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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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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고 시장친화적인 공공토지임대제를”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공개서한 쓴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조성찬 북중연구센터장 인터뷰
등록 2018-06-12 16:44 수정 2020-05-03 04:28
‘토지+자유연구소’의 남기업 소장(오른쪽)과 조성찬 북중연구센터장이 최근 김윤상·이정우 경북대 연구위원 등과 함께 펴낸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토지+자유연구소’의 남기업 소장(오른쪽)과 조성찬 북중연구센터장이 최근 김윤상·이정우 경북대 연구위원 등과 함께 펴낸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남북 정상이 평화의 손을 잡자, 땅에서 먼저 돈 냄새가 진동했다. 경기 파주에서, 중국의 북한 접경 도시 단둥에서 땅값이 치솟았다. 북한 내부에서는 ‘돈주’(돈 많이 굴리는 사람)들이 땅투기 자금 축적(달러 사재기)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199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4명을 포함한 30명의 경제학자가 개혁·개방을 이끄는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들은 “토지사유제를 도입하면 불로소득을 낳고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에는 헨리 조지를 따르는 한국의 ‘조지스트’(Georgist)들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을 통해 “정의로우면서도 효율적인 북한의 시장경제 전환”을 위한 토지제도를 조기에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이 옛 소련과 북한에 제시한 대안은 똑같다. 1879년 미국의 헨리 조지가 에서 주창했던 공공토지임대제(public land leasing system)였다.

공개서한을 쓴 ‘토지+자유연구소’의 남기업 소장과 조성찬 북중연구센터장을 6월5일 서울 퇴계로의 토지+자유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하는 처방책공공토지임대제, 그게 뭔가.

헨리 조지가 1879년 에서 처음 제안했다. 이미 사유화된 미국의 토지를 공유로 되돌린 뒤, 시장 경매 방식으로 최고 임대료를 제시한 청약자에게, 재산권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토지사용권을 주자는 것이다. 헨리 조지는 땅에서 얻는 불로소득이 경제적 불평등의 뿌리라고 보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생각해낸 근본적인 처방책이 바로 공공토지임대제였다. 토지라는 것이 공유자원(Commons)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토지 전체를 공유제로 바꾼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현실적으로는 강력한 보유세를 부과하는 지대조세제를 먼저 제안했다. 시장임대료 수준의 보유세를 해마다 무겁게 물려, 땅 주인이 누리는 불로소득을 사회로 환원하자는 것이다.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토지공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헨리 조지도 공공토지임대제를 이상형으로 생각했다는 말인데, 북한에 도입하라는 게 현실성이 있겠나.

사유제가 뿌리 깊은 미국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오히려 토지가 국유화된 사회주의국가에서는 현실성이 있다. 그래서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러시아의 고르바초프한테 제안했고, 우리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공공토지임대제는 토지공유제와 시장경제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이 땅을 사고팔지 못한다는 제한이 있을 뿐, (경매)시장에서 토지사용권을 누구나 언제라도 낙찰받을 수 있고 또 자유롭게 이용 및 매매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시장 친화적이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할 때 채택하기에 실효성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땅문서 들고 월남한 사람들의 문제도 있다.

1940년대 말 북한이 토지개혁을 추진할 때 강제몰수 무상분배를 피해, 많은 사람이 땅문서 들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1990년대 중반 북한 붕괴론이 일자, 그분들 사이에서 내 땅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우리는 그 토지를 환원하는 것도 보상하는 것도 어렵다는 생각이다. 통일 독일의 경우, 처음엔 원소유자 환원이 원칙이었으나 엄청난 갈등비용을 치르다가 나중에 보상으로 후퇴했다. 그 과정에서 소송과 법 개정을 반복했고, 토지소유권 정리에 20년이나 걸렸다.

“남한 토지사유제는 만성적 투기 부른 주범”
서울 남산 아래에 있는 ‘토지+자유연구소’ 옥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남기업 소장(왼쪽)과 조성찬 북중연구센터장.

서울 남산 아래에 있는 ‘토지+자유연구소’ 옥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남기업 소장(왼쪽)과 조성찬 북중연구센터장.

왜 지금, 북한의 토지가 문제인가.

북한은 경제 재건과 발전을 원한다. 경제개발 초기에 정의롭고 효율적인 토지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 재건 속도가 더뎌지고, 성장의 과실을 일부 특권층이 독식하며, 결과적으로 사회 갈등이 증폭된다. 남한의 토지사유제는 만성적 투기와 빈부 격차를 부른 주범이다. 건강한 시장경제와도 충돌한다. 투기 때문에 토지라는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처럼 토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토지는 개인이 단독으로 쓰는 것이 효율적이다. 북한도 시장경제를 도입해야 하는데, 그것과 가장 잘 맞는 토지 제도가 바로 공공토지 임대로 가는 것이다. 이미 사유화된 남한은 보유세 강화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느 지점에서 남북이 만나지 않겠나.

