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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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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나라서 벌어질 환상적 승계 시나리오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넘겨받는 작업과 함께 에버랜드 상장 시작으로

지주회사 전환 본격 진행될 듯… 헐값 주식은 값 수백 배 뛰며 ‘잭팟’
등록 2014-06-10 17:00 수정 2020-05-03 04:27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리조트 입구.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6월3일 이사회를 열어 증시 상장을 결의했다. 이건희 회장에게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본격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리조트 입구.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6월3일 이사회를 열어 증시 상장을 결의했다. 이건희 회장에게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본격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에버랜드 주식 가치가….” “그게 아니라….”

판사실 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대화가 아니라 흡사 싸우는 듯한 언쟁이었다. 서울중앙지법 출입기자였던 2005년의 기억이다. 대화의 한쪽 당사자였던 부장판사를 만나러 갔던 나는 20분 가까이 기다리다가 돌아서야 했다. 그 방의 주인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에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로 기소된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과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 사건의 재판부인 이현승 당시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였다. 방을 찾은 손님은 김상균 당시 민사합의25부 부장판사. 김 부장판사는 며칠 뒤 퇴직해 삼성그룹 법무실로 옮길 예정이었다. 부적절한 시기에, 부적절한 주제의 대화였던 셈이다.

취재에 들어가자 김상균 부장판사가 전화를 걸어와 해명했다. “오해하지 말라”며 사법연수원 동기(13기)인 이현승 부장판사에게 인사를 갔다가 우연히 의견을 나눈 것뿐이라는 얘기였다. 당시 삼성그룹 법무실장(사장급)이자 김 부장판사를 영입했던 이종왕 변호사도 데스크에게 전화를 걸어 적극 설득에 나섰다. 이 에피소드는 결국 기사로 기록되지 못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엔 ‘삼성의 로비’로 뚜렷이 각인됐다. 삼성 가문에 예민한 재판을 맡았던 한 고위 법관은 사석에서 “삼성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맥을 동원해 로비에 들어온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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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면죄부로 날개 얻었던 에버랜드

그 이후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에버랜드 사건은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200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거쳐 최종 무죄로 판결났다. 삼성특검 이후 이건희 회장도 2008년 기소됐지만 에버랜드와 관련된 배임 혐의에 대해선 무죄였다. 당시 대법원 판결에서 대법관들의 판단은 5(무죄) 대 4(유죄)로 갈렸다. 과거 에버랜드 사건의 변호인을 맡아 ‘삼성의 무죄’를 주장했던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은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 이로써 삼성은 ‘3세 승계’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치명적이던 약점을 걷어냈다. 김상균 부장판사는 2007년 법무실장 직무대행, 2009년 법무실장 등을 거쳐 삼성그룹 법무전략을 총지휘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그는 최근 삼성전자 법무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삼 9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 건, 에버랜드가 다시 결정적인 ‘퍼즐 조각’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에버랜드는 지난 6월3일 이사회를 열어 내년 초 증시에 상장하기로 결의했다. 윤주화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글로벌 패션·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표면적인 이유야 그렇지만, 에버랜드의 기업 가치를 키워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의도가 핵심이다. 에버랜드는 이재용 부회장(25.1%)이 최대주주로 있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삼성그룹은 ‘이건희·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삼성은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이건희 회장에게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징검다리로 에버랜드를 적극 활용해왔다. 에버랜드 상장은 1996년 무보증 CB를 발행하고 이를 배정받은 신세계, 중앙일보, 삼성 전·현직 임원 등 주요 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하면서부터 일찌감치 짜인 시나리오였다. 주요 주주들이 실권한 주식을 이재용 부회장 삼남매가 사들였고,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팀장)는 이 과정에서 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공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에버랜드 상장은 결국 시기상의 문제였을 뿐이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경영권 승계를 위한 2단계 시나리오에 들어갔다. 제일모직 패션사업을 에버랜드에 떼어붙이고, 삼성SDI와 제일모직을 합병하고, 삼성SDS 상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 쪽은 “(에버랜드 상장은) 이 회장이 쓰러지기 전인 지난 4월 이미 보고됐던 사안”이라고 밝혔지만, 지난 5월10일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지배구조 개편의 속도가 빨라진 건 분명하다. 한 달 넘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이 회장이 깨어나더라도 경영에 복귀할 가능성이 낮아진 탓이다.

그래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넘겨주려면, 아직 맞춰야 할 퍼즐이 몇 조각 남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에버랜드 상장을 시작으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걸로 내다본다. “삼성이 지주회사로 반드시 전환해야 할 의무는 없다. 다만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전자·생명 등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고, 지주회사 완성 뒤에는 향후 계열 분리 및 다음 세대로의 승계 과정에서도 유리할 수 있다.” 정대로 KDB대우증권 연구원의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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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 전환 의무는 없지만

몇 가지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첫 번째는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삼성전자홀딩스)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삼성전자홀딩스와 에버랜드를 합병하는 방식이다. 에버랜드 상장도 이를 위한 몸값 높이기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재용 부회장의 합병 지주회사 지분도 10%대로 높아진다. 두 번째는 삼성전자 지분 4.06%를 가진 삼성물산과 에버랜드의 합병 가능성이다. 그 합병회사 밑에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두어 금융계열사를 지배하고, 삼성전자는 별도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해 다른 전자 계열사를 지배한다는 시나리오다. 어느 쪽이든 간에 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삼성 계열사들이 갖고 있는 에버랜드 지분(19.36%)을 매각해서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한다. 또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두려면 금산분리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19.3%),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7.2%) 등을 처리해야, 금융지주회사가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 상장 계획을 밝힌 이후, 삼성카드가 갖고 있던 제일모직 지분 4.7%를 삼성전자에 매각했다. 세 번째는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3.38%)와 삼성생명(20.76%)의 지분(11조원 규모)을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물려받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엔 상속·증여세만 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1987년 고 이병철 회장이 숨질 당시 삼성그룹의 총자산은 11조원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상속세와 증여세로 180억원가량을 내고 경영권을 승계했다. 공익법인인 삼성문화재단에 이병철 회장의 주식을 출연했다가 이건희 회장이 되사는 방식으로, 상속세 없이 지분을 물려줘 논란이 됐다. ‘편법 승계’도 대물림됐다. 삼성은 이재용 체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신주인수권부사채(BW), CB 등 각종 금융기법을 동원해 불법 논란을 자초했다. 형사법상으로 ‘멍에’는 벗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정당성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2년 법원도 소액주주들이 제일모직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과 계열사들의 인수 포기 강요는 업무상 배임으로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놨다.

불법·편법 없는 승계 이룰까?

1주당 7700원에 발행됐던 에버랜드 주식의 가치는 내년 상장 이후 최소 200만~300만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 삼남매의 지분 가치만 3조원이 넘는다. 일반인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잭팟’이다. 삼성이 지배하는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에버랜드 상장으로 본격화된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마지막 단추를 끼는 과정은 불법·편법 논란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환상 속의 그대’에게 그동안 끊임없이 들려줬던 노랫말을 반복하자면, ‘그대는 새로워야 한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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