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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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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게 큰소리치는 론스타에 당하겠네

론스타 ISD 중재의향서 전문 공개, 한국 정부가 여론 달래려고 책임 회피해 수십억원 손해 주장
2008년 이후 ISD 언급해왔으나 손놓고 있던 한국 정부, 담당 조직도 예산도 없어
등록 2012-08-21 22:15 수정 2020-05-03 04:26
한국 정부가 공개를 거부한 중재의향서를, 론스타는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며 전문 공개했다. 2쪽의 공식 서한, 19쪽의 중재의향서 전문.

한국 정부가 공개를 거부한 중재의향서를, 론스타는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며 전문 공개했다. 2쪽의 공식 서한, 19쪽의 중재의향서 전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1호 사건’을 제기한 론스타가 한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한국 정부에 전달한 ISD 중재의향서 전문을 “투명성을 확보한다”며 지난 8월5일 전격 공개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 3개월간 국익을 들먹이며 국회 요청에도, 행정소송에도 공개를 거부하던 그 문서 말이다.

정부가 ‘국익’ 들먹이며 공개 거부한 문서

론스타가 지난 5월22일 중재의향서를 제출하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원문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원혜영 민주통합당 의원과 심상정 통합진보당 의원도 동참했다. 하지만 정부는 단칼에 거절했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침해하고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민변은 행정소송을 냈고, 국회의원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론스타가 흔쾌히 나섰다.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재의향서 전문을 공개한다.” 2쪽의 공식 서한과 19쪽의 중재의향서를 살펴보니, 수취인은 이명박 대통령으로 돼 있었다. 참조로 김승호 주벨기에·유럽연합(EU) 공사와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에게도 전달됐다.

원혜영 의원이 다시 중재의향서를 제출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뒤늦게 영문본을 보내며 외교통상부는 “한글 번역본은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정부의 끝없는 ‘사보타주’에 국회가 분주해졌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중재의향서 번역을 국회도서관에 의뢰해 8월16일 한글본을 공개했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여론을 달래려고 책임을 회피해 수십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2003년 10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30억원에 매입한 론스타는, 2006년 KB금융지주, 2007년 싱가포르의 DBS은행, 2007년 HSBC에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하려고 주주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늦췄다는 거다. “론스타의 수익 창출을 여론이 ‘먹튀’라고 비판하자 한국 정부가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법적으로 매수자의 적정성만 따지면 되는데 매도자인 론스타의 자격을 문제 삼아 매각이 여러 차례 좌절됐다.”

차별적이고 자의적인 법 집행이라는 증거로는 검찰의 영장 청구와 금감위원장(현 금융위원회)의 발언을 제시했다. “2006년 10월 대검은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론스타에서 임명한 외환은행 (외국인) 이사 3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여러 차례 청구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자 한국 언론인과 학자, 법률가에게 공개적으로 단체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또 2008년 6월 전광우 금감위원장이 HSBC의 승인 신청서를 심사할 때 “여론을 고려해야” 하며 “국민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발표한 것을 문제 삼았다. 정부가 법이 아닌 정치적 상황에 따랐다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론스타는 한-벨기에 투자보호협정(BIT) 위반이라며 ISD를 요청할 뜻을 한국 정부에 세 차례나 밝혔다. 2008년 7월9일과 2009년 2월11일, 2012년 1월17일이었다. 마지막 서신이 도착한 지 열흘이 지난 1월27일, 금융위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최종 승인했다.

“산업자본임을 감추려 지배회사 누락”

또 다른 문제제기는 과세다. 론스타의 세금 부담을 극대화하려고 국세청이 7년 동안 세금 평가 방식을 반복적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2005년 10월 론스타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를 매각할 때는 고정사업장이 없다고 양도세 1120억원을, 2007년 외환은행 지분 13.6%를 매각할 때는 고정사업장이 있다고 법인세 1530억원을 부과했다는 것이다. 2012년 2월에는 다시 고정사업장이 없다고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한 하나금융에서 양도소득세 3915억원을 원천징수했다고 썼다.

론스타의 주장은 왜곡과 사실 누락이라고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선 론스타는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인데도, 2003년 9월 그 사실을 숨기고 한국 정부에서 대주주 자격을 얻었다는 점을 빼먹었다. 당시 은행법은 산업자본이 금융기관 주식을 40%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돼 있었다. 지난 7월24일 론스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는 “론스타가 금융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던 극동홀딩스 등 지배회사를 중재의향서에는 원고로 넣었다. ‘과거 지배회사를 누락했고 이들을 포함하면 우리는 산업자본이었다’고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석했다.

국세청에도 고정사업장이 한국에 있는지 여부를 론스타는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벨기에와 한국은 조세조약(이중과세 방지협약)을 맺고 있어 벨기에가 과세권을 갖는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벨기에는 해외 주식투자 소득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아 론스타는 어디에서도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법원이 7년간의 소송 끝에 국세청의 과세가 정당하다고 결론 내렸는데 론스타가 다시 문제 삼는 것은 그 판결을 ISD에서 뒤집겠다는 속셈이다.

참여연대가 지난 5월24일 론스타가 취한 부당이득을 환수하기 위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한겨레 박종식

참여연대가 지난 5월24일 론스타가 취한 부당이득을 환수하기 위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한겨레 박종식

론스타의 주장은 이렇게 터무니 없다. 하지만 한국의 승소를 자신할 수 없다. 한국 정부의 준비가 워낙 형편없어서다. 2008년부터 론스타가 세 차례나 한-벨기에 BIT에 따른 중재를 언급했는데 한국 정부는 두 손을 놓고 있었다. 한-벨기에 BIT는 1974년 맺어졌으나 이후 개정돼 2011년 3월부터 재발효됐다. 문제는 페이퍼컴퍼니 보호 배제 장치가 개정 BIT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투자 규정에도 있는 내용이며, 관대한 세금 정책으로 벨기에가 조세회피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치명적인 문제점을 한국 정부가 개선하지 않은 탓에 벨기에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ISD 1호 사건’을 론스타가 제기할 길이 열렸다.

ISD 사건을 수행할 조직이 한국 정부에는 없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뒤 ISD 사건은 미국의 경우 국무부 산하 법률고문실이, 캐나다는 외교부 내 통상법률국이, 멕시코는 경제부가 맡고 있다. 중재 전문 법률가 수십 명이 여기서 일한다. 하지만 김영주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외교부 답변 자료를 보면, 한국에는 이런 조직이 구성돼 있지 않고, 그럴 계획도 없다. 법무부 국제법무과의 나욱진 검사가 주로 실무를 맡는다. 대신 법무법인 태평양과 미국의 ‘아널드앤드포터’를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치명적 문제점 여전한 개정 한-벨기에 BIT

국민 세금으로 법률 비용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구조다. ISD 사건은 최소한 2∼3년 진행되는 탓에 중재 비용만 50만∼100만달러(약 6억∼11억원)가 필요하다. 국내외 변호사들을 따로 선임했으니 법률 비용은 200만달러(약 22억)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그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지도 알 수 없다. ISD 제소와 관련한 직접 예산이 없어서다. ISD 예방 교육을 위해 법무부에서 1억8600만원을 올해 편성했을 뿐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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