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사건과 저축은행 사건은 닮은꼴?
론스타 사건을 계기로 생겨난 ‘변양호 신드롬’이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 구속 사태로 더욱 심해지리라는 우려가 금융관료들 사이에 높아지고 있다.
변양호 신드롬은 2003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이던 변양호(현 보고펀드 대표)씨가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각한 혐의로 2006년 검찰에 기소된 사건에서 비롯됐다. 검찰은 변 대표가 현대차로부터 부실 계열사의 부채가 탕감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2억원을 받았다는 비리 혐의도 덧붙였다.
변양호 구속 이후 퍼진 보신주의
하지만 대법원은 2009년 1월 현대차 계열사 채무 탕감 로비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며, 2심 재판부의 유죄판결을 뒤집었다. 이어 2010년 10월에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대해서도 무죄를 확정했다. 변 대표는 지난 5년간 자신을 괴롭혀온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명예회복을 했지만, 우리 사회나 언론은 이미 잊혀진 사건처럼 취급하며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사이 경제관료들 간에는 중대한 정책을 다룰 때 사후 자신에게 책임 추궁이 올 수 있는 결정은 꺼리는 보신주의 풍조가 암세포처럼 퍼졌다. “정말 심각하다. 계속 시간만 끌고 결정을 안 한다. 관료들이 ‘언론이 나중에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할 때는 할 말을 잃게 된다.” 한 금융회사 대표의 한탄이다.
지금 금융관료들의 시선은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에 쏠려 있다. 김 원장은 과거 변 대표와 마찬가지로 경제관료의 꽃이자 자존심으로 불려온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의 핵심 요직을 거친 엘리트다. 검찰은 지난 6월7일 부산저축은행 쪽으로부터 과거 5년간 4천여만원을 받고 대전·전주저축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각종 편의를 봐준 혐의로 김 원장을 구속했다. 김 원장은 2008년 저축은행 정책을 전담하는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을 지냈다.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로 부실이 심한 저축은행을 그대로 문 닫게 하면 충격이 큰 만큼, 상대적으로 우량한 대형 저축은행에 인수시켜 연착륙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당시 금융 당국의 생각이었다. 김 국장이 주무책임자로서 인수에 소극적인 대형 저축은행을 쫓아다니며 설득하고 신규 지점 개설 등 혜택을 주며 일을 성사시켰는데, 지금에 와서 로비받고 특혜를 준 것이라고 하면 말이 되느냐?” 한 고위 금융관료는 소리를 높인다. 금융감독기구 직원들이 저축은행의 부실과 비리를 눈감아주고, 정치인이나 정부 고위 인사들이 저축은행을 비호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금융관료들은 변양호 사건과 김광수 사건이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말한다. 론스타 사건은 단순한 부실은행 매각을 둘러싼 논란을 넘어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 유출 의혹으로 이어지며 뜨거운 정치·사회적 쟁점이 됐다. 부산저축은행 사건도 지방 금융회사의 부실과 경영 비리, 금융감독 실패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여야 국회의원, 청와대와 감사원의 고위 관계자, 고위 금융관료들까지 연루된 대형 정치 스캔들로 비화하고 있다.
대형 정치 사건은 항상 여론의 분노를 달래줄 희생양을 요구하게 되다. 변 대표가 론스타 사건의 희생양이었다면, 김 원장은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희생양이라는 것이 금융관료들의 시각이다. “론스타 사건 때는 여론 무마를 위해 금융관료와 은행 경영진을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 주범으로 단죄하는 것이 필요했고, 저축은행 사건에서도 고위층의 부정과 비리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달래줄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본 것 아니겠느냐?”
과거 정권으로 책임 떠넘기기?금융관료들이 변양호 사건에 이어 김광수 사건을 검찰의 무리한 정치수사로 보는 근거는 무엇일까? 두 사건 모두 검찰이 금융관료의 개인 비리를 물고 늘어지는데, 당사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김광수 원장이 지난 5년간 명절 때마다 떡값 명목으로 200만원씩 받고, 2008년 9월에는 자택 앞에서 2천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명절 선물을 받은 적은 있지만 통상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특히 2008년 9월 자택 앞에서 2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김 원장은 구치소로 면회를 온 가족들에게 “죄를 짓지 않았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한 금융관료는 “김 원장의 평소 성품으로 볼 때 금품 로비를 받고 업체를 봐주었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면서 “검찰이 고스톱 판돈 계산하듯 몇 년치 명절 선물이나 식사비를 단순 합산해서 마치 거액의 금품을 받은 것처럼 부풀리는 구태를 되풀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변 대표도 수사 초기부터 현대차 쪽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무시됐다.
검찰이 구체적 물증 없이 뇌물을 주었다는 사람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것도 닮은꼴이다. 변 대표의 경우 돈을 전달했다는 김동훈 전 안건회계 대표가 금품 제공 일시나 장소, 자금 조달 경위에 관한 발언에 일관성이 없고 오락가락했음에도 검찰은 그의 말만 근거로 기소했다가 대법원에서 망신을 당했다. 김 원장의 경우 아직 수사 초기라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돈을 주었다는 부산저축은행 관계자의 진술 외에 구체적 물증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수 원장 사건과 변양호 대표 사건의 수사를 모두 대검 중수부가 맡는 것도 공통점이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변양호 대표, 이강원 전 외환은행 행장 등 론스타 사건 관련자들이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엉터리 수사를 한 해당 검사들은 책임은커녕 모두 승진했고 이번에 다시 김 원장 사건의 수사를 맡고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관료들 사이에서는 김 원장의 구속은 저축은행 사건의 책임을 과거 정권으로 떠넘기려고 호남 출신을 희생양으로 삼은 표적 정치 수사의 전형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 원장은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 회장과 김양 부회장 등 핵심 경영진과 광주일고 동문이다. 호남 출신의 한 언론계 인사는 “이명박 정부는 정말 나쁘다”며 “어떻게 대통령이 일개 고등학교와 싸우느냐”고 흥분했다. 한 금융관료는 “검찰이 비호남 출신인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에게는 뇌물수수보다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벼운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해 봐주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며 “호남이냐 비호남이냐에 따라 수사 차별을 한다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검찰의 낡은 수사 관행 변해야”금융관료들은 ‘변양호 신드롬’을 없애려면 공직자들이 청렴성과 사명감을 재확립하는 것과 함께, 검찰의 낡은 정치수사 관행을 바꾸기 위해 대통령부터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관료는 “공무원들이 돈을 받지 않으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풍토가 이제 마련돼야 한다”며 “직접적으로 돈을 받지 않았는데도 검찰이 개인 비리를 캐내는 수사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수 사건이 제2의 변양호 사건으로 ‘변양호 신드롬’을 심화시킬지, 아니면 검찰의 주장대로 국민을 실망시킨 엘리트 경제관료 사건으로 기록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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