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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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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보편적인 것이 래디컬”

등록 2008-01-25 00:00 수정 2020-05-03 04:25

민주노동당 혁신 떠맡은 심상정 의원… “비정규직과 젊은 세대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 글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대중적… 대안… 실천.” 심상정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되풀이해 강조한 세 단어다. 대선 패배 이후 위기와 혼란에 빠진 당을 구할 ‘암호’처럼 들렸다. 또 그 암호는 ‘비정규직’이란 단어를 강하게 암시했다. 그는 “비정규직이 민주노동당의 주체로 서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1월12일 당의 운명을 심상정에게 맡겼다. 그가 당을 등진 지지층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까? 당 혁신이 그에게 맡겨진 소임이다. 그는 1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혁신의 내용으로 당의 낡은 요소 혁신, 강력한 진보야당, 진보진영 전체를 향한 문호 개방, 생활 속의 진보를 실현하는 대중적 진보정당 등 네 가지 뼈대를 제시했다. 평가는 오는 4월9일 총선에서 국민들이 할 것이다.

인터뷰는 1월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뤄졌다.

학자나 활동가를 훈련하겠다

과감한 혁신을 통해 서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대중적인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는데?

=진보는 말뿐이고 실제 삶을 좋게 변화시키는 데 무관하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노무현 정권 이후 팽배해졌다. 민주노동당도 ‘우리가 진보다’라는 선언이나 규정에 만족할 게 아니라, 실제 생활을 진보시키는 정치를 해야 평가받고 국민들 속에 다시 설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얘기했다. 솔직히 민주노동당이 대안정당이자 서민정당인데 실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안의 구체성과 종합성을 갖추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대중 속에서 검증받지 못했다.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당의 가장 우선 과제는 뭔가?

=야당이니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려는 정책에 대해 서민 대중의 걱정을 효과적으로 대변해 합리적이고도 강력하게 견제해야 한다. 서민경제는 여전히 어렵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정글 속으로 몰아넣는 교육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대운하가 환경과 생태를 파괴할 거라는 우려도 크다. 이런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고통을 줄 것들이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한 능동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의 뜻을 모아 확실히 견제해나갈 것이다.

대중적 진보정당이 되려면 이념도, 노선도, 정당도 다 서민대중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 그 역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자주파, 평등파 논쟁도 사실은 민주노동당이 국민으로부터 엄혹하게 평가받아야 할 전부가 아니다. 실제 국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이 부족했던 게 더 근본적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정권 들어 더욱 약육강식이 판치는 사회가 도래한다고 보고, 더 구체적인 견제장치와 대안을 마련하고, 제도권 정치 안에서 국민과 소통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진보정치를 잘 펼 수 있는 학자나 활동가들을 훈련하는 것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당의 자기 정비 사업 중 하나다.

진보정당의 선명성을 강조하다 보면 ‘대중적’인 것과 괴리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래디컬’(선명)한 것이다. 대중적인 것이란 당의 정책을 오른쪽으로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더 대중적으로, 대중들의 삶 속에서 담금질돼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대중과 소통하고, 대중의 삶을 변화시키는, 그리고 대중 속에서 검증되고 평가받는 실천이 돼야 한다.

비정규직 발언권 높이려 ‘노동할당’

대중적이란 것과 달리 현재 민주노동당은 특정 계급, 그것도 대기업 노동자가 중심이 된 민주노총에 대한 재정적·인적 의존이 크고, 실제 ‘민주노총당’으로까지 불린다. 탈민주노총당이란 과제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를 더 거리두기 하겠다는 측면보다, 당이 노동당으로서 자기 전략과 실천을 갖고서 ‘노동당다운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싶다. 당원 중 40%가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이들은 당원이 된 뒤 어떤 정치적 교육이나 훈련 프로그램을 접하지 못했다. 조합 활동의 문제 인식을 갖고서 당에 참여한다. 앞으로 당이 지향하는 이념과 노선, 과제와 정책을 조합원 당원들에게 충분히 인식시켜야 한다. 또 임무를 부여하고 이를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적으로 훈련해나가야 한다. 당의 독자적 노동자 정치 역량을 확충해나가야 한다. 지금까진 그런 걸 하지 않았다.

당이 비정규직 문제를 강조해서 각종 현안에 많은 지원을 해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투쟁을 엄호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로 있는 곳이어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지난해 1월 비정규직법을 개정할 때, 당과 민주노총이 3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서명을 받아 개정안을 제출하자고 제안했다. 그랬다면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당이 설명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힘을 모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당의 독자적인 ‘노동정치’가 부재했다. 오직 민주노총 사업과 논의에 의존했다. 민주노총의 돈과 사람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지난 (창당 이후) 7년을 지내왔다. 과도한 의존이 거꾸로 당 사업과 조직에 부담을 줬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에 할 말은 해야 한다’면서 민주노총 책임론을 얘기한다. 그러나 책임의 주체는 1차적으로 민주노동당이다.

