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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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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성, 읽는 것조차 힘들었다”

20기 독편위 네 번째 모임…

“<한겨레21>식으로 교육 문제 다루라”는 주문부터

장관 딸 특채 관련해 “공직사회 탈탈 털지 못했다”
등록 2010-10-21 10:47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21〉 825호~830호.

〈한겨레21〉 825호~830호.

20기 독자편집위원회의 네 번째 모임이 10월11일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김대훈 위원은 10쪽에 실린 ‘이 기사, 주목’의 원고를 평소보다 빨리 보내는 것으로 미안함을 전했고, 회사 일로 참석이 힘들다고 말한 정다운 위원은 일을 마치자마자 달려와 자리를 함께했다. 바깥에는 가을바람이 때때로 스산할 정도로 차가워졌는데, 6명 독편위원이 모인 회의실은 여름만큼 뜨겁게 덥혀졌다. 더워서 문을 열어놓고 회의를 하다 못해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겨서야 겨우 회의를 끝낼 수 있었다. 저녁 6시30분께 시작한 회의는 밤 11시가 다 돼서야 마칠 수 있었을 정도로 꼼꼼하고 세세하게, 밤 깊은 줄 모르고 이어졌다.

“인권경영 캠페인 해보면 어떨까”

김경민: 오늘은 멀리 있는 825호부터 돌이켜보자. 표지이야기 ‘마지막 희망, 우리 아이 사교육을 포기합니다’를 읽으며 사교육에 대해 생각해봤다. 현재 정부의 사교육 대책은 공교육을 대안으로 삼지 못한다. 실상 공교육이 강화되진 않았는데, 사교육을 금지함으로써 공교육을 강화했다는 표시만 내려고 한다.

변인숙: 교육을 가정의 생계와 연결해서 실제 사례를 보여줘 좋았다. 솔직히 입시와 멀어지는 나이가 되면 관심 또한 얼마나 멀어지나. 환기가 되는 기사였다.

이연경: 계층 이동의 수단이 지금까지는 교육이었는데, 이제는 교육마저 계층에 따라 정해지는 듯하다.

박지숙: 사실적인 통계 수치를 근거로 내세워서 좋았다. 하지만 우리 교육에서 사교육이 필요악이란 전제를 깔고 쓴 것 같아 좀 허무했다. 이것부터 먼저 고민했어야 하지 않나. ‘사교육이 점점 고소득층에게만 집중된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수의 프레임과 뭐가 다른가. 더 밑바닥까지 캐고 들어가 살펴야 하지 않았나.

김경민: 그런 면에서는 새롭지 못한 기사였다.

변인숙: 하지만 현재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계속해서 식으로 현상을 꼬집는 기사를 써주면 좋겠다.

전우진: 교육 문제를 교육에 국한해 봐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사회의 성숙도가 높아져야 교육 문제가 해결된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닮은 점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기사에서 보면 일본은 가정환경이 학업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적다. 일본과 한국의 교육환경을 비교해보면 좋겠다.

박지숙: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룬 정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선생님’을 읽으면서 정치인의 인간적인 부분을 우리는 왜 사후에만 알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인간적인 부분까지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왜 지도자는 항상 비판받아야 하나.

변인숙: 정치·경제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 아닐까.

김경민: 826호에서는 표지이야기 ‘인권경영 없이는 기업도 없다’가 유익했다.

전우진: 인권경영의 정의를 명확히 해주지 않아 아쉬웠다. 제3세계 노동자 착취, 한국의 노동자·소비자에 대한 문제를 모두 아우르던데, 인권 경영의 범주가 이렇게 넓은 건지, 익숙한 주제가 아니어서 잘 와닿지 않았다.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하나 불편했던 점도 있다. ‘윤리적 소비자’를 ‘진보적 성향을 띤 고학력 중산층’이라고 표현했던데, 배운 사람들만 진보라고 읽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진보든 아니든 불편하게 읽을 수 있다. 진보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도 종종 듣는데, 이런 생각을 기저에 두고 있다면 진보의 영향력을 넓히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 도 있다.

박지숙: 표지 이미지를 보면 ‘요즘 대세 인권경영’이라는 문구가 있다. 아직 인권경영의 뜻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너무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세계적으로 인권경영이 대세니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식의 캠페인성 기사였다면 어땠을까. 지난번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연재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인권경영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도 아니잖나.

변인숙: 특집 ‘지난 10년, 문학은 이들 때문에 행복하였노라’는 최고 작가 라기보다는 최고 인기 작가들을 모아놓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63명의 문학평론가가 선정했다고 하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대표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10년 동안 문학의 주류나 경향을 이야기하고 주목받지 못한 수작을 소개하는 기사였다면 좀더 다웠을 것이다.

이연경: 나는 처음 보는 작품이 많아 어렵게 느껴졌다.

제20기 독자편집위원회

제20기 독자편집위원회

노숙인의 권리 vs 시민의 권리

김경민: 레드 기획 ‘누가 기아를 홍어 타이거즈라 부르는가’를 읽으면서 야구를 통해서도 지역감정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좀 더 확장해서 특집으로 다뤄보는 것은 어땠을까. 스포츠와 사회를 연결한 기사가 꾸준히 나와주면 좋겠다.

전우진: 청소년들이 야구를 통해 지역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 놀라웠다.

정다운: 기획 ‘4대강 살리기라는 놀라운 선동’처럼 이 4대강 문제를 꾸준히 다뤄줘서 좋다.

