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 드는 심정으로 열린우리당 키 움켜쥐었으나 온통 암초 뿐 … 개혁에 대한 당내 시각차 극복하고 통합의 리더십 발휘할 것인가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김근태가 대안인 적은 없었다. 그는 1995년 정치권 안팎의 민주화 세력이 힘을 합친다는 명분으로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는 원외 인사였음에도 부총재(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였다. 중요한 고비마다 비중 있는 인사로 주목받아왔지만 늘 비주류였고 2인자였다. 그런 지 10년이 넘었다. 정치적 구심력이 워낙 강했던 ‘3김 시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장막이 걷힌 이후에도 그랬다. 2001년 민주당 ‘정풍운동’의 과실은 정동영이 따먹었고,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그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노무현에게 밀렸다. 김근태를 따랐던 이들에게서 “후보 단일화”를 요구받았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재야 운동권 출신인 그에게 ‘과격 이미지’는 족쇄였다. 부드러움을 강요받았다.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늦었다. 결단력이 부족하고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세간의 평은 그의 업보다. 그래서 한때는 ‘2% 부족한 정치인’이었지만, 길어지다 보니 ‘2% 대선주자’가 되고 말았다.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 구도에서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삶은 빛났다. 그 구도가 끝난 것인지 다른 형태로 변화한 것인지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제 유권자들은 식상해한다. 그러다 보니 김근태도 낡아 보였다. 그렇게 잊힐 뻔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자신이 만든 기회는 아니다. 이러다간 다 죽겠다는 열린우리당의 위기감이 그에게 키를 넘겨줬다. 강봉균·김혁규·정덕구 등 관료 출신과 일부 보수 성향 의원들이 ‘김근태 비토론’을 강하게 주장한 뒤라 6월7일 의원총회와 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에서 격론이 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의외로 싱겁게 결론이 났다. 김근태 외에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토론은 “그럼 누구?”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힘을 받을 수 없었다.
김근태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독배”라고 표현했다. 받지 않았다면 그러저러하게 살다가 정치적 삶을 마감했을 것이다. 김근태의 한 측근은 “피할 수 없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역할을 다하는 게 김근태답다”고 했다. 독이 든 술을 마시면 죽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독이 때로는 약이 되기도 한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그가 독배건 축배건 아예 잔을 들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은 의원 143명을 가진 원내 1당이자 여당이라고는 하나 자체 동력이 소진된 난파 직전의 거함이다. 김근태는 이 배를 끌고 험로를 헤쳐가야 할 운명이다.
모든 문제는 열린우리당이 유력한 대선주자가 없는, 그리고 내년 대선 전까지 자체적으로 유력한 주자를 키워내기 힘든 ‘불임 정당’이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유력한 주자가 있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보이면 난파 직전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대위 구성 이후 탈당설과 정계개편론은 일단 ‘잠복기’에 들어갔지만, 비대위가 이른 시일 안에 중심을 잡지 못할 경우 7·26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지나면서 민주당과 ‘고건 신당’의 흡입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10년이 넘는 김근태의 정치 역정에서 그가 무대의 주인공으로 나선 것은 처음인데도 어쩌면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앞에 놓인 과제들이 어느 것 하나 풀기 어려운데다 심지어 이율배반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당은 살리되 개인 장사는 하지 말라?
당장 그는 통합과 안정을 요구받고 있다. 실제로도 ‘통합을 지향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 대책 없이, 사고 없이 열린우리당의 울타리를 잘 지키는 게 능사가 아니다. 잃어버린 민심을 찾아와야 한다. 그러자면 “열린우리당은 도대체 뭐하는 정당이냐?”는 물음에 답할 수 있도록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할 텐데, 정체성을 분명히 하다 보면 통합·안정에 금이 간다. 민심을 되찾아오는 방향과 통합을 지향하는 방향이 서로 엇갈릴 수 있다.
이런 조짐은 이미 불거졌다. 5·31 지방선거 패인을 둘러싸고 ‘실용’을 앞세워온 일부 관료 출신 인사들은 ‘개혁 과잉’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는 ‘개혁 결핍’ 혹은 ‘불철저하고 무능한 개혁’이 원인이라는 다수의 흐름과 차이가 있다. ‘개혁 과잉’ 주장은 “국민들에게 좌파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김근태가 웬 말이냐”로 이어졌다. 부동산·세제 등의 정책을 ‘오른쪽’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혁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과 이제는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쪽을 한데 묶어갈 수 있을까. 정체성 확립과 통합은 양립하기 힘든 문제다.
또 2002년 민주당의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의 맥을 잇는 ‘제2의 후단협’이 생겨 열린우리당의 당적을 유지한 채 다른 유력 대선주자의 선거운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럴 때도 통합을 지향하는 강력한 리더십은 도전받게 된다.
김근태 쪽의 또 다른 고민은 “당은 살리되 개인 ‘장사’는 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그에게 거함의 키를 넘긴 쪽은 “김근태니까…”와 “김근태지만…”으로 갈린다. 그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모든 게 잘 풀려서 열린우리당이 순항하면 선장의 주가도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다. 김근태가 열린우리당 지지를 호소하며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만나거나 민심 탐방을 위해 현장을 찾는다면, 그것은 당을 살리기 위한 비대위원장의 노력일까 아니면 대권주자의 행보일까. 구분되지 않는, 혹은 구분하기 힘든 정치적 행위가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한쪽만 부각돼 보일 수도 있다.
항로에 암초들이 많고 이 암초를 피하다가는 저 암초에 부닥치는 험난한 여정인데, 선장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이 주어져 있을까. 내년 2월 정기 전당대회를 통해 정식 지도부가 선출되기 이전까지, 비대위에 인사권·예산권은 물론 당의 헌법에 해당하는 당헌 개정권까지 주어져 있다. 비대위의 권한은 막강하지만, 그게 김근태의 힘은 아니다. 그가 “이쪽으로 가자”고 할 때, 다수가 “그쪽으로 가야 할 이유 100가지만 대보라”고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쨍’ 소리 나더라도 감수하고 갈 것”
김근태 쪽은 “정말 김근태 맞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변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한 측근은 통합 문제와 관련해 “100%의 공통분모는 없는 만큼 최소공약수를 찾아 밀고 갈 것”이라며 “그런 과정에서 ‘쨍’ 소리가 나더라도 감수하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청와대와의 관계에서도 이런 원칙을 유지한다고 한다. 이제 김근태의 정치적 리더십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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