비정규직을 총선 비례대표 공천의 우선순위로 배정하는 것 외에 비정규직을 당의 지지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방안은 어떤 것들이 있나?

=당이 ‘비정규직당’이 되려면, 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첫 번째로 비정규직이 당의 주체로 서야 한다. 두 번째로 비정규직 대중에게 당이 그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대안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세 번째로는 구체적으로 그들을 정치적인 기반으로 조직화해야 한다.

가급적 비정규직의 당내 발언권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전적으로 차지해온 노동할당을 전면 검토하자는 것이다. 할당은 소수자를 배려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그동안 실천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당에 기득권을 가지는 조직이 됐다. 노동할당의 내용을 재조정하는 건 당연하다.

비정규직 사업과 관련해서는 비정규직 악법을 재개정하는 싸움이 시작돼야 한다. 비정규직법 재개정 투쟁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실천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

‘88만원 세대’라는 말도 있지만 대학생들, 특히 젊은 청년실업의 핵심은 비정규직이다. 현재 대학생은 예비 비정규직이

민주노동당의 ‘3자 만남’,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어 몇 년간 집중할 계획이다. 비정규직 세대를 살아야 할 젊은 세대가 당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조직 전략이 필요하다. 그동안 여론조사를 보면 당은 서민이나 기층 대중보다 주로 화이트칼라, 그것도 40대 지지층이 많았다.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 ‘부채 의식’을 지닌 사람들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과 지지자가 같이 늙어가고 있다. 그럴 때 진보정당의 미래는 없다. ‘젊은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젊은 진보는 비정규직 시대를 살아나가야 할 젊은이와 대학생들이, 민주노동당을 통해 희망과 미래를 개척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진보정치가 성공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공개적으로 이 자리에서 처음 얘기하는 것으로, 젊은 진보 조직전략은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당과 지지자가 같이 늙어가고 있다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 이상으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친북’, 더 나가 ‘종북주의’ 논란이 있다. ‘일심회 사건’을 당헌·당규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는데?

=논란이 있는데 서로 선언적 규정으로 딱지 붙이기 식으로 해선 안 된다. 종북주의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민주노동당의 (과거) 실천에 대한 평가다. 다른 하나는 진보정당의 통일 방안과 그에 대한 비전이다. 그런 성격에 맞게 문제와 쟁점들을 정리해나가겠다.

일심회가 과거 실천에 대한 평가의 대표적 사례이니 그 부분을 재평가하겠다는 것이다. 평가가 나오면 당헌·당규에 따라 합리적으로 처리하겠다. 당내 합의가 결국 당헌·당규이기 때문에 그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주파와 평등파로 상징되는 당내 노선 차이의 극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당이 ‘정파 패권주의’ 경향 때문에 많은 한계를 보여왔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이른바 자주파, 평등파 논란이나, 종북주의 논란은 불가피했다. 일정 부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종북주의 문제가 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는 전부가 아니다. 종북주의 문제 어느 정도 평가는 하되, 정파 대립투쟁의 관점에서만 다루어선 안 된다. 종북주의 문제도 국민과의 관계 속에서 놓고 봐야 한다.

종북주의 때문에 당이 망했다고 보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정파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폐해일 수 있다. 모순일 수 있다. 그게 바로 국민들이 바라볼 땐 국민의 삶은 뒷전이고 이념 논쟁만 하는 운동권 정당의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종북주의 논란 이후 민주노동당을 떠나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는데?

=신당 추진 세력 대다수의 견해는 비대위를 중심으로 하는 혁신이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혁신이 좌절되면 신당의 깃발을 들겠다는 게 다수라고 본다. 분당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분은 아주 소수다. 우선 당 혁신을 위한 과정에 혼신의 힘을 다해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매개되지 않는 신당은 명분도 약하고 성공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4월9일 총선에서 4~5석 확보에 그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선 참패 뒤여서 낙관적 전망을 내놓을 수 없다. 국민들이 당을 향해 엄중하게 경고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확실히 견제할 수 있는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발전에 대한 열망이 크다고 본다. 물론 내가 비대위에서 하려는 혁신과 변화를 얼마만큼 잘해내느냐에 달렸다. 당 혁신이 총선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당이 총선을 통해 한국 정치 속에 다시 설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당 혁신이 총선의 경쟁력

혁신의 성과를 총선 전에 보여주려면 시간이 부족할 거 같다.

=솔직히 비대위가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결국 시간 싸움이다. 비대위는 한시적 체제다. 총선은 가까워지고 있다. 진보정치의 변화 가능성을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빨리 보여줄 수 있느냐가 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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