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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서 밥보다 중헌 게 뭔디

복지·교육·채용 등에 직원 존중 문화… ‘우연한 충돌’ 아이디어와 다양성 수용으로 기업 경쟁력 높여
등록 2016-09-07 12:38 수정 2020-05-02 19:28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팰로앨토 페이스북 본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기술이 세상을 이롭게 만들까’란 질문에 배수현(구글·왼쪽부터)씨, 주희상(페이스북)씨가 그렇다고 손을 들었다. 유호현(에어비앤비)씨와 윤종영(IT 컨설턴트)씨는 별개의 문제라고 손을 들지 않았다. 이완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팰로앨토 페이스북 본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기술이 세상을 이롭게 만들까’란 질문에 배수현(구글·왼쪽부터)씨, 주희상(페이스북)씨가 그렇다고 손을 들었다. 유호현(에어비앤비)씨와 윤종영(IT 컨설턴트)씨는 별개의 문제라고 손을 들지 않았다. 이완 기자

지난 8월28일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2015 기업체 노동비용조사’를 보면, 임금(직접노동비용)을 제외한 간접노동비용은 월 99만6천원으로 전년보다 1.2%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훈련 비용(-3.6%)과 채용 관련 비용(-8%)이 감소했고, 직원에게 제공하는 법정 외 복지 비용(0.9%)이 조금 상승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한국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통계에서 드러난 것처럼 타격을 직접 받는 부분은 ‘불요불급하다고 여겨지는’ 교육과 채용이었다. 원래 많지 않은 법정 외 복지 비용(21만원)도 거의 늘지 않았다. 법정 외 복지 비용은 식사, 교통통신, 보육비 등을 포함한다. 상용노동자 10명 이상 기업체 3388곳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라 이보다 작은 소기업을 포함하면 전체 하락세는 더 컸을 것이다.

국내 기업 교육·복지 씀씀이 줄여

지난 5월 미국 신경제를 이끄는 실리콘밸리의 경쟁력을 찾기 위해 여러 정보기술(IT) 기업들을 방문했을 때 감탄한 것은 ‘밥’이었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들인 구글·페이스북·우버 등은 방문자에게도 구내식당을 아낌없이 개방한다. 점심때가 되자 동행한 구글 직원이 문을 열어줘 ‘찰리스 카페’에 들어갔다. 찰리스 카페는 구글 본사 한가운데 자리잡은 식당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 경영진과 전체 직원이 모여 대화하는 곳이기도 하다. 눈앞에 샐러드, 샌드위치, 피자부터 인도 커리, 일본 초밥, 멕시코 케사디야까지 음식이 펼쳐졌다. 과일과 케이크 등 달콤한 디저트도 당연히 있다. 더 중요한 건 하루 7만5천 명분 식사가 다 공짜라는 점이다.

구글 식당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제공한다면 페이스북은 서너 가지로 나뉘는 푸짐한 메뉴를 준비한다. 접시나 음식을 싸갈 수 있게 만든 종이 도시락을 들고 가 원하는 만큼 덜어 먹을 수 있는 뷔페 방식이다(아래 사진). 동행한 페이스북 직원은 “음식이 맛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도시락에 저녁을 싸가기도 한다”고 했다. 방문객에게 무료로 음식이 제공되니 아는 직원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실리콘밸리 기업 방문을 중국 여행사가 돈 받고 파는 해프닝이 있을 정도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자리잡은 에어비앤비에서 만난 닉 윌킨스 홍보 담당은 ‘맛있는 공짜 밥’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했다. 숙박 공유 업체인 에어비앤비는 지난해 미국 기업평가회사인 글래스도어가 뽑은 ‘미국에서 일하기 좋은 직장’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윌킨스가 말했다.

“구글이 음식 제공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IT 기업들도 인재를 데리고 오려면 다른 회사가 하는 만큼 맞춰야 하기 때문에 따라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에게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업문화나 노동환경이 좋아서 입사한 사람도 있을 테고, 그들 중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사회문제 해결)와 맞는 사람을 찾으려 애쓴다.”

이날 에어비앤비를 찾은 시간은 오후 3시였다. 한창 바쁘게 일할 시간이지만 층마다 마련된 카페에는 직원들이 동료와 이야기하느라 빈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구글·페이스북엔 맛있는 ‘공짜밥’
이완 기자

이완 기자

이는 일부러 사무실에 낸 ‘구조적 공백’이다. 시카고대학의 사회학자 로버트 버트는 혁신은 대개 사회적 집단들 사이에 놓인 ‘구조적 공백(구멍)’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서로 교류하기 꺼리는 경향이 있는 팀이나 테이블 끝자리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과묵한 사람들을 ‘구멍’에 빠뜨려 서로 대화도 나누고 생각지도 못한 발상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구글의 부동산 및 업무 현장 서비스 담당 부사장인 데이비드 래드클리프는 구글 카페의 공간 배치를 설계하면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직원들끼리 흥미로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우연한 충돌’이 일어나도록 매장 내 대기자 줄의 길이를 배려했다.(구글 인사 책임자 라즐로 복, )

단체 배식을 통해 노동자가 하루 일할 열량을 제공하고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는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낼 기회와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배어 있다. 개발자를 존중하는 이곳만의 특별한 문화지만 배울 걸 찾을 수 있었다.

