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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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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자본 방치한 정부가 나서라”

홈플러스 대주주 ‘엠비케이’ 법정관리 신청 9개월… 해결된 것 없는 10만 명의 불안한 생계
등록 2025-12-04 23:27 수정 2025-12-05 17:13
2025년 11월8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한 홈플러스 노조 안수용 지부장은 12월1일부터 물과 소금까지 끊는 ‘아사 단식’을 시작했다. 아사 단식 첫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농성장에서 안수용 지부장을 만났다.

2025년 11월8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한 홈플러스 노조 안수용 지부장은 12월1일부터 물과 소금까지 끊는 ‘아사 단식’을 시작했다. 아사 단식 첫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농성장에서 안수용 지부장을 만났다.


국내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의 앞날에 또다시 먹구름이 드리웠다. 2025년 3월 대주주인 엠비케이(MBK)파트너스(엠비케이)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9개월이 흘렀지만, 사태의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 입찰제안서 마감일이던 11월26일까지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이 없어 홈플러스 사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11월8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한 안수용 홈플러스 노조 지부장, 손상희 수석부지부장, 최철한 사무국장 등 집행부 3명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며 단식 24일차인 12월1일 물과 소금까지 끊는 ‘아사 단식’을 시작했다. 이들은 아사 단식 4일차인 12월4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농성장에 방문해 연내에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한 가시적 결과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뒤 단식을 중단하기로 했다. 한겨레21은 아사 단식 첫날인 12월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농성장에서 안수용 지부장을 만나 이들이 싸우는 이유를 들어봤다.

매달 수십억원대 적자 누적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이 건강상태를 체크한 것으로 안다. 몸은 어떤가.

“체중 감소, 혈압, 혈당 등을 살핀 임 원장이 ‘물과 소금까지 끊으면 하루도 못 버틸 것’이라고 위험을 경고했다. 나뿐만 아니라 단식 집행부 3명이 모두 10㎏ 넘게 빠졌다. 허리 근육이 다 빠져서 앉아 있는 것도 힘든 상태다. 이제는 체중보단 체내 미네랄과 영양소가 빠지며 몸이 위험 상태가 된다고 했다. 따뜻한 숙소에서 자고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서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노숙과 아사 단식을 만류했다. 하지만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홈플러스 사태의 절박함을 알리기 위해 멈출 수 없다.”

―인수 희망자가 나서지 않아 사실상 청산 수순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홈플러스의 현재 재무 상태는.

“매달 수십억원대 적자가 누적되고 공과금 미납 규모도 900억원에 이른다. 더불어민주당 홈플러스 대책 태스크포스(TF) 유동수 위원장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재무제표상 자금력이 워낙 떨어져 12월엔 전기요금 등 공과금을 못 내고 임금도 줄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협력업체에 대금 지급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운영자금이 완전히 바닥났다는 뜻이다. 전기가 끊기면 냉장·냉동 시설이 멈추는데 그때부터는 문을 닫아야 한다. 엠비케이는 회생계획안 제출 시한인 12월29일까지 입찰제안서를 받겠다고 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여력이 없다.”

2025년 11월8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한 (왼쪽부터) 최철한 홈플러스 노조 사무국장, 안수용 지부장, 손상희 수석부지부장 등 집행부 3명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며 단식 24일차인 12월1일 물과 소금까지 끊는 ‘아사 단식’을 시작했다.

2025년 11월8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한 (왼쪽부터) 최철한 홈플러스 노조 사무국장, 안수용 지부장, 손상희 수석부지부장 등 집행부 3명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며 단식 24일차인 12월1일 물과 소금까지 끊는 ‘아사 단식’을 시작했다.


5개 점포 영업 중단 방침 통보

―현장 노동자와 입점업체 상황은 어떠한가.

“사태(기습적 법정관리 신청) 발생 이후 9개월째다. 노동자도 입점업체 점주들도 잠을 못 잔다.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다. 이제는 ‘차라리 빨리 망해 실업급여라도 받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노동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 상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니, 남은 재고로 매대를 채워야 한다. 다음날 납품 물건이 들어오면 재진열하는 상황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입점업체 점주들의 고통도 만만치 않다. 음식·커피 등 음식점이 많은데, 하루 매출이 5만원 미만인 곳이 속출하고 있다. 장사가 안되니 재료를 받아올 수 없고, 더욱더 장사가 안된다. 악순환이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3월부터 권고사직을 통보받았고, 청소·카트 등 외주노동자들도 ‘갈 곳이 없다’고 호소한다. 홈플러스와 20~30년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이 와중에 법정관리 신청 당시 정리 대상이 됐다가 폐점이 보류된 15개 점포의 경우, 미리 계약됐던 업체가 들어와 ‘고별전’ 펼침막을 내걸고 땡처리를 하고 있다. 고객은 그걸 보고 ‘홈플러스 망했구나’라고 생각한다. 고객 발길이 더욱 끊길 수밖에 없다.”

