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월2일 한국거래소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임기 중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의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서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또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인 상생을 위해 내년 도입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스탠더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언급하며 금투세 폐지를 약속한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상장기업의 주식 가치가 외국 상장기업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을 뜻한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원인으로 부실한 주주환원 정책,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불투명한 회계 등이 꼽힌다.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 인베스트먼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극소수 재벌 일가의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가 고질적으로 희생되는 ‘취약한 기업지배구조’(Poor Governance)를 꼽기도 했다.(제1492호 영 헤지펀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탓” 참조) 윤 대통령의 발언과는 정반대 진단인 셈이다. 윤 정부가 2023년 12월 공매도 금지, 대주주 기준 완화에 이어 금투세마저 없애겠다고 나서 ‘총선용’이란 비판은 물론 조세정의를 후퇴시킨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투세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가 아니라 오히려 ‘글로벌 스탠더드’다. 한국은 월급과 퇴직금, 은행이자, 배당 등에 적용되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을 주식투자 소득엔 적용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고소득자들이 주식투자를 많이 하고 그에 따른 소득도 많을 수밖에 없는데, 소득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거래자가 거래세만을 부담해 조세 형평성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다. 이미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거래세 대신 주식양도 차익에 과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가 금투세 도입 배경을 ‘금융세제 선진화’라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20년 추진한 금투세 정책은 대주주(종목당 10억원 이상 보유)에게만 부과하던 양도소득세를 모든 주주로 확대하고,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펀드·파생상품 등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융투자소득을 하나로 묶어 금투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손실을 뺀 주식양도 차익이 5천만원 이상일 경우, 그 밖의 소득은 250만원 이상일 경우 세금을 매길 계획이었다. 기재부는 과세 대상이 주식투자자 상위 2.5%(15만 명)이며, 소액 투자자는 거래세 인하(0.1%포인트)로 오히려 이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금투세 폐지는 주식투자가 많은 이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볼 수밖에 없는 ‘부자 감세’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과도한 부담의 과세가 선량한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고 시장을 왜곡한다면 시장원리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과거 해외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제와 시장 전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증시 침체, 투자자 이탈 등 부작용을 초래할 제도는 반드시 고치겠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는 1989년 주식양도소득세를 도입했다가 주가가 연일 하락하자 1년 만인 1990년에 폐지한 대만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같은 해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물론 다른 선진국들이 주식투자 소득에 과세하는 사정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 발언은 ‘동전의 한 면’만 보고 말한 꼴이다.
이미 한 차례 시행이 유예된 바 있는 금투세는 아예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애초 2023년 도입 예정이었는데, 2022년 말 여야 합의로 2년간 유예(2025년 시행)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에 따르면, 금투세 폐지로 연간 세수 감소는 1조3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원인에 대한 처방이 잘못돼 대책도 없는 형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인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정부 의지가 안 보인다는 의미다. 이런 탓인지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2023년 12월 내놓은 ‘기업지배구조 감시 2023’(CG Watch 2023)에서 한국은 12개 아시아국 가운데 8위에 그쳐 여전히 후진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 정책을 평가하는 정부/공공지배구조 부문은 2020년 평가에 비해 크게 후퇴했다.
평가는 △정부/공공지배구조 △규제기관 △지배구조제도 △상장회사 △투자자 △감사/감사감독 △시민사회/언론 등 7개 부문으로 이뤄졌다. 한국은 총 57.1점으로 오스트레일리아(75.2), 일본(64.6), 싱가포르(62.9), 대만(62.8), 홍콩(61.5), 인도(59.4) 등에 이어 8위였다. 2020년 평가(9위)보다 한 단계 올랐지만 여전히 낙후됐음을 보여준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지배구조 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일관된 정부 정책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부/공공지배구조 부문에서 52점을 받아, 3년 전 성적표보다 8점이 적어져 4위에서 6위로 미끄러졌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부 정책이 뒷걸음쳤단 뜻이다.
실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 12월28일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 편취 행위에 관여한 총수 일가를 고발하도록 하는 고발지침 개정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개정 지침의 핵심인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한 법인의 사익 편취 행위에 지시·관여한 특수관계인도 원칙적으로 같이 고발한다’는 내용이 빠졌다. 재계가 총수 고발이 남발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해서다. 재벌의 사익 편취 행위는 헤르메스인베스트먼트가 꼽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 사례다.
불공정거래 제재 강화나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등 소액주주 보호 대책은 지지부진하다. 금융위원회는 2022년 9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를 근절하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해 최대 10년 동안 금융투자상품 거래와 계좌 개설, 상장회사에의 임원 선임 제한 조처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금융위 김소영 부위원장은 2022년 12월 ‘주식양수도 방식의 경영권 변경시 일반투자자 보호 방안 세미나’에서 “피인수기업의 일반주주들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기업에 매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예정”이라며 “2023년 중 신속하게 제도화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기업 인수·합병시 대주주만 누리던 경영권 프리미엄을 일반주주들과 함께 가질 수 있도록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금투세 폐지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책인 양 둔갑시켜 국민을 오도하고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며 “폐지되면 조세 형평성 제고나 금융소득 과세의 합리화 등은 이루지 못한 채, 고액 투자자들의 세 부담만 덜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진심이라면 불공정거래 제재 강화, 의무공개매수제도 등 자본시장법 개정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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