이연경: 4대강 사업의 모델이 된 독일 라인강에 대한 연구를 한 학자가 쓴 글이라 더 새로웠다. 4대강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김경민: 독자편집위원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부산에서 올라오면서 4대강 사업을 눈으로 확인한다. ‘녹색 뉴딜,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문구가 붙은 현수막이 끔찍하다.

변인숙: 827호 표지이야기 ‘나는 노숙인을 보았다’를 통해서는 노숙인을 ‘생활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김경민: 그런데 ‘왜 노동하는 시민이 되어야 하는가’ 기사는 불편했다. 노동을 원하지 않으면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인데, 거부도 권리가 될 수 있나.

전우진: 노숙인에게 일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유여야 하지 않을까. 공적인 공간을 자유롭게 누리려는 다른 시민의 권리는 왜 생각지 않는가.

박지숙: 노숙인들의 마음에 초점을 맞춰 읽었다. ‘아, 이 사람들은 일할 의지도, 쉼터에 들어갈 마음도 없구나. 세상을 향해 이렇게까지 마음을 닫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들의 마음을 치유해줄 필요가 있겠다. 자존감을 획득하고 사회와 다시 융화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아쉬운 점은 노숙인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언급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현상을 보여주는 기사에 이를 덧붙이면 사족이 될지 모르겠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 포함되면 좋았을 것이다.

변인숙: 사람이 집단이 됐고 그 집단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기사였다. 문제를 인식하면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앞으로 보여주면 좋겠다.

김경민: 828호 한가위 합본호는 다들 어떻게 봤나. 나는 합본호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인지 외교통상부 비리를 다룬 표지이야기의 분량이 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숙: 그동안의 합본호는 스펙트럼이 넓은 기사를 많이 다뤘는데, 현안에 집중한 것 같아 아쉽다. 표지이야기 중 ‘그들은 정말로 또 하나의 가족이었네’에서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파문을 다루면서 삼성의 예를 들기보다는 공직사회 전체를 훑었어야 하지 않을까. 기업 임원자녀에게 특혜를 준다는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그동안 드문드문 들어왔다. 외통부 비리 문제가 충격적이었던 만큼 공직사회 안의 ‘왕후장상의 씨앗들’을 더 탈탈 털었어야 한다.

‘장애인 성’ 기사 두고 갑론을박

박지숙: 딸랑 이거 ‘“제군들, 몸 다치지 마라” 총장님의 당부가 그립다’를 읽으면서 학벌이 물씬 묻어나는 글이라 생각했다. 평소 좋아하는 기자여서 기사를 따로 스크랩까지 했었는데, 실망이다.

변인숙: 나는 기자의 커밍아웃이라고 읽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부끄럽다고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지숙: 기사에서 진보의 엘리트 의식을 읽었다. 앞서 전우진: 위원이 ‘인권경영 없이는 기업도 없다’를 평가하면서 지적한 것처럼 독자가 불편해할 수 있는 지점을 배려해주면 좋겠다.

이연경: 829호는 어떻게 읽었나. 내게 가장 충격적인 기사는 표지이야기 ‘장애인도 하고 싶다, 살고 싶다’였다. ‘섹스 자원봉사’에 대한 영화를 다룬 기사 ‘“넌 자위나 하라”고 말하는 세상’(807호)의 확장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전우진: 상당히 앞서간 기사가 아닌가 싶다. 이니까 쓸 수 있는 기사였다. 기본적인 이동권을 확보해 장애인의 성 문제를 해결하라는 대안은 너무 기초적인 것이어서 오히려 힘이 약해 보였다.

정다운: ‘여성의 눈으로 유럽 성 서비스를 보다’를 읽으면서 성매매가 합법화되지 않은 나라에서 외국의 성 서비스를 소개한 것은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변인숙: 예전에 영화 가 나왔을 때도 다른 매체에서 유럽의 성 서비스 사례를 소개하던데, 대안으로 제시할 만한 게 워낙 없어서가 아닐까. 읽는 이도, 쓰는 이도 힘들었을 것 같다.

김경민: 성 서비스 사례는 정다운: 위원도 지적했고 기사에서도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충돌”한다고 밝혔지만, 외국의 사례는 우리 사회 시스템과 다른 측면이 많아 그야말로 ‘사례’로만 읽혀 충분히 공감되지 않는다.

박지숙: 그래도 다른 나라는 이렇게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처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장애인의 기본적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데 참으로 먼 얘기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비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지방 독자에게 서울 지리는 어려워

이연경: 830호에서는 레드 기획 ‘단장 짚고 공책 든 구보씨 따라 걷기’가 좋았다. 하지만 서울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대전에 사는 나는 지도를 보며 따라 읽어도 머릿속에 상상되는 것이 빈약하니 재미가 덜했다.

변인숙: 현재의 모습을 좀더 많이 보여줬다면 독자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지숙: 이연경: 위원의 말에서 서울 중심의 시각에 사로잡힌 언론의 문제가 떠오른다. TV 프로그램도, 신문·잡지 기사도 서울에서 생산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지방의 시청자나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박지숙: 표지이야기 ‘김일성 조선의 김정은 세자 책봉’은 특히 표지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쌍둥이처럼 인민복을 입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를 나란히 세운 것이 재치 있게 느껴졌다. 가계도도 눈에 잘 들어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정보들을 확실하게 짚어주었다. 친절하게 일일이 설명해줘서 좋았다.

전우진: 3대 세습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을 진보 지식인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아쉬웠다. 다른 목소리까지 종합해 의견을 들어봤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정리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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