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우름을 밤새 우렀다.”
서정주의 짧은 시 ‘문둥이’에는 아름다운 언어 속에 한센인들의 공포와 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 한센병은 완치 가능하고 한국에서는 거의 발병자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편견이 존재한다. ‘아름다운 동행, 소록도 사람들’ 벽화 제작에 나선 주민들을 만나기 전에는 내게도 이런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이 있었다.
지난 3월5일 오후 전남 고흥군 도양읍 국립소록도병원 뒤편 옹벽 앞은 벽화 제작에 나선 주민·자원봉사자·의료진·취재진으로 북적거렸다. 병원에 입원 중인 김점이(64) 할머니는 한센병 탓에 성치 않은 손으로 붓을 잡고 파란 하늘 색깔과 닮은 물감을 대리석에 음각된 얼굴 형상에 칠했다. 힘든 손놀림이었지만 색칠을 하며 자신의 얼굴 형상이 드러나자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대리석에 얼굴을 새기던 장인심(77)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지자 자작곡인 을 부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16살 때인 1952년에 죽으려고 소록도에 들어와 61년을 살았다. “여기서 지내며 억울한 것, 본 것, 들은 것, 슬픈 것도 많았어. 방에는 빈대가 들끓었고 아침에는 방 안의 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어.” 힘든 생활을 잊으려고 소록도 언덕 위에서 고향땅인 고흥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고 아픔을 달랬다. 할머니는 손가락 마디가 떨어진 손으로 기자의 손을 잡고 “한센인들을 일반인과 똑같이 대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일제에 의해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이주를 시작한 지 2016년이면 100년이 된다. 주민들은 강제노역, 생체실험, 인권탄압을 당하며 생활했다. 소록도에는 이런 주민들의 삶을 기억할 만한 미술작품이 없다. 곽형수 남포미술관장은 “벽화가 한센인들의 질곡된 삶을 풀고 소록도의 만인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길이 110m, 높이 3m의 벽화에는 소록도의 과거·현재·미래 모습을 담았다. 과거는 인권유린을 상징하는 피 흘리는 사슴, 현재는 주민·의료진·작가·자원봉사자 400여 명의 얼굴이 담긴 현재를 살아가는 소록도 사람들의 모습, 미래는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사슴으로 표현된다. 제작비용은 총 6200여만원이 들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크라우드 펀드로 3300만원을 모금했다. 기업이 1천만원을 기부하고 나머지는 벽화를 디자인한 박대조 작가와 15명 작가들의 재능기부로 채워졌다.
박대조 작가는 “대리석에 주민들의 얼굴을 담으려고 한 사람씩 일일이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분들의 표정을 대리석에 음각하며 과거 소록도의 한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벽화는 3월 말에 완성된다. 앞으로 소록도를 방문하는 사람은 국립소록도병원을 지나며 벽화에서 소록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고흥=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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