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공연보다 재밌는 프레젠테이션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4 발표 현장… 화려한 언변과 감성적 시연에 5천여 개발자들 환호
등록 2010-06-18 14:07 수정 2020-05-03 04:26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정말 멋지지요!”(Just Gorgeous!) “우리가 만든 제품 중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입니다.” 지난 6월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에서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 ‘아이폰4G’를 발표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했다.

출시 행사 전에 애플 직원이 술집에 놓고 나온 시제품이 정보기술 전문매체 의 손에 넘어가 디자인과 기능이 알려지는 바람에 애플 특유의 ‘깜짝쇼’는 불발했지만, 행사장에 모여든 개발자·기자 등 5200여 명은 잡스의 현란한 프레젠테이션에 박수갈채로 호응했다.

언제나처럼 물 빠진 청바지, 검은색 폴라 셔츠, 흰색 운동화 차림을 하고 무대에 등장한 스티브 잡스는 금욕주의적 구도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에서는 변한 게 없었지만, 그가 들고 나온 아이폰 새 모델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2007년 출시된 이래 디자인 변화가 없던 아이폰은 이번에 처음으로 옷을 완전히 갈아입었다. 이전까지의 유선형 대신 직각에 가깝게 모서리를 처리하고, 앞뒷면을 모두 평평하게 만들었다. 겉모습만 바뀐 것은 아니었다. 다양한 성능이 개선되고 새로운 기기가 탑재됐다.

3개의 회전축을 감지해 다양한 방향에서 움직임을 정밀하게 계측할 수 있는 ‘자이로스코프’ 기능이 탑재됐다는 데 개발자들은 “와우~” 하며 환호했다. 잡스는 아이폰4G에서 나무 블록을 무너뜨리는 게임 ‘젠가’를 실행해 요리조리 방향을 바꾸고 다양한 축으로 회전시키면서 블록을 하나둘 빼내는 모습을 시연했다. 가속센서, 중력센서, 나침반, 지자기센서 등을 탑재해 아이폰을 뛰어난 모바일 게임기로 만들어온 것에 새로운 하드웨어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사람 눈의 식별 한계를 넘는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아이패드에 탑재된 중앙처리장치(A4) 칩 사용, 음성통화 기준 배터리 성능 40% 향상 등도 눈길을 끌었다.

구글 안드로이드 따돌리겠다는 의지

의 ‘신형 아이폰 분해’로 새로울 것이 없어 김 빠진 행사가 될 줄 알았는데, 정보기술계의 반응은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만난 모바일 게임업체 컴투스의 박지영 사장은 “애플이 하드웨어에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애플이 개발자들에게 제시한 다양한 ‘선택권’과 ‘영업 기회’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잡스는 “이달 안에 iOS(아이폰·아이패드·아이팟터치의 운영체제)가 탑재된 기기가 1억 대를 돌파할 것”이라며, 소프트웨어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개발자들에게 희망을 제시했다. 전세계 개발자들에겐 애플 앱스토어가 가장 수익성이 뛰어난 온라인 장터라는 점을 강조하고, iAD라는 새로운 모바일 광고 플랫폼을 소개했다. 개발사들은 앱스토어에서 응용프로그램(앱)을 무료로 팔아도 애플이 유치한 광고를 붙이면 이로 인한 매출의 60%를 가져가는 것이다. 뛰어난 개발자들을 더 많이 모으고 이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나눠주는 플랫폼이 승리하는 스마트폰 운영체제 경쟁에서 구글 안드로이드마켓의 추격을 멀찌감치 따돌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번 아이폰4의 디자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사용된 소재와 질감이다. 안테나 기능을 하는 스테인리스로 테두리를 두르고, 플라스틱이던 뒷면을 앞면처럼 강화유리로 만들었다. 손에서 떠나지 않고 수시로 얼굴에 비비는 휴대전화는 어떠한 기계보다 인간과 친근함이 느껴져야 한다. 이런 제품을 철과 유리로만 만든 것은 스티브 잡스 특유의 도발적 시도이자 고집스러운 디자인 철학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세계적 휴대전화 디자인업체인 ‘원앤코’(One&Co)의 디자이너 조나 베커는 “일체의 장식적 요소를 빼버리고 기능만을 강조한 현대 미니멀리즘이 적용된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잡스의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본 전세계 스마트폰 경쟁업체들이 긴장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오는 6월21일(미국시각) 이후 iOS는 사용자가 충전이나 동기화를 위해 컴퓨터와 연결하는 순간 전세계에서 자동으로 최신 버전인 iOS4로 업데이트된다. 각각 다른 버전과 기기들에 특화된 운영체제로 업그레이드 문제를 겪고 있는 구글 안드로이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에서는 꿈꾸지 못하는 기능이다.

아이폰은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와 사용이 쉬운 소프트웨어의 긴밀한 결합을 이뤄냈다며 전문가들과 얼리어답터 그룹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된 프레젠테이션은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내내 이어진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프레젠테이션은 어떠한 공연보다 흥미진진했다. 체감하는 시간이 30~40분 정도로 느껴질 정도였다. ‘프레젠테이션의 귀재’라는 말이 명불허전임을 실감하는 자리였다. 디자인과 자이로스코프, iAD 등 아이폰4G의 8가지 새로워진 특성을 소개하고 나서 잡스는 “하나 더 남았다”며 화상통화 기능인 ‘페이스타임’(Face Time)을 소개했다. 일찍이 국내에 소개된 기능이라 새로울 게 별로 없지만, 똑같은 것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잡스의 능력은 탁월했다. 페이스타임을 소개하는 동영상은 몇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다양한 생활 속 쓰임새를 보여주며 그 기능성과 유용함을 강조했는데, 갈수록 감정을 자극하는 톤이 높아져갔다. 맨 뒤에 삽입된 두 장면이 대표적이다. 군대에 있는 남자가 병원에 누워있는 아내랑 통화를 한다. 곧이어 아내의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자신의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화상통화로 보고는 감격한다. 뒤이은 장면은 말이 없는 전화 통화다. 연인인 두 청각장애인이 표정과 눈빛으로, 그리고 ‘손말’로 나누는 사랑의 대화를 페이스타임이 이어주고 있음을 보여줬다.

개발자 일일이 소개하며 자부심 북돋아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기 직전 애플의 개발자들 이름을 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세요”라며 청중에게 소개했다. 아이폰4G의 주요 기능과 서비스를 개발한 직원과 그 팀을 일일이 소개하며 격려하는 자리였다. 참석자 5200명 대부분이 개발자인 이 행사장에서 개발자들은 자신의 기여와 존재 가치를 확인하며 애플에 대한 그들의 감정이 더욱 강화되는 것을 느꼈다. 참가비만 1700달러에 이르는 이 행사에 한국에서도 70여 명이 참석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한국인 개발자 대부분은 “잡스가 개발자들을 호명하며 일으켜 세워 인사시킨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개발자로서 공감하는 자부심과 함께 국내의 열악한 개발자 처우에 대한 느낌이 교차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미국)=구본권 기자 한겨레 경제부문 starry9@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