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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순방에 현지 주재원 ‘총동원령’

등록 2008-05-21 00:00 수정 2020-05-03 04:25

면밀한 조율 이뤄지지 않은 중앙아시아 4개국 순방… 공기업 사장 모두 불참해 외교 망신까지

▣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알마티(카자흐스탄)=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5월11일부터 19일까지 이어진 한승수 국무총리의 중앙아시아 4개국 순방과 관련해 현지에선 한국이 외교에서 후진국적 행태를 보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애초 총리 순방에는 금융 및 자원 관련 공기업 사장들이 함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공기업 사장들에게 일괄 사표를 받으면서 사장단의 순방이 줄줄이 취소됐다. 총리 순방 직전인 5월7일 사절단 명단을 보면 금융·자원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이름이 올라와 있으나, 결국 이들은 부사장들로 대체됐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와 지식경제부, 총리실 사이에 순방을 앞두고 면밀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외교적인 망신을 당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우즈벡에 비자없이 입국하려다 억류 사태

한 공기업 주재원은 “외교 관례에서 보면,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수행단 사장들이 모두 부사장들로 바뀐 것도 웃기는 얘기지만, 실무를 하는 입장에선 상대국 인사들의 격을 다시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일을 이중으로 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5월10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한국에서 선발대로 출국한 일부 공무원과 민간기업 직원들이 비자를 준비하지 않은 채 입국하려다 공항에서 억류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고 졸속으로 일을 치르다 이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총리 순방 기간을 앞두고 현지 공기업 직원들과 민간기업 주재원들에게는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한 주재원은 “3월 말에는 이재훈 지식경제부 2차관이 사전조사단으로 현지에 왔다. 사전조사단이 만날 현지 정부 관료를 선정하고 일정을 맞추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총리 순방 두 달 전부터 주말마다 근무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5월13~14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는 한국인 공기업 직원들과 민간기업 주재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총리가 5월14일 카자흐스탄 수도인 아스타나를 찾았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등 공기업은 물론이고 국민은행·SK에너지 등 민간기업 지사장과 직원들도 순방 중인 총리와 지식경제부 관료, 각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영접하기 위해 총리 도착 하루 전부터 아스타나로 넘어갔다.

이번 총리 순방길에는 총리 내외를 비롯해 공식 수행원(15명)과 실무 수행원(42명) 등 84명, 공기업 및 민간기업 CEO 등 150여 명이 함께했다. 모두 200명이 넘는 대규모 사절단이었다. 순방 인원이 대규모이다 보니, 현지 공기업 직원들은 지식경제부 차관 등을 위해 벤츠를 임대하는 일을 떠맡는가 하면, 총리와 기관장이 현지 정부 인사와 사인하는 데 필요한 서명펜 구입까지 강요받았다. 일부 공기업은 업무추진비에서 예산을 전용해 서명펜을 구입하기도 했다.

주재원들이 일정 맞추고 사인용 펜까지 구입

투르크메니스탄 등 현지 사무소나 지사가 없는 곳에는 총리 순방 한 달 전부터 미리 건너가 일정 등을 조율해야 했다. 각종 행사 일정을 상대국과 맞춰야 하고 호텔 예약에 비자까지 준비해야 했다. 한 공기업 직원은 “총리가 상대국 정부 관계자와 사인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서는 적게는 네댓 차례, 많게는 수십 차례의 사전조사와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은 총리 순방에 맞춰 이 지역의 자원외교 사정 등을 듣기 위해 김일수 주카자흐스탄 대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대사관 쪽에선 “총리 순방으로 면담 인터뷰는 어렵다. 필요하면 서면 인터뷰는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은 5월8일 서면 인터뷰용 질문지를 보냈으나, 5월15일 현재까지 대사관 쪽은 묵묵부답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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