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킴벌리의 기업 가치 훼손을 둘러싼 대주주 간 갈등 사태는 제1대 주주인 킴벌리클라크(이하 KC)가 제2대 주주인 유한양행(이하 유한)의 아찰 이사(KC 북아시아본부 총괄사장) 퇴진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해결의 돌파구가 열릴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KC와 유한은 지난 4월14일 서울 대치동 유한킴벌리 본사에서 만나, 지난 3월 정기주총을 계기로 표면화된 두 주주 간 갈등 사태의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최규복 유한킴벌리 사장도 참석했다. KC는 이날 유한의 아찰 이사 퇴진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처음으로 밝혔다.
“분담금 불법 유출 책임 인정한 KC”
아찰은 KC 북아시아본부 총괄사장을 맡고 있는 인물로, 지난 3월 주총에서 KC가 지명한 4명의 이사 중 한 명에 포함됐다. 유한양행은 당시 아찰이 지난 2009년 KC 북아시아본부의 운영비 중 일부를 분담하는 명목으로 유한킴벌리로부터 20억원을 불법 인출해간 책임자이기 때문에 이사 선임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KC는 아찰의 이사 선임을 강행했다. 유한의 고위 관계자는 “KC가 지난해 아찰의 (분담금 불법 유출의) 잘못을 인정하고도 다시 이사 선임을 강행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한은 2009년 말 20억원 인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유한킴벌리에 특별감사를 요구했고, 조사 결과 운영비 인출의 부당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KC는 운영비 인출 과정의 문제점을 인정해 지난해 20억원을 유한킴벌리에 반납했다. 유한은 아찰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정도로 심각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KC가 이사 선임 한 달 만에 아찰의 자진 사퇴 용의를 밝힌 것은 분담금 불법 유출의 책임자를 이사로 선임한 것은 부당하다는 유한의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한 관계자는 “분담금 불법 유출은 물론 그 책임자를 이사로 선임한 것이 모두 잘못임을 KC가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찰 이사의 퇴진과 후임 이사 선임은 유한킴벌리의 임시주총을 거쳐 공식 확정된다.
하지만 이날 두 주주 간 협의는 KC가 아찰 이사 사퇴 조건으로, 유한킴벌리가 KC에 지급하는 로열티의 증액과 KC 북아시아본부 운영비 분담 등을 제시해 최종 합의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유한은 아찰 이사의 퇴진은 당연하고, KC의 로열티 증액과 운영비 분담 요구는 무리라는 기존 태도를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한은 그동안 KC에 무리한 로열티 증액 요구를 포기하고, 북아시아본부 운영비 분담 요구를 철회하며, 유한킴벌리의 수출 마진율을 6%에서 9%로 정상화할 것 등을 요구해왔다. 유한 관계자는 “로열티 증액과 운영비 분담은 유한킴벌리의 기업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핵심 사안”이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유한킴벌리의 홍보책임자인 송명식 전무는 “두 주주사 간 (쟁점에 대한) 상호 이해를 넓히는 기회가 됐다”는 말로 최종 합의 도출에는 실패했음을 시사했다. 송 전무는 그러나 “두 주주사가 다시 만나기로 했고, 가능한 빨리 만나지 않겠느냐”고 말해 주주사 간 갈등해결을 위한 협의가 계속될 것임을 내비쳤다.
최 사장 취임 뒤 경영실적 크게 악화
유한킴벌리 사태의 또 다른 쟁점은 유한양행이 지난 3월 주총에서 아찰 이사 선임 반대와 함께 제기한 최규복 현 사장의 경질 요구안에 대한 처리다. 최 사장은 지난해 3월 주총에서 유한이 지명한 3명의 이사진에 포함됐고, 이사회에서 임기 3년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유한은 최 사장이 지난 1년간 KC의 경영 방침만 따르고 자신을 선임한 유한의 뜻에는 반하는 경영을 해와, 유한의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의 경영철학을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최 사장의 부임 첫해인 지난해 회사 경영실적이 크게 악화된 것에 대해서도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그동안 줄곧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매출액 순이익률과 매출액 증가율이 지난해에 각각 7.8%, 6.6%로 곤두박질쳤다. 이는 회사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주력제품인 유아용품(기저귀)의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진 것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다. 유한킴벌리의 기저귀는 국내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를 정도로 그동안 독보적 지위를 누려왔으나 최근 일본 제품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기저귀 시장의 급성장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최규복 사장은 지난해 초까지 수년간 기저귀를 담당하는 유아위생용품 본부장을 맡아왔다. 유한킴벌리 송명식 전무는 “회사가 인터넷 시장의 급신장을 안일하게 보고 처음부터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올초부터 인터넷 시장 전담조직을 강화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유한은 지난 3월 주총에서 최 사장 후임자로 최병선 전 부사장을 대신 선임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KC의 반대로 무산됐다. 최 전 부사장은 2007년 8월 문국현 전 대표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고 사임한 뒤 사실상 회사 경영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주총에서 사장 선임이 예상됐으나, KC가 자기네 경영방침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어, 결국 지난해 5월 회사를 떠났다.
최 사장의 거취는 주주사 간 갈등 해결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유동적인 상황이다. 유한에서는 최규복 사장 경질론과 타협론이 동시에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한의 고위 관계자는 “최 사장이 지명자인 유한의 뜻에 반해 경영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최종적인 거취는 다른 쟁점 사안들의 처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존경받는 기업의 전통 이어지나
유한킴벌리 사태의 핵심은 지난 41년간 유한의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사회책임경영과 뛰어난 경영성과를 모두 달성해 한국의 대표적인 존경받는 기업으로 평가받아온 전통을 계속 살릴 수 있을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려면 두 주주사인 KC와 유한 간에 호혜정신을 회복하는 일이 선결과제로 보인다. 유한킴벌리는 1970년 KC와 유한의 합작으로 설립됐다. KC와 유한의 지분 비율은 7 대 3이지만, 주주 간 상호 존중과 호혜정신을 살려 모범적인 합작경영을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동안 유한킴벌리 대표이사는 제2대 주주인 유한이 지명한 이사가 맡아왔고, 사실상 전문경영인에 의한 독립경영 전통이 지켜져 온 것도 이런 주주사 간 호혜정신을 반영한다.
하지만 2007년 문국현 대표가 사임한 뒤 상황이 돌변했다. KC는 북아시아본부 총괄사장인 아찰의 주도로 높은 주주 배당과 로열티 증액, 북아시아본부 운영비 분담 신설, 사회책임경영 투자 축소, 인력 구조조정 등을 요구하며 이에 반대하는 유한과 갈등을 빚어왔다. 유한킴벌리의 경영진들도 KC의 요구는 그동안 회사가 지켜온 사회책임경영 원칙과 배치된다며 반대하다가, 지난해 3월 주총 이후 상당수가 회사를 떠났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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