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22일 서울 서교동에 있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사무실에서 만난 김병권 부원장은 “2010년 가계경제의 빠른 악화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사연은 ‘역량 있는 대안 정책’ 제시를 내걸고 2008년 1월에 설립된 연구소로, 손석춘씨가 원장으로 있다
<font color="#006699"> -2010년에 우리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져들 가능성은?</font>=2009년 1분기에 경제 하강 속도가 가팔랐기 때문에 그로 인한 반사 효과로 경제지표가 2010년 상반기까지 높은 수치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2010년 하반기에는 회복 속도가 크게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 속도는 2009년 4분기에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경기선행지수 등을 볼 때 2009년 12월 지표는 성장 속도의 고점으로 보인다. 경기순환상 2010년 초를 기점으로 성장 속도는 점차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 재정지출에 의존해 경기를 지탱하는 능력이 길어봐야 상반기까지만 가능할 것이고, 정부 지출 동력이 약화되면 출구전략을 사용하든 않든 어느 시점에서 민간이 성장엔진 바통을 이어받지 못하면 회복 속도는 둔화될 수밖에 없다.
<font color="#006699"> -정부에서는 2010년에도 지속적인 경제회복을 구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font>=2010년 경제는 ‘불확실성’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누구도 경제가 상승 또는 하락 분위기로 갈지 쉽게 점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변동성이 클 것으로 본다. 여러 경제성장률 전망치들은 1% 포인트가 넘는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의미가 별로 없는 숫자들이다. 세계경제가 더딘 회복 쪽으로 가고 있긴 하지만, 여기에는 불확실성 요인들이 표면화되지 않거나 개별 국가들이 경제를 잘 통제·조정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잠재적 여파는 여전히 살아 있다. 유럽국가들의 채무위기,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위기, 미국과 아시아의 자산가격 버블 우려 등이 있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각국이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런 불확실성들이 한꺼번에 전면화할 가능성도 있다.
<font color="#006699"> -2010년 ‘가계경제’ 사정은 어떻게 보나.</font>=사실 경제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고용 악화와 소득 정체가 가장 큰 문제다. 서민경제 차원에서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가계경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고용 측면에서 가계의 소득원이 제대로 돼 있어야 소비지출도 늘어날 것인데, 일자리가 불안하거나 임금이 깎이면서 가계 수입원이 불확실한 상태다. 정부에서 2010년 5.5% 성장을 말하고 있는데, 임금인상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반영한 임금상승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국가가 서민가계의 구매력을 확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미국 소비능력이 당분간 살아나기 힘들고, 중국도 미국 소비시장에 연계돼 있는데다 부동산 자산 거품 우려가 여전한 상태여서 수출이 계속 성장할지도 회의적이다. 즉 가계경제가 좋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font color="#006699"> -고용의 경우 희망근로 등을 통해 일자리를 계속 만들고 있다고 정부는 말한다.</font>
=수출과 내수 모두 2009년 4분기 들어 모든 지표가 플러스로 전환되고 있고 3분기부터 전년 대비 경제성장률도 플러스로 전환됐지만, 2009년 결산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로 나타나는 건 고용지표다. 연간 취업자 감소폭이 마이너스 10만 명에 이른다. 고용과 더불어 연평균으로 볼 때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또 하나는 실질소득이다. 2009년 실질소득은 마이너스 3% 안팎이 될 것이다. 거시지표는 경기회복을 가리키고 있는데 체감경기는 나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9년 취업자 감소폭이 월 단위로 플러스마이너스 1만 명을 기록한 데는 정부의 고용지원금 효과가 작용했다. 고용유지 지원금은 예년보다 무려 100배 정도 증가했는데, 예전 같으면 경제위기 국면에서 해고할 인력을 중소기업들이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에 부자 감세 등에 따른 막대한 재정적자로 인해 고용유지 지원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실업이 대폭 증가할 우려가 있다.
=각종 기관에서 성장률을 5%로 잡든 4%대로 잡든 2010년 고용 전망치는 취업자 수 증가를 10만∼20만 개로 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어느 정부에서나 연초만 되면 일자리 창출 대책을 쏟아냈다. 참여정부에서 마지막 3년간 평균 5% 경제성장을 하면서 매년 30만여 개 일자리를 만들었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경제가 회복된다면 30만 명 전후의 일자리가 창출돼야 맞다. 그러나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 등은 고용 전망을 평균 15만 명 정도로 내놓고 있다. 사실 공공·사회간접자본 건설투자가 연초부터 10% 이상 성장했으나 건설 부문 고용은 마이너스 10만 명대를 유지하면서 증가하지 않고 있다. 재정지출로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일용직 등 나쁜 일자리마저도 증가하지 않은 것이다.
<font color="#006699"> -금리가 인상되면 가계경제가 큰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란 경고도 많이 나온다.</font>=현재의 기준금리 2.0%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상황이므로 어느 시점에서는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다. 지금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이 크게 나빠지고 있는데, 선진국에서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가계부채 구모가 점차 줄어드는 반면, 우리는 오히려 더 늘고 있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금리가 1%만 올라도 대출 이자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가계마다 직격탄을 맞으며 부실화될 것이다. 사실 기준금리가 동결되어 있음에도 2009년 8월 이후 양도성예금증서 금리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은행도 가산금리 폭을 확대하면서 가계 부담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편, 부자 감세와 막대한 재정지출에 따른 재정적자로 인해 이제는 재정도 여력이 소진되고 있다. 이럴 때 만약 더블딥(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뒤 잠시 회복되었다가 다시 2분기 연속 침체에 빠짐)이라도 닥치면 정책적으로 쓸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진다.
<font color="#006699"> -가계대출 부채가 사상 최고치인 상태에서 은행만 배불리고 있다는 것인가.</font>
=가계경제를 중심에 놓고 다른 경제주체와의 관계를 한번 살펴보자. 기업은 고용을 줄이면서 가계 노동소득이 줄어들고, 국가는 감세정책으로 사회보장 지출을 줄이고 있다. 자산 쪽에서는 투자에서 손실이 날 가능성이 커지고 은행은 가계의 대출금 이자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구조다. 즉 기업·국가·자산·은행의 4개 경제 부문에서 가계경제가 총체적으로 손실을 감수하고 있는 형국이다. 외환위기 이후 다른 경제주체와의 관계에서 가계가 악순환에 빠져 있는 상태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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