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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겨진 삼성 인사, 이재용 어디로

사업부 개편 등으로 12월 중순 예상… 이 전무, 사장 파격 승진 가능성도
등록 2009-10-28 16:55 수정 2020-05-02 04:25

‘12월 삼성이 내놓을 카드는?’
매년 1월 정기 인사를 해온 삼성그룹이 내년 인사를 한 달 정도 앞당겨 올 12월에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삼성의 사장단·임원 인사는 여느 대기업 인사와 달리 삼성의 후계 구도와 맞물려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10월30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 이를 토대로 평가가 진행되고, 12월 중순 인사가 이뤄지면 3세 중심의 오너 경영 체제가 가시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11월16일 낮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을 나서 차량에 오르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11월16일 낮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을 나서 차량에 오르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삼성이 인사를 앞당기는 이유는 금융위기로 미뤄져온 인사 수요가 있는데다 대대적으로 사업부 개편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삼성전자를 완제품(세트) 부문과 부품 부문으로 분리한 삼성은 삼성테크윈에서 디지털카메라사업부를 떼어내 삼성디지털이미징을 출범시켰다. 삼성디지털이미징은 다시 삼성전자에 합병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삼성SDS도 내년 1월 삼성네트웍스를 흡수 합병할 예정이다. 계열사 개편과 사업부문 정리 규모에 따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은 대대적인 자리 이동이나 퇴출이 불가피하다. 대외적으로도 경영권 문제가 걸렸던 에버랜드 사건 재판이 일단락됐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운영 실적도 괜찮아 조기 인사의 모양새가 나쁘지 않다.

삼성 인사의 관전 포인트는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승진 여부다. 삼성 관계자는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에버랜드 경영전략 담당을 맡는 등 활동 반경을 넓히는 것처럼 이 전무도 이번에 승진해 계열사 CEO나 전자의 핵심 부서를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무는 2007년 1월 전무로 승진하고 삼성전자의 고객만족최고책임자(CCO) 자리에 있다가 지난해 4월 경영쇄신안 발표 뒤 CCO 자리마저 내놓았다.

이 전무 공격적 경영 행보 눈길

하지만 최근 이 전무는 대외 활동에 적극 나서고 계열사 사업장을 잇달아 방문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내려준 ‘경청’을 금언으로 과묵한 행보를 보였던 이전과는 다른 행보다. 이 전무는 지난 9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삼성전자 후원으로 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 경기장을 찾아 한국 취재진들과 첫 언론 인터뷰를 했다. 이 전무는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해 전기·테크윈·중공업 등 계열사 사업장을 차례로 찾아 직접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계열사 현안을 챙겼다. 이 전무는 삼성 창립기념일 행사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삼성의 창립기념일인 11월1일은 일요일이어서 기념행사는 10월30일 개최된다.

일단 이 전무는 한 직급 위인 부사장 승진 가능성이 점쳐진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가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하면 대표이사 선임 등 파격적인 승진 가능성도 있다.

이 전무가 승진할 경우, 삼성전자에 남을 것인지 계열사로 옮길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이 전무가 삼성 계열사로 이동하기보다 삼성전자 내 사업부문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계열사에서 CEO를 맡아 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돈다. 이와 관련해 삼성이 올해 세운 회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삼성은 올해 1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를 설립한 데 이어, 4월에는 삼성LED를 세웠다. 두 회사는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와 발광다이오드(LED)의 수요에 힘입어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 전무가 이들 계열사에 사장급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편법 승계’ 따가운 시선에 부담

삼성 사장단 회의 체제의 변화도 감지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퇴진과 함께 전략기획실이 해체된 뒤 그 공백을 사장단협의회가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 안팎에선 현 체제가 삼성의 의사결정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한다. 투자 확대나 신성장동력 사업 추진이 미뤄지고 계열 중복 사업의 조정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건희 전 회장의 복귀가 가시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유죄 확정 뒤 사면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경영 참여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이유다. 일단 옛 전략기획실 기능을 담당할 조직을 일부 복원하거나 이재용 전무의 역할을 더 강화하는 방안이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은 이 전무에게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한다. “60억원의 세금만 내고 180조원의 그룹 경영권을 상속받았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성은 이런 부정적인 시선을 희석시킬 ‘카드’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대대적인 투자 발표가 이미지 쇄신의 한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가 실적 발표 때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지주회사 전환, 순환출자 해소 등도 여전히 삼성이 풀어야 할 숙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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