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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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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가 지배한 주식시장 ‘역대급 등락’

미국 경기침체 우려, ‘엔저’ 끝내는 일본 통화정책, 인공지능 거품론, 중동 정세 등 원인 복합적인데… 정부·여당 ‘기승전 금투세’
등록 2024-08-09 21:37 수정 2024-08-10 11:33
2024년 8월5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234.64포인트(8.77%) 하락한 2441.55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은 88.05포인트(11.30%) 내린 691.28로 마감했다. 이날 여의도 케이비(KB)국민은행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

2024년 8월5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234.64포인트(8.77%) 하락한 2441.55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은 88.05포인트(11.30%) 내린 691.28로 마감했다. 이날 여의도 케이비(KB)국민은행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


한국 증시가 8월 둘째 주에 접어들며 역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가 하루 만에 다시 급등하는 등 급격한 변동성으로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와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중동 분쟁과 미국 대통령 선거 등 대외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까닭에 증권시장에선 당분간 변동성이 심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동반 서킷 브레이커

2024년 8월5일 국내 증시에서는 급격한 가격 변동이 생기면 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제도인 사이드카(프로그램매매 호가 효력정지)와 서킷 브레이커(매매거래 중단제도)가 코스닥·코스피 시장에 모두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선물상품 가격이 전일 종가와 비교했을 때 5%(코스피), 6%(코스닥) 이상 변동한 시세가 1분간 지속할 경우 발동된다. 사이드카보다 강력한 효과를 지닌 서킷 브레이커는 종합주가지수가 전 거래일보다 8% 이상 변동해 1분간 지속되는 경우 20분 동안 시장 거래를 중단하는 제도다. 이날 하루에만 코스피는 2600선에서 2400선까지 무너지며 8.77% 하락했는데, 이튿날인 8월6일엔 반대로 코스닥·코스피 지수가 급등하면서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했다.

주가가 널뛴 것은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증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증시의 대표적 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8월5일 12.4% 떨어진 뒤 이튿날엔 10.2% 상승하며 냉·온탕을 오갔다. 사상 최대의 하락폭과 사상 최대의 상승폭이었다. 같은 시기 대만의 자취안(가권) 지수도 8.35% 하락했으나 이튿날 3.38% 반등했다.

이번 주가 폭락 사태는 ‘나 홀로 호황’을 누려온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지 모른다는 공포, 일본의 금리 인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일본 등 금리가 낮은 곳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나라에 투자하는 기법) 청산, 인공지능(AI) 거품론, 중동 확전 가능성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 주가가 하락하자, 투자자들이 공황에 빠져 매도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틀 만에 금융시장 장악한 경기침체 공포

미국은 금리 인하 등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을 딛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여왔다. 하지만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긴축통화정책을 펼쳤다. 2022년 3월부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해 2023년 9월부터는 기준금리를 5.25∼5.5%로 동결하고 있다. 이는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7월 경제지표들이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며 시장은 연착륙이 아닌 경기침체 공포로 급속히 얼어붙었다. 2024년 8월1일(현지시각) 발표된 7월 미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48.5)보다 더 하락한 46.8로 집계됐다. 제조업 PMI는 제조업 부문 구매관리자의 활동 수준을 측정해 경기를 가늠하는 지표인데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 국면, 50 미만이면 경기 수축 국면으로 해석한다.

연이어 발표된 지표들도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를 더했다. 8월2일(현지시각) 발표된 7월 비농업부문 고용지수는 다우존스의 예상치(17만천건)보다 한참 아래인 11만4천건으로 나타났다. 7월 실업률은 4.3%를 기록했는데, 이는 2021년 10월 이후 2년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사실상 세계 주요국 가운데 ‘나 홀로 경제성장’을 이어갔던 미국의 경제침체가 우려되자 전세계 증시 전반이 하락한 것이다.

‘엔저’를 끝내려는 일본의 통화정책도 증시 변동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은 2016년부터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왔다. 2024년 3월엔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한 데 이어, 7월31일엔 일본은행이 단기정책금리를 0.0~0.1%에서 0.25% 정도로 추가 인상하고, 국채 매입 규모도 줄여나가기로 했다. 그동안 전세계엔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나라의 통화나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투자가 성행했는데, 엔화의 가치가 높아지면 더는 돈을 싸게 빌릴 수 없게 되면서 수익률이 감소할 수 있다. 이런 ‘엔고’ 현상에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글로벌 증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AI 거품론도 맞물렸다. 빅테크 회사들이 인공지능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시장에선 투자 대비 수익성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점차 커져갔다. 이 때문에 2023년부터 가파르게 오른 엔비디아 등 기술주 기업의 주가는 2024년 7월부터 주춤한 데 이어, 8월 들어선 큰 폭으로 하락했다.

또 7월31일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방문 중이던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야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란과 하마스가 보복을 예고하는 등 제5차 중동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게다가 미국 대선을 약 3개월 앞둔 상황도 증시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코스피가 2024년 8월5일 폭락장을 딛고 8월7일까지 이틀 연속 올랐지만, 상승률은 전날(3.30%)보다 낮은 1.8%대를 기록했다. 코스피 지수는 전장 대비 46.26포인트(1.83%) 오른 2568.41에, 코스닥은 15.67포인트(2.14%) 오른 748.54에 마감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코스피가 2024년 8월5일 폭락장을 딛고 8월7일까지 이틀 연속 올랐지만, 상승률은 전날(3.30%)보다 낮은 1.8%대를 기록했다. 코스피 지수는 전장 대비 46.26포인트(1.83%) 오른 2568.41에, 코스닥은 15.67포인트(2.14%) 오른 748.54에 마감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상황이 진정된 것은 8월5일(현지시각) 미국에서 발표된 7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가 51.4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에 부합하면서다. 이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서비스업 경기가 확장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지표가 발표된 뒤 미국 주식시장은 다소 진정세를 보였고, 8월5일 대폭락했던 아시아 증시도 이튿날인 6일부터 반등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뉴욕 증시는 연이틀 하락하면서 아시아 증시도 하락하는 등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금투세 없애면 주가 폭락 막을 수 있다?

한편, 정부와 여당은 주가 폭락을 계기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논의를 다시 한번 불붙이고 있다. 8월6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에 금투세 폐지를 위해 초당적 논의에 나설 것을 제안했고, 이튿날 대통령실도 “정부가 제안한 금투세 폐지 방침에 국회에서 전향적 자세로 조속히 논의해달라”는 입장을 냈다.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금투세가 시행되면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주가 하락과 내수 부진의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있다며 반발했지만, 금투세 폐지에 대한 당론은 오는 8월18일 전당대회를 치르고 새 지도부가 출범한 뒤에야 정해질 전망이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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