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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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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만에 계륵된 동반성장

‘이익공유제 흔들기’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사퇴 표명…

재벌 눈치보는 MB 정부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지적
등록 2011-03-30 17:14 수정 2020-05-03 04:26

“엄청난 상부의 지시가 내려져 중소기업청 직원들이 지시를 거부한 것이다.”
지난해 11월16일 이민화 기업호민관이 전격 사임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는 정부의 부당한 간섭으로 호민관실의 독립성이 훼손돼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호민관실이 대·중소기업 간 거래 관행을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평가 모델인 ‘호민인덱스’ 도입을 추진했으나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이 제동을 건 것이다. 이 호민관은 ‘엄청난 상부’가 누군지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힌트를 남겼다. “청와대에도 항의의 뜻을 전달했으나, 돌아온 것은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삼성에 강하게 대응하지 마라”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났다. 호민관실의 한 관계자가 ‘엄청난 상부’의 베일을 조심스레 벗겼다. “당시 이민화 호민관의 호민인덱스 추진에 대해 ‘아직 (MB 정부의) 레임덕은 오지 않았다’며 제동을 건 사람은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현 지식경제부 장관)이었다.” 최 장관은 최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초과이익공유제 시행 여부를 놓고 정면으로 대립하며, 정 위원장의 사의 표명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이다. 최 장관이 호민관에게 제동을 걸고, 동반성장위원장을 가로막은 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이민화 호민관은 사임 당시 “이번 일은 특정 부처의 문제라기보다 MB 정부의 생각이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최 장관의 초과이익공유제 반대에도 청와대의 의중이 담겨 있다고 의심한다.

» 이명박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에 대한 국민경제 대책 회의에 앞서 참석인사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에 대한 국민경제 대책 회의에 앞서 참석인사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호민관실과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놓고서 호민인덱스나 초과이익공유제 도입 방안을 왜 방해했을까? 호민인덱스 조사 대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5대 기업과 이들이 거래하는 중소기업이었다. 당시 현대자동차와 포스코는 조사에 찬성했다. 하지만 삼성 등 나머지 대기업은 반대했다. 삼성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도 이건희 회장이 직접 나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미 자진 사퇴한 호민관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동반성장위원장. 4개월의 시차가 있는 두 사건은 MB의 동반성장 정책이 이건희 삼성 회장으로 상징되는 재벌의 반발에 사실상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임태희 대통령 실장 쪽도 정운찬 위원장에게 “삼성에 강하게 대응하지 말라”는 뜻을 전달해왔을 정도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이 가진 근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정운찬 위원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반대에 이은 최중경 장관의 잇단 반대 발언에 반발하며 지난 3월21일 사의가 담긴 서한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한 측근 인사는 “정 위원장은 서한에서 자신이 초과이익공유제를 제기하게 된 배경과 논란이 일게 된 경위 등을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현 상태에서는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정 위원장은 또 서한에서 “일부 대기업이 수조원의 초과이익을 내는 데는 정부의 고환율 정책과 협력업체의 기여도 있는 만큼 대기업도 자발적으로 중소 협력업체를 키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도, 일부 정부 인사가 이익공유제의 취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기는커녕 부정적 의견을 공공연히 피력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이래서는 국민이 이 정부를 ‘자신들이 아닌 그들(대기업)을 위해 일하는 정부’라 여길 수밖에 없으니, 대통령께서 동반성장의 가치를 지켜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퇴 표명에 눈치만 보는 청와대

청와대에서는 부인하지만 서신은 사실상 사표 성격이다. 정 위원장 스스로 지난 3월22일 기자들에게 “긴 사직서”라고 밝혔다. 사표가 아니라면 청와대가 정 위원장에게 서신을 즉각 반려할 이유도 없다. 정 위원장은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한 다음 날인 22일부터 동반성장위원회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위원회와 관련된 행사 참석도 모두 취소했다. 하지만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장 관련 업무와 개인적으로 약속한 행사에는 참석하는 분리 대응을 하고 있다. 지난 3월23일 정 위원장이 참석한 청와대 행사는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를 제주 추진위 명예위원장으로 위촉하기 위한 것이었다.

