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일상을 접고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에 서봅니다. 좀 늦은 오후인가 싶은데 벌써 해는 짧아져 산그늘이 길게 몸을 눕힙니다. 문득 옛 풍경이 그리워집니다. 저물녘이면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라야 하는데 오늘의 농가는 굴뚝조차 사라졌습니다.
그 밥내 나는 풍경을 만들어내던 것이 가마솥과 아궁이였지요. 달이 차올라 한가위가 다가오면 가마솥은 들먹들먹 바빴습니다. 솔잎을 깔고 먹음직한 송편을 쪄냈으며, 막 캔 고구마를 삶아내던 것도 이맘때입니다. 마술처럼 콩 누룽지를 득득 긁어내던 곳도 가마솥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자리를 전기밥솥이 차지해 가마솥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경기도 안성의 주물공장을 다녀왔습니다. 4대째 120년간 가마솥을 만들어온 곳의 주물장 김정훈(81·경기도 무형 문화재 45호)씨와 아들 성태(48)씨. “한번 사면 30년 이상 쓰기 때문에 단골이 없어요. 철기도 옹기와 같이 숨을 쉽니다. 그릇이 숨을 쉬어야 음식도 숨을 쉬며 깊은 맛을 내지요.” 철판 두께를 고르게 하는 것이 기술이라며 환하게 웃는 김성태 대표의 미소 속에는 1850℃ 이상 설설 끓는 쇳물의 고집과 열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습니다.
안성=사진·글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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