인터뷰 다음날인 12월2일, 홈플러스 본사는 폐점이 보류됐던 15개 점포 가운데 서울 가양점, 부산 장림점, 경기도 고양시 일산점, 수원시 원천점, 울산 북구점 등 5개를 연말까지 영업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노조 쪽에 통보했다. 회생 인가 전 인수·합병 성사 때까지 폐점을 보류하겠다는 애초 약속을 어긴 것으로, 본사는 자금난에 따른 상품 부족으로 정상 영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역에선 ‘상권 붕괴’ 얘기까지 나온다고 들었다.

“2025년 5월1일부터 진행된 ‘홈플러스 살리기 서명 운동’ 때 인천 계양구 작전점 주변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는 분이 서명을 엄청나게 많이 받아주셨다. ‘홈플러스 때문에 유동인구가 늘어 장사가 잘됐는데, 없어지면 우리도 망한다’며 골목상권에서 장사하는 분들한테 서명을 받아오신 거다. 대형마트 때문에 골목상권이 망가진다는 얘기도 많았지만, 실제론 상생하는 곳이 훨씬 더 많았다. 한국유통학회가 낸 ‘유통규제 10년 평가 및 상생방안’ 연구를 보면, 대형마트 한 곳이 폐점할 경우 반경 3㎞ 범위 주변 상권에서 약 285억원의 매출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엠비케이가 자산유동화를 명목으로 부산 가야점을 폐점한 뒤 그 지역이 어떻게 됐는지를 보면 된다. 지역 상인들은 홈플러스가 망하면 유동인구가 줄어 공동화·슬럼화가 될까 걱정한다.”

2025년 11월8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한 안수용 홈플러스 노조 지부장, 손상희 수석부지부장, 최철한 사무국장 등 집행부 3명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며 단식 24일차인 12월1일부터 물과 소금까지 끊는 ‘아사 단식’을 시작했다.

2025년 11월8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한 안수용 홈플러스 노조 지부장, 손상희 수석부지부장, 최철한 사무국장 등 집행부 3명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며 단식 24일차인 12월1일부터 물과 소금까지 끊는 ‘아사 단식’을 시작했다.


단기적 투자금 회수에만 골몰한 ‘먹튀 자본’

―홈플러스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까지 몰린 이유는 무엇인가.

“홈플러스의 위기는 경영 악화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로 바닥을 쳤지만, 홈플러스는 신선식품 위주의 메가푸드마켓을 통해 매출이 다시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홈플러스는 1시간 즉시 배송이 가능한 익스프레스도 320개나 갖고 있다. 매출도 오르고, 영업이익도 개선되는 시점이었다. 오프라인 마트의 위기를 말하지만, 이마트나 코스트코 등이 흑자를 내고 있다. 사모펀드인 엠비케이는 인수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입으로 조달한 뒤 부동산(매장 등)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갉아먹었다.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카드 매출 채권 등을 담보로 수천억원의 기업어음을 발행하는 등 ‘사기’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홈플러스의 위기는 기업 가치·성장이 아닌 단기적 투자금 회수에만 골몰한 ‘먹튀 자본’을 방관한 탓이다.”

―노조는 정부 개입을 촉구하지만, 한편에선 사기업 문제에 왜 정부가 나서냐는 목소리도 있다. 노조가 생각하는 홈플러스 회생 방안은 무엇인가.

“정부가 ‘홈플러스 문제를 책임지고 풀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 홈플러스 사태는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홈플러스 노동자, 입점업체, 협력업체, 농축산 생산자 등 줄잡아 10만 명의 생계가 달렸고 그 가족까지 합치면 30만 명의 목숨이 달렸다. 국민연금 투자금 9천억원도 물려 있다. 지역경제는 물론 농축산물 유통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2024년 홈플러스의 국산 농축산물 매출액은 연 1조9천억원에 달했다.

노조는 우선 연합자산관리(유암코)나 한국자산관리공사(켐코) 같은 공적 자산관리회사가 부실·악성 채권을 정리하고, 유통 역량이 있는 곳에 홈플러스를 매각하는 방식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 단위 유통망이 있고, 공적 역할을 하면서도 홈플러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농협 같은 곳이 거론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글·사진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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