청와대는 즉각 전방위 설득 작업에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 핵심 측근들을 통해 “정 위원장이 동반성장 과제를 책임지고 맡아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3월22일 “청와대의 뜻은 (정 위원장이) 동반성장에 대해 흔들림 없이 계속 해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이라면서, “동반성장은 국정 과제이니 정 위원장이 계속 역할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른바 ‘립서비스’뿐이다. 정 위원장의 복귀 명분이 될 수 있는 가시적 조처는 내놓지 않고 있다. 정 위원장은 복귀의 전제 조건으로 명시적인 요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지난 3월22일 “사직서를 냈으니 청와대에서 리스펀스(반응)를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하지만 청와대는 아직)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이 바라는 청와대의 반응 중에는 초과이익공유제에 반대한 최중경 장관 등 관련 인사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방안이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측근들은 더 근본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 위원장도 “(특정) 개인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청와대가) 계속 하라고만 하지 변화가 없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정 위원장 주변에서는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 확인이 사태를 푸는 열쇠라고 말한다. 한 측근은 “대통령이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직접 이번 사태에 대해 교통정리를 하고, 초과이익공유제 추진에 힘을 실어주면 문제가 저절로 풀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가 결단을 못 내리고 눈치를 보는 가운데, ‘신정아 변수’까지 터져 일이 더 꼬이게 됐다. 미국 예일대학 박사학위 위조 혐의로 실형을 산 신씨는 자전 에세이 에서 “정 전 총리가 밤에 만나자고 했었다”면서 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정 위원장은 지난 3월23일 저녁 인천 인하대병원에서 기업인 등 지역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마치고 난 뒤, 기자들의 질문에 “(신씨의) 책을 잃어봤느냐? 일방적으로 퍼붓는 거짓말투성이인데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서 “어이가 없다. 우리 사회가 더는 거짓말쟁이에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 대꾸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청와대 안에서는 입장이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신씨 파문이 정 위원장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못 된다고 보면서 동반성장위원장으로서 계속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이제 대통령이 직접 나설 상황은 아니고, 결국 본인 의지에 달린 문제 아니냐고 한 발 빼고 있다.

 

법 개정 못 따라가는 대·중소기업 거래 관행

이런 가운데 오는 3월28일이 정 위원장의 거취 등 향후 행보를 결정지을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은 정 위원장이 주재해야 하는 제4차 동반성장위원회 회의가 예정돼 있다. 정 위원장은 아직 회의 개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위원장은 지난 3월25일 경기도 부천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가진 인문학 강의에 앞서 28일에 출근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그건 가봐야 안다. 아직 잘 모르겠다”고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한 측근은 “정 위원장이 청와대의 가시적 조처도 없는데 업무에 복귀하는 것은 명분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정 위원장이 복귀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막후 조율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정치적 멘토로 알려진 김종인 전 의원은 지난 3월25일 한 방송에 출연해 “본인이 사퇴한다는 의사를 발표했으면 그것으로 마감하는 것이 옳다. 조건을 내세워서 ‘이러면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잘못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29일 동반성장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공정거래질서 확립, 중소기업의 사업영역 보호 및 동반성장 전략 확산을 포함한 4개 전략, 15개 정책 과제를 내놓았다.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6개월이 지나면서 공정거래질서 확립의 두 가지 핵심축인 ‘법·제도 정비’와 ‘관행·인식 전환’ 중에서 전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3월11일 동반성장 대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하도급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 동반성장 종합대책 이행 점검(3월11일 하도급법 개정 내용)

» 동반성장 종합대책 이행 점검(3월11일 하도급법 개정 내용)

개정안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단가 인상 협의를 요구할 수 있는 ‘조정협의제’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담았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조정협의 신청권을 부여하고,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해 합의가 어려울 때는 바로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에 조정신청을 할 수 있게 했다. 또 대기업의 하도급대금 감액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감액을 하면 그 정당성을 대기업이 입증해야 하고 사전에 감액 사유·기준 등이 담긴 서면을 교부하도록 의무화했다. 중소기업 기술 보호를 위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에 대해 최대 3배까지 손해를 물어줘야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고위·과실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도 대기업으로 전환했다. 대기업이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는 권리 귀속·대가 등이 명시된 서면을 교부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와 함께 동반성장협약(옛 상생협약)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하도급법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중소기업 대표들 “달라진 건 없다”

아직 남은 과제 중 큰 것으로는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 감시 강화를 위해 ‘대규모 소매업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는 것이다. 공정위는 백화점·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입점업체나 납품업체들에 판매 수수료 부당 인상, 부당 반품 등 불공정 행위를 하는 경우 입증책임을 대형 유통업체들이 지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공정위의 김성하 기업협력국장은 “상반기 안에 관련 법률 제정을 끝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협력업체 지원 실적을 점수로 평가해 공개하는 동반성장지수 개발과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작업은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진행 중이다. 동반성장지수는 56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를 내년 초 발표할 계획이다.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거래 개선을 위해 앞장서온 민주당의 박선숙 의원은 하도급법 개정안 통과에 대해 “충분하지는 않지만 진전된 측면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특히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홍준표 최고위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지배-종속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혁명적인 내용들이 포함됐다”고 자평했다.