남 소장은 2005년 헨리 조지 사상으로 박사 논문을 썼으며, 2007년 토지+자유연구소 설립에 참여해 2009년부터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경제정의 없이 사회정의를 달성할 수 없으며, 경제정의의 기초는 토지정의”라고 단언했다. 2014년부터 북중연구센터를 맡고 있는 조성찬 센터장은 토지+자유연구소에서 북한과 중국의 토지 문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제2회 김기원 학술상을 받았다.

토지+자유연구소는 국내에서 헨리 조지를 연구하는 ‘조지스트’들의 산실이기도 하다. 대구 경북대에서 헨리조지연구회를 꾸리던 이정우(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김윤상 명예교수가 연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실제 공공토지임대제를 적용한 나라가 있나.

많은 사회주의 경제체제 전환국이 시행하고 있다. 북한도 중국을 본떠 4개 경제특구와 22개 개발구에서 이미 시행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운용에서 큰 문제가 있다. 개성공단 사례를 보자. 50년 토지이용권을 주면서 일시불로 고작 1㎡당 1달러를 받았다. 10년 유예기간이 지난 뒤부터 연사용료를 추가로 받고는 있으나 그 금액이 1㎡당 연 0.64달러에 불과하다. 거저 땅을 내준 거다. 껍데기만 공공토지임대제다. 우리의 제안은, 경매 방식으로 시장가격 수준의 사용료를 정하고, 50년 일시불이 아니라 연납 방식으로 임대료를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대신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은 더 높이고, 인건비도 낮게 유지해주는 게 바람직하다. 토지사용권으로 큰돈을 버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야 땅투기라는 비생산적 경제활동을 배제하고, 생산적 투자가 활성화된다.

“투기 차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게 중요”중국의 공공토지임대제는 어떤가. 부동산 투기문제가 크다.

중국도 북한과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공공토지임대제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됐다. 두 가지다. 하나는, 가장 중요한 토지임대료를 시장가격 수준으로 확실하게 징수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모든 토지를 모든 인민한테 임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값싼 임대료 혜택을 일부만 누리고 있다. 그 때문에 부정부패도 심하다.

사회로 환원할 지대에 대한 특혜를 일부만 누린다는 말인가.

그렇다. 국가 소유냐 개인 소유냐 하는 것보다, 투기 차익에 해당하는 지대를 사회가 제대로 환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공공토지임대제의 핵심이다. 중국에서는 토지사용료 70년치를 일시에 지급하는 방식이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70년 동안 경제가 발전하면서 불어나는 토지 가치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게다가 양도가 자유롭다. 중국과 북한에서 토지사용료는 우리의 세금(보유세)에 해당한다. 결국 세금을 사실상 면제해주면서, 그것이 가격으로 형성되고 투기로 이어진다.

이제는 중국도 강력한 투기 억제책을 쓰지 않나.

중국도 이제는 토지사용료(지대)를 일시불로 주고받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선전경제특구와 상하이의 푸둥 신구를 중심으로 해마다 지대를 납부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보유세에 해당하는 도시토지사용세도 부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징수액이 낮아 투기 억제의 실효가 없다. 토지제도는 처음 잘못 설계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북한이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홍콩의 영향을 받아 중국이 공공토지임대제를 도입했다고 들었다.

공공토지임대제가 사회주의 방식이라 생각하는데, 착각이다. 명백한 오류다. 시장경제의 나라인 영국이 1841년 홍콩 식민지 관리를 위해 일찌감치 이 제도를 시행했다. “지가 상승에 따른 투기를 억제하고 미래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게 중국의 덩샤오핑과 베트남의 사회주의 개혁·개방에 영향을 준 것이다. 시장경제와 공공토지임대제는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다.

“토지정의, 특권 없는 세상의 필수 조건”

남기업 소장과 조성찬 센터장의 토지+자유연구소는 지난 5월 김윤상·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보유세 강화 논리를 집대성한 집필에 참여했다. 조 센터장의 ‘중국과 북한의 경제체제 전환을 위한 공공토지임대제’ 논문도 이 책에 실렸다. ‘조지스트’들의 “토지정의가 특권 없는 세상의 필수 조건이며 토지 불로소득을 보유세로 환수해야 한다”는 소신은 정치적 영향력도 키워가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대개혁 박차로 불평등 사회를 개선할 것”이라고 공개적인 소신을 밝혔다.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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