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7월16일, 강원도 춘천 중앙로 강원도의회 건물 안과 밖에 따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건물 안의 널찍한 대회의실에서는 재적의원 40명 가운데 34명이 모여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재도전 결의안’을 채택했다. 불과 12일 전 과테말라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강원도 평창이 러시아의 소치에 4표 차이로 밀려 두 번째 고배를 마신 뒤였다. 탈락의 아픔을 딛고 다시 ‘3수’를 결정한 강원도의회 의원들의 심경은 절절했다. 당시 도의회 의원총회 보고 자료는 “지금 이 순간 포기한다면, 지난 8년간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말 것이며, 강원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기록했다. 이날 강원도 의회의 결정은 바로 ‘강원도 올림픽 재도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각종 매체에 소개됐다. 도의회의 결정은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의 신호탄이었다.
객관적 수치와 희망사항 뒤섞여
바로 그날, 도의회 건물 밖에서는 작은 기자회견이 하나 열렸다. 강원 지역에 자리잡은 풀뿌리 시민단체 42곳이 모여 만든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도의회에 지역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라고 요구했다. 연대회의는 “(과거)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국제 스포츠 행사가 강원도에 진짜 이로운지 등에 대해 자체 검증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은 여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올림픽 유치라는 당위에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묻혔다.
어느 쪽의 판단이 합당했을까? 2018년 동계올림픽의 효과를 분석한 자료를 찾아봤다. 우리나라 유치위원회에서 낸 보도자료가 유일했다. 자료를 보면, 동계올림픽 개최에 따른 총생산액 유발 효과는 20조4973억원이었고, 부가가치 유발액은 8조7546억원이었다. 또 고용 유발 효과는 23만 명이었다. 가히 폭발적인 효과였다. 언론에서 인용하는 올림픽 유치 효과는 대부분 이 수치를 인용한 것이었다. 유치위원회에 수치를 뽑아낸 근거 자료를 요청했다. 유치위원회가 보내준 13쪽짜리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타당성 조사보고서’를 보면, 건설 분야의 7조8839억원을 비롯해 28개 산업 분야에 걸쳐 20조원이 넘는 생산 유발 효과가 있다고 풀이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셈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유치위원회에 다시 보고서의 근거 자료를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보안상 자료를 제시할 수 없다”였다.
연구 용역을 맡았던 산업연구원에도 자료를 요청했지만 답은 같았다.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으로부터 계산이 산출된 근거를 일부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경제 효과를 산출하는 데 근거가 되는 통계 가운데 일부는 유치위에서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자료의 근거에는 객관적 통계와 유치위원회의 ‘희망사항’이 뒤섞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또 “경제 효과 수치에는 정부의 재정 투자액도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세금으로 투자하는 ‘비용’이 ‘효용’과 뒤섞이게 돼 착시효과를 낳았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스포츠과학)는 “정부 산하 연구원이나 지역 자치단체 부설 연구원의 용역 연구 결과는 수치를 부풀리고 해석도 입맛대로 하면서 많은 문제가 있지만, 언론은 이를 그대로 전하고 국민은 이를 믿게 된다”고 말했다.
올림픽의 실제 경제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신뢰할 수 있는 분석이 없다면, 과거 해외의 경험으로 눈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남는 장사’는 많지 않았다. 1976년에 열린 몬트리올올림픽은 주최 도시가 ‘쪽박을 찬’ 대표적인 경우다.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 올림픽을 개최한 몬트리올시가 행사 뒤 짊어진 부채는 무려 100억달러(약 11조2640억원)였다. ‘거대한 경이’(The Big Woe)라는 애칭이 붙었던 올림픽 주경기장은 대회가 끝난 뒤 소를 파는 우시장으로 사용됐다. 거대한 경기장의 명예로운 애칭도 ‘거대한 빚’(The Big Owe)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으로 바뀌었다. 몬트리올시는 무려 30년이 지난 2006년에 이르러서야 그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뒤이은 모스크바올림픽도 900만달러의 손실을 봤다.
LA올림픽, 거의 유일한 흑자 올림픽올림픽으로 흑자를 본 거의 유일한 경우는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이었다. 거대한 적자를 남긴 몬트리올올림픽이 끝난 뒤, 1984년 올림픽을 신청한 도시는 없었다. 굳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시는 IOC가 재정 부담을 전혀 지지 않는 조건으로 행사의 주인장 노릇을 맡았다. 시는 기존 경기 시설을 재활용하고, 상업화 논란을 무릅쓰고 민간기업의 광고를 대거 받았다. 이렇게 조직위는 3억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였다.
