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을 통해서다. 삼성전자는 ‘옴니아폰’으로 맞장을 떴다. LG전자는 초기 대응에 늦었다. 결과는? 2월 성적표가 나왔다. 삼성은 선전했고, LG는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 11월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온 뒤, 아이폰 열풍은 뜨거웠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동료·친구들과의 대화 속엔 아이폰이 있었다. 국내 출시 뒤 아이폰의 판매대수(2월 말 기준)는 모두 29만 대로, 매주 2만 대 이상 팔리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로선 토종 기업이 장악했던 휴대전화 시장을 외국 기업에 내주게 됐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아이폰 도입을 유보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을 정도다. 지난 1월 한 언론은 “이 부사장이 ‘국내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1위(51%)인 SK텔레콤이 아이폰을 도입할 경우 삼성 휴대폰이 국내에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최 회장에게 아이폰 도입 유보를 요구했고, SK텔레콤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최태원 회장은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지만, 경제개혁연대가 삼성전자와 SK텔레콤에 사실 여부를 묻는 공개 질의서를 보내는 등 파장이 이어졌다.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삼성의 위기감은 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삼성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참담한 패배를 당한 쪽은 LG였다.
지난 2월 국내 휴대전화 시장 규모(스마트폰 포함)는 184만 대였다. 지난 1월(210만 대)에 견줘 13% 줄어들었다. 삼성전자의 2월 휴대전화 판매대수도 1월(120만 대)보다 14만여 대나 줄었든 105만5천대였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57.3%로, 국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로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12월 49%, 올 1월은 57.1%였다. 아이폰이라는 복병을 맞았지만 나름 선전한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아이폰의 국내 도입에 따른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에 크게 힘입은 선방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옴니아 3종의 누적 판매대수가 52만 대를 돌파했다. ‘김연아 효과’도 있었다. 겨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선수를 모델로 한 마케팅에서 짭짤한 실적을 냈다. 김연아 선수의 이름을 딴 풀터치폰 ‘연아의 햅틱’은 누적 판매 130만 대를 넘어섰다.
하지만 LG전자의 국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은 지난 1월 21.7%(44만5천 대)에서 2월에 20.3%(38만5천 대)로 떨어졌다. LG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9월 30%대에서 최근 20%대로 10%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LG전자는 지난해 ‘아레나폰’을 비롯해 하반기에 내놓은 전략폰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고, 특히 내심 기대했던 ‘뉴초콜릿폰’ 역시 기대 이하의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중·장년층을 위한 ‘와인폰’을 하루 평균 4천 대 이상 판매하고 지난 2월 중순 나온 ‘롤리팝2’와 ‘캔디폰’이 각각 누적 판매대수 4만 대를 기록했지만, 스마트폰을 내놓지 못한 결과 시장점유율은 떨어지고 있다.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 부진은 시대의 흐름에 한 발씩 늦게 대응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말 최고경영자(CEO) 대상 강연회에서 “스마트폰 사업 진출이 경쟁사보다 늦어 많이 힘들었다”며 “실무진과 함께 미국에 가 애플 아이폰을 구입해 사용하며 연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충격이 3D TV 강화로증권가에선 스마트폰 대응력 부족 등 휴대전화 사업의 부진으로 LG전자의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전성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마트폰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데 LG전자 휴대폰 경쟁력은 이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2010년은 LG전자에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11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2009년 2월 15만원대였던 LG전자 주가는 최근 10만원대로 주저앉았다.
LG전자는 3월을 벼르고 있다. 안드로이드폰(KH-5200)을 선보이며 스마트폰 시장 잡기에 고삐를 죈다는 계획이다. 이미 LG전자는 지난해 11월 스마트폰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등 스마트폰 대응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LG전자 쪽은 “지난 2월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20%대에서 바닥을 다진 것”이라며 “안드로이드폰을 통해 시장점유율 회복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3D(입체) 영화 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또 다른 도전이다. 열기로 3D 영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3D TV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시장에선 3D TV가 올해 TV 시장을 뒤흔들 핫아이템으로 평가받는다.
시작은 바로 3월부터다. 두 회사는 가정에서 즐길 수 있는 3D TV 신제품을 출시하며 ‘3D TV 대전’에 들어간다. 두 회사는 올해 TV 사업 최대 목표 중 하나를 ‘3D 시장 선점’으로 내걸고 있어 이번달부터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25일 3D TV를 출시하면서 시장 선점을 공식화했다. 삼성 제품은 2D로 제작된 프로그램을 3D로 변환해 볼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LG전자는 3D TV 브랜드를 새로 출범시켰다. 바로 ‘LG 인피니아’다. 이달 출시되는 3D TV를 위한 고급 브랜드 전략이다.
두 회사의 ‘3D 혈전’ 예고편은 이미 나왔다. 두 회사의 최고위층이 주인공이었다. 지난 2월 구본무 LG 회장은 서울 타임스퀘어 CGV에서 를 관람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 등 20여 명의 계열사 CEO가 총출동했다. 구 회장은 영화 관람 뒤 “안경 없이 관람할 수 있는 3D TV 개발을 서두르자”고 당부했다. 3D 디스플레이는 크게 안경식과 무안경식으로 나뉜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은 대부분 안경식이다. 무안경식은 아직 기술적으로 초기 단계인 상태다. 구 회장의 이 말은 3D TV 기술 개발을 독려하는 뜻이 담겼다는 분석이다. 지난 1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멀티미디어 가전쇼(CES)에서 3D TV용 안경을 써본 다음 “안경은 다리 부분이 편해야 한다”며 안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안경 없이 볼 수 있는 3D TV보다는 우선 안경을 끼고 보는 3D TV를 위한 안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구본무 회장은 그보다 한발 앞서 안경 없이 보는 3D TV 개발을 주문한 것이다.
그룹 최고위층 직접 나서 기술 개발 독려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 최고경영자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상징이 담겨 있다. 이 전 회장의 행동을 시골 아저씨가 읍내 시장에서 돋보기를 사려고 안경을 써본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전 회장이 3D TV에 관심이 있음을 언론을 통해 암시한 것이다. 구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두 회사 최고위층의 관심은 결국 밑으로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다. 앞으로 흥미진진한 3D TV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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