교육과 채용 역시 실리콘밸리 기업의 사례는 흥미롭다. 에어비앤비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유호현씨는 이곳에서 겪은 다른 경험을 들려준다. “실리콘밸리는 시니어가 주니어를 얼마나 잘 키우는지가 중요하다. 가지고 있는 정보를 하나하나 다 알려준다. 물론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빨리 가르쳐서 수준을 올려 함께 일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내가 ‘사수’인데 ‘부사수’가 나보다 더 잘하면 안 된다. 내 자리가 위험하니까.” 기업 내에서 고용과 위치의 불안 때문에 때론 협력이 쉽지 않았던 경험을 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협력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구글의 ‘사후보고서’ 같은 제도를 참고할 수 있다. 구글에서 만난 개발자 이동휘씨는 입사 뒤 몇 차례 사후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고 했다. 사후보고서는 업무가 잘못되면 실무자와 책임자가 함께 사건 개요와 이유, 개선 의견 등을 담아 쓰는 문서다. 모든 실무자가 이를 공유한다. 이동휘씨는 “복잡한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실패 뒤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고 끝나면 발전이 없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과 협력이 잘되는지 확인하는 건 시간과 비용이 따르지만 기꺼이 이를 감수한다.

채용에선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2011년부터 구글에서 일한 개발자 배수현씨는 실제 인사 담당자에게 ‘다양성을 왜 따지는가’ 물어본 적이 있다. “담당자가 하는 얘기가 이렇다. 우리는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팔아야 한다. (한쪽으로만 구성해) 아시아인만 사거나 백인만 살 수 있게 만들 수 없다. 너무 와닿는 얘기였다.”

소수자 존중, 안팎에서 갑질 못하게

그 방법은 소수자 존중과 맞닿아 있다. 창업을 위해 실리콘밸리로 건너간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도 비슷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약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고민하는 모습이 나온다. 낯간지럽지 않나. 그런데도 이를 계속해서 사회에 가치를 환기하는 거다. 사회정의가 뭔지 토론할 수 있으려면 (약자를 우대하는) 다양성은 핵심이다. 다양성을 위해 소수자 존중이 이뤄지는 곳이다.” 김 대표는 기술을 통해 인종차별을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미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런 실리콘밸리의 문화는 세계의 인재들을 미국의 ‘첨단 계곡’으로 끌어모은다.

어떻게 보면 실리콘밸리의 앞선 기업들이 하는 교육과 채용 방법은 회사 내부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데까지 확장되는 것일지 모른다. 김동신 대표의 지적이다. “한국에서는 작은 벤처기업을 외주업체라고 생각한다. 개별적으로 만나보면 사람이 나쁜 건 아닌데 그냥 당연한 ‘갑질’이 몸에 배어 있다. 작은 기업을 볼 때 파트너가 아니라 하청을 준다는 마인드다.” 이에 대한 고민 없이 ‘재벌 경제 탈피’ ‘4차 산업혁명 전환’을 꿈꾸는 건 아무도 정의 내리지 못한 ‘창조경제’만큼이나 두루뭉술하다.

구글  인사담당  부사장  수닐  찬드라  인터뷰


학점은  성과와  관련  없다


구글코리아 제공

구글코리아 제공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인 구글은 세계적으로 구직자들이 선망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한 해 200만 명 이상이 지원서를 낸다. 그러나 구글의 경쟁력은 지원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이들 가운데 필요한 능력을 골라 팀워크를 잘 맞추는 데 있다. 창업 뒤 10여 년 동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구글이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수닐 찬드라(사진) 구글 인사운영담당 부사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구글은 채용위원회를 통해 채용을 결정한다. 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나.
회사 내에서 다른 역할을 맡은 사람들로 구성된다. 반드시 채용이 필요한 부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위원회에서 채용을 결정하는데, 내가 채용 관련 전체 부사장이지만 ‘예스’나 ‘노’를 이야기할 수 없고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결정한다.
수년 동안 채용을 담당했는데 어떤 변화를 목격했나.
구글에서 본 변화는 9년 전에 했던 게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학점(GPA)을 고려했는데 학점이 성과와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10년 전 구글에 입사할 때는 정말 많은 면접을 봤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이제 네댓 번의 인터뷰가 적정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가 커져서 창업자들이 일일이 인터뷰할 수도 없다.
공들여 뽑았지만 구글에도 저성과 직원이 있을 것 같다. 저성과자가 있으면 재배치를 하는지, 해고하는지 궁금하다.
우리도 실수를 한다. 저성과자가 있었다. 모든 구글 직원은 360도 다면 피드백을 받는다. 성과를 낼 수 있게 피드백을 주고 그것을 도와줄 사람도 함께할 수 있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잘못된 역할을 맡아서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관리자를 잘못 만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서일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다른 일로 바꿔주면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구글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있다. 우리가 많은 노력을 해서 채용한 사람인데 일단은 많은 기회를 주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해고를 고려한다.
구글에는 노조가 없다. 평직원과 비정규직, 계약직 등 다양한 고용 형태를 띠는 직원들의 의견을 경영진이 듣는 방법이 있나.
구글 문화에 대해 말했듯이, 회사가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면 직원들의 피드백도 적극적일 것이라 믿는다. (창업) 15년이 지난 지금도 창업자들은 TGIF(경영진과 매주 금요일에 하는 질의응답) 무대에 서서 회사 상황에 대해 말하고 직원들은 어떤 질문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문화가 있다. 관료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프로그램도 있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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