로스앤젤레스의 선례를 따른 도시는 드물었다. 앤드루 짐벌리스트 미국 스미스칼리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3월 국제통화기금이 발행하는 계간지 에 낸 기고문에서 “로스앤젤레스 이후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들은 기업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광고를 받아낼 수 없었다. 서울과 바르셀로나, 나가노, 시드니, 아테네, 베이징 등 올림픽 개최 도시들은 수십억달러의 세금을 올림픽 유치를 위해 써야 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유치 국가에서 부담해야 할 재정 부담은 천문학적이었다. 그리스 정부는 2004년 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정부 지출을 16억달러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지출액은 10배로 뛰어오른 160억달러로 집계됐다. 2008년 올림픽을 치른 중국 정부도 유치 비용을 16억달러로 잡았지만, 도로 건설 등 인프라 구축에 사용한 예산을 모두 합하면 지출은 400억달러를 넘어섰다. 2012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런던시는 벌써부터 재정 압박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을 때 4조5천억달러를 비용으로 내다봤지만, 2009년에는 예상 비용이 21조4천억달러로 부풀어올랐다. 영국의 런던올림픽 장관인 테사 조웰은 2008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때 우리가 (비용에 관한) 진실을 알았더라면, 올림픽 유치 신청을 했을까요? 거의 확실하게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올림픽 유치 비용은 왜 이렇게 용솟음을 칠까? 하뤼 솔베르그 노르웨이 오슬로 쇠르트뢰넬라그대학 교수(경제학)는 올림픽의 효과를 분석한 2008년 논문에서 “스포츠 행사 이전에 나오는 경제성 분석 보고서를 신뢰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 뒤 “많은 경우 대형 스포츠 행사의 경제 효과 예측치에서 나오는 오류는 정책 결정자들과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일부러 저질러진다”고 설명했다. 일부 국가에서 경제 효과를 의도적으로 ‘뻥튀기’했다는 뜻이다.
유치 반대 운동 벌인 토론토 시민그나마 실속 있게 올림픽을 치렀다는 도시들도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외화내빈’에 가깝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손익분기점을 지켰다고 발표했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쏟아부은 22억달러는 제외한 결과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도 조직위원회는 300만달러를 벌었다고 발표했지만, 이면에서는 중앙과 지방정부가 61억달러의 빚을 떠안았다. 우리나라도 공식적으로는 1988년 올림픽에서 3360억원 이득을 봤다고 발표했지만, 당시 중앙과 지방정부에서 쓴 1조2854억원은 지출 내역에서 빠진 결과였다. 2010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캐나다 밴쿠버시는 대회가 끝난 뒤 10억달러의 적자를 봤다고 발표했다. 재정지출이 생산적으로 이용됐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든 경기장은 ‘세금 먹는 하마’였다. 영국 는 그리스가 신축한 22개 경기 시설 가운데 21개는 방치됐고, 이런 시설들을 유지·보수하는 데만 4년 사이 5억파운드(약 9182억원) 가까운 세금이 쓰였다고 보도했다.
전용배 동명대 교수(체육학)는 “국내외의 학문적 연구 분석을 보면,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대규모 재정 투자 덕분에 한동안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효과는 있지만, 올림픽이 지역 경제를 장기적으로 발전시켰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혁신연구교육을 위한 노르딕연구소’ 올라브 스팔링 박사는 “동계올림픽과 같은 대형 행사의 경제 효과에 대해 말하자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의 경험을 볼 때 예산 낭비라는 분명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ap>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존 달버그는 “역사를 돌아보면 올림픽은 항상 문제를 낳는 프로젝트였고, 납세자들은 결국 부담만 떠안았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나서서 올림픽 유치 반대 운동을 펴는 사례도 있다. 캐나다 토론토시가 2008년 하계올림픽 유치 활동에서 나서자 시민단체가 들고일어섰다. ‘서커스가 아닌 빵을’이라는 시민단체는 2001년 3월 토론토를 찾은 IOC 실사단과 공식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토론토시가 사회 서비스 예산을 줄이면서 올림픽 유치 활동에 예산을 쏟아붓는다. 토론토는 올림픽에 맞지 않는 도시다”라며 공공연히 유치 반대 의사를 밝혔다. 197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미국 덴버시에서는 주민들이 나서서 세금이 올림픽 준비에 쓰이는 것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시는 어쩔 수 없이 개최권을 IOC에 반납했다. 평창과 2018년 올림픽 유치권을 다투는 독일 뮌헨에서는 지난해 11월 올림픽 유치위원회에 참가하던 녹색당 간부가 위원회에서 사퇴했다. 동계올림픽의 시설 건설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할뿐더러, 납세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한다는 당의 입장에 따른 것이었다.
“과대 선전보다 지역 장기 발전 성찰을”
올림픽 개최에는 직접적인 경제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지역민들의 자긍심이 올라가고, 또 사회적 통합을 낳는 보이지 않는 효과도 있다. 한편에는 정치적 야심을 이루려는 정치인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대규모 건축·토목 공사를 보고 달려드는 건설사들, 불로소득을 바라는 부동산 투기 세력의 이해관계도 얽히게 된다. 이러한 변수들이 복잡하게 충돌하면서 올림픽 유치 활동이 진행된다.
앤드루 짐벌리스트 교수는 2018년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도시들에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올림픽과 같은 주요한 행사를 유치하는 데 따른 경제적비경제적 효과는 복잡하고 상황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다. 다음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프랑스 안시나 독일 뮌헨, 한국의 평창, 그리고 2020년 하계올림픽을 준비하는 도시들은 올림픽의 효과에 대한 과대 선전에 분명한 거리를 두면서, 지역의 장기 발전 목표에 대한 길고 견고하고 진중한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2011년의 대한민국과 평창은 지금 그러고 있을까.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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