»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사퇴 표명에 청와대가 결단을 못 내리고 눈치를 보는 가운데, ‘신정아 변수’까지 터져 일이 더 꼬이게 됐다. 신정아씨가 지난 3월22일 낮 서울 중구 소동공 롯데호텔 36층 이스토룸에서 자전 에세이 <4001> 출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강재훈

»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사퇴 표명에 청와대가 결단을 못 내리고 눈치를 보는 가운데, ‘신정아 변수’까지 터져 일이 더 꼬이게 됐다. 신정아씨가 지난 3월22일 낮 서울 중구 소동공 롯데호텔 36층 이스토룸에서 자전 에세이 <4001> 출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강재훈

하지만 아직 더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의 위평량 박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 대상을 대기업의 기술 탈취뿐만 아니라 하도급거래법과 공정거래법상 불공정 행위 전반으로 확대하고,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권이 아니라 아예 협상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밖에도 공정위의 전속고발제 완화, 중소기업에 대한 선별적 카르텔 허용, 부품종류별·지역별·산업별 사업자조합 활성화, 표준 하도급 계약서 전 업종으로 확대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야는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권과 관련해서는 향후 2년간 시행 효과를 평가해 협상권 부여 문제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질서 확립과 동반성장 문화 확산 등을 위한 또 다른 축인 대기업의 관행과 인식 전환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주물산업 중소기업들은 자동차·전자·조선·공작기계·산업기계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요 산업에 핵심 부품을 공급한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이후 원재료인 고철과 푸란수지 가격이 각각 15%, 40%로 크게 올라 대기업에 납품단가 반영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인상분의 일부만 납품단가에 반영해주는 데 그쳤다. 한국주물공업협회 관계자는 “자동차와 산업기계의 경우 고철값 상승분의 일부만 납품가격에 반영하고, 반영 시기도 실제 인상 시점에서 몇 달 뒤로 미루는 일이 여전하다”면서 “그나마 푸란수지 인상분이 납품가격에 대부분 반영된 것은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라고 털어놨다.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현장에서 만난 많은 중소기업 대표들은 본질적으로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면서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얘기도 적잖다”고 말했다. 그러면 정부가 지난해 동반성장 정책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이후 대기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협력사 지원책을 내놓고 지원행사를 벌이는 것은 무엇일까? 중소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래서 차라리 선전이나 안 하면 화가 덜 나겠다고 얘기하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주물공업협회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기업이 납품업체들의 요청에 아예 눈을 감았다면, 지금은 눈을 반쯤 떴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 정운찬 위원장이 지난 3월25일 오전 부천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열린 개교 100주년 기념 인문학 강좌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

» 정운찬 위원장이 지난 3월25일 오전 부천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열린 개교 100주년 기념 인문학 강좌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

 

대기업들, 소나기 지나갔다?

대기업들의 최근 분위기는 재벌 총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전경련은 정부와 지난해 9·29 동반성장 종합대책에서 합의한 동반성장위원회 설치와 동반성장지수 발표에 대해서도 부정적 태도를 보여 정부를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의 양금승 소장은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하는 것은 명백한 대기업 줄세우기”라며 “동반성장위원회가 조사 대상 56개 대기업에 동의는 얻었느냐”고 반문했다. 전경련은 또 동반성장위가 민간 기구라고 하지만 사실상 정부 기구가 아니냐고 비판한다.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이런 전경련의 모습을 보면서 “대기업들은 이미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 드라이브) 소나기가 지나갔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불분명한 태도와 재벌들의 강한 반발을 감안할 때 정부와 국회가 하도급 공정거래 확립을 위해 이뤄낸 법과 제도의 개선이라는 ‘절반의 성공’조차 실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늘고 있다.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대기업이 좋은 일(동반성장 지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은 나쁜 일(하도급 불공정거래)을 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대기업들의 관행과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현장이 바뀌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도 지난 3월21일 “동반성장은 기업들에 알아서 하라고 맡길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통해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이명박 정권은 이를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를 천명하며 당선됐다. 대통령 인수위원회의 정책을 사회주의라고 비난한 전경련 임원이 물러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서슬이 퍼다. 하지만 결과는 재벌개혁 실패였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집권 기간 중에 “권력이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 장관의 공개적인 초과이익공유제 반대를 사실상 방치했다. 동시에 정 위원장의 사임을 만류하는 헷갈리는 행보를 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동반성장 정책을 진짜 하려는 게 아니라 시늉만 한다는 인식을 재벌에 심어줄 수 있다. 더욱이 이건희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되는 절묘한 시점을 잡았다. 이건희 회장이 제동을 건 것은 정운찬 위원장이 아니라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의 동반성장 정책인 셈이다. 민주당의 박선숙 의원은 “정부가 하도급 공정거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정비한 법과 제도가 성과를 내려면 정부의 법 시행 의지가 분명해야 하는데, MB 정부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정권 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동반성장 의지에 대해 답을 내놓을 차례가 됐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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