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창업가들을 만난다. 이들은 세상을 바꾸는 무언가를 위해 인생을 바친다. 그런데 스타트업의 성공 지표로 여겨지는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이 되는 확률은 0.01%도 안 된다고 한다. 팀 1만 곳 가운데 오직 한 곳이 왕관을 쓴다. 그렇다면 다른 9999팀의 삶은 실패인 걸까?
나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감당한 그 도전의 끝이 비루하다면? 확률적으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소수의 희박한 성공 스토리뿐만 아니라, 일시적 실패를 대하는 자세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이다. 내 친구 은정은 3년간 도전한 첫 번째 창업을 매듭지었다. 앞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창업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는 전직 창업가의 인터뷰다.
―갑자기 소셜미디어도 닫고, 몽골을 찾은 이유가 있어?
“과거의 화려한 모습에서 도망치고 싶어 몽골에 왔어. 내가 다음에 창업한다면 이 생각을 꼭 새기고 싶었거든. ‘될 일은 되고 어차피 안 될 일은 안 되니까, 쓸데없이 걱정하지 말고 그시간에 일해라.’ 사업하는 3년동안 내내 걱정에 묻혀 살았어. 여기 몽골에서 돌이켜보니 중요한 고민이 아니면 실행력만 잡아먹어. 어제는 6시간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타이어 펑크가 두 번이나 났어. 깜깜한 와중에 야생마들의 실루엣이 보이는데, 가이드들이 뒷발질 당하면 진짜 죽는다고 조심하라는 거야. 서울에서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여기서 말에 한번 차이면 그냥 즉사라니. 인생무상이야. 몽골의 광활한 초원과 함께 자연 앞에 서면 겸허해져. 집착할 필요 없다.”
―창업의 화려한 시절이 어땠기에?
“24살에 스타트업 신에서 인정받는 해커톤에 나가 수상하고, 그 팀과 합이 잘 맞아 바로 배치 프로그램(초기 투자 지원)에 들어갔어.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 지원받았어. 그때 한 인터뷰를 보면, 희망에 가득 차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모습이 보여. 지금과 달리 눈빛도 초롱초롱해. 그때 기록된 모습들이 나를 붙잡고 있었어. SNS에 보여지는 활기차고 희망차고 진취적인 그때의 모습이 현재의 실패한 나로서는 감당하기 버거웠어. 사람이 늘 상승곡선만 탈 수는 없잖아. 과거의 내 잘 되어가던 창업가의 모습과 현재의 구직중인 사람 사이의 괴리가 견디기 어려웠어.”
―그럼에도 다시 창업하려는 이유는 뭐야?
“이 업이 그 자체로 재밌어. 재밌다는 말이 의아하게 들릴 수 있어. 사업은 힘들지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거, 고통 속에 도파민이 나오는 게 재밌어. 나는 이렇게 태어난 거 같아. 지금 아무리 냉소적이고 지친 상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시간들여 밥해주는 게 마냥 좋아. 다행히 상상했던 대로 길거리에 바로 나앉거나 그러지는 않더라. 또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 부분이 있어. 회사 정리했을 때, 풀스택 개발을 할 줄 알아서 주변 동료들에게 외주를 받아서 먹고 살 수 있었어. 서로 사정 아니까 당연히 시세보다 훨씬 싸게 해 드렸어.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는데 니체의 ‘위버멘쉬’를 내 인생 미션으로 삼고있어. 우리말로 ‘초인’으로 번역되는데 인간 영혼 발달의 최종 단계야. 위버멘쉬는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긍정할 줄 알아서 고통마저도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외부의 힘이나 절대자에게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 내는 자를 말해.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야. 어린아이라고 하니까 단순해 보이지? 아니야.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에 탐내고 갖고 있는 것을 언제 잃을까 전전긍긍 하잖아. 어린아이는 그렇지 않아. 나는 고통이 있으면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쁘면 기쁨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사람이고 싶어.”
김수진 컬처디렉터❶ Peter Thiel: Going from Zero to One
https://www.youtube.com/watch?v=rFZrL1RiuVI
피터틸의 제로투원 20분짜리 강의, 힘 떨어질 때 비타민 주사처럼 맞았습니다
❷ 플라톤 아카데미의 니체 강연
백승영 교수가 설명해주시는 니체 철학을 종종 봅니다. 위버멘쉬의 자세를 일깨우려고 해요.
❸ 초기 창업 시절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yZgGWartISA&t=4s
옛날 영상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번 기록되면 없앨 수 없잖아요.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 과거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사람은 기록을 쌓으며 나아가니까 제 영상도 공유합니다.
※2023년 9월1일 인터뷰 취지를 보충하고자 본문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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