교육에 쓰자는 사회적 의미를 갖는 제도였다. 사실 종부세 대상자들이 조금만 더 사회적 연대의식을 발휘한다면 정부가 설득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치권이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그들의 피해의식을 강화하면서 결국 종부세 개정까지 시도하게 되는 상황이 됐다.
=책임은 정치권, 특히 보수 진영과 한나라당에 있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값이 크게 오르면서 양극화가 훨씬 심해졌는데,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면 위에서 조금 떼어 아래로 나눠주는 노력은 분명 필요했다. 집값이 크게 올라 이를 처분하면 이득을 보는 것이고, 그게 조금 여유 있는 분들로부터 가난한 어린이들과 힘든 어르신들에게 간다는 내용은 충분히 합의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치권이 ‘세금폭탄’이라는 이름으로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했다.
=정부가 전반적으로 감세정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주요 지지 기반의 민원, 즉 종부세 문제를 빼놓기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결국 종부세를 바꿔놓지 않으면 감세정책 스타트를 끊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으니까 정권 출범 1년차인 올해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반응이 미국산 쇠고기 부실협상 때보다 훨씬 안 좋은 것 같다. 지금은 종부세 문제가 터지자마자 반대여론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오는데, 대다수 사람들이 종부세 완화가 극소수 특권층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간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워낙 찬반이 극명한 문제라 청와대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종부세) 완화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현행 유지’가 우리 입장이다. 종부세 개정안은 부결돼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1%만을 위한 정부라고는 하지만 부유층을 위한 일련의 감세정책은 너무 심하다. 이런 상태라면 국민이 촛불이라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되는 정도다. 만약 국민 여론이 그쪽으로 모아진다면 민노당은 국회에서도 현실적으로 막으려고 하겠지만 국민과도 적극적으로 결합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절대 과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이 법안을 통과시키기는 쉽다. 하지만 국회는 언제나 의석수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여론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여론과 같이 갈 수밖에 없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 때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장관고시 관보게재 연기를 몇 차례 이뤄낸 것이나, 이명박 정부가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던 여러 규제 완화 법안들이 지금까지 후퇴한 것들은 국민이 보여준 큰 힘 때문이다. 국민의 참여의식과 행동하려는 의지는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0만 명이 모이고 100만 명이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촛불항쟁이 이어지면서 우리 국민이 정부의 독주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의사를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민노당은 촛불집회가 조금 잠잠해진 뒤에도 계속 주말 저녁 시내에서 다양한 주제의 거리연설회를 열고 있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의 관심도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너무 촛불에만 의존하는 것 아닌가. 민노당의 지지율도 촛불집회 때 13%를 넘었다는 조사도 있었는데, 촛불이 사그라지면서 떨어졌다.
=(촛불집회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좀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촛불이 작아지는 시점에 적어도 촛불집회의 합법성과, 탄압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해 명확히 짚고 넘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 국회 개원 문제가 한창 논의되고 있었고, 민주당이 국회에 들어와버리는 바람에 어청수 경찰청장 사퇴 등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 와중에 종교계도 흩어져버렸는데, 그 지점이 굉장히 아쉽다. 국민이 지켜낸 민주주의를 정치권이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다.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한나라당이라고 해서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원들에게 야당 의원들이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의 여론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특히 민주당은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종부세를 만든 당인 만큼 앞장서서 막아야 한다. 당연히 원내에서 공조해야 한다.
=우리가 내놓는 법안에 민주당이 동의하면 당연히 함께할 수 있다. 지난번 가축전염병예방법 때 선진당을 포함한 야당이 모두 공조했지만 사실 법안의 내용은 조금씩 달랐다. 우리가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법안의 내용을 좀더 국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이게 실물경제의 위기로 번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데, 이같은 위기로부터 서민을 탈출시킨다는 것과 민중인권을 지키는 것, 이 두 가지를 민노당의 올 하반기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특히 자본시장통합법이 내년 2월 시행될 예정인데, 우리가 미국발 금융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이것부터 연기해야 한다. 그래서 자통법 시행 1년 연기를 핵심으로 하는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일단 당 정책위와 의원실을 중심으로 정책네트워크를 복원하고 있다. 촛불항쟁 때 많은 국민들이 진보신당과 민노당이 합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고민하게 하지 말고 합치라는 것이 국민들의 기대이고, 거기에 부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진보신당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민노당이 조금 더 열린 자세로 많이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찍힌 굴욕사진이 아직도 나를 괴롭힌다.(웃음)
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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