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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불황 터널 벗어났나

금융시장·심리 지수 등 경기 지표 회복세… 청년고용률·지니계수 등 최악 기록해 양극화 심화 우려
등록 2009-08-07 15:38 수정 2020-05-03 04:25

7월31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2.55포인트(1.47%) 오른 1557.29로 장을 마쳤다. 코스피지수가 1550선까지 오른 것은 지난해 8월18일 이래 1년여 만이다. 유가증권 시장의 시가총액도 1년여 만에 800조원을 넘어섰다.

2분기 성장률·설비 투자 호전

7월31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2.55포인트(1.47%) 오른 1557.29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지수는 이틀째 상승하며 1550선에 올라섰다. 코스피지수가 1550을 넘은 것은 지난해 8월18일 1567.71 이후 11개월 만이다. 사진 연합 이상학

7월31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2.55포인트(1.47%) 오른 1557.29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지수는 이틀째 상승하며 1550선에 올라섰다. 코스피지수가 1550을 넘은 것은 지난해 8월18일 1567.71 이후 11개월 만이다. 사진 연합 이상학

최근 들어 한국 경제를 둘러싼 각종 경기지표들이 우상향하고 있다. 주식시장과 금융 지표는 물론 소비자심리지수(CSI),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등 실물경기를 반영하는 심리 지표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던 환율도 안정세를 지속 중이다. 한국 경제는 불황의 긴 터널을 벗어났는가? 아니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일까?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7월 소비자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CSI는 109로 전달보다 3포인트 올랐다. 이는 신용카드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 2002년 3분기(114)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기에 대한 소비자 심리를 반영하는 CSI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고, 100을 밑돌면 그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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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도 2.3%로 2003년 4분기(2.6%)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8.4%로 2000년 1분기(17.8%)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해 리먼 사태 뒤 급등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은 올 3월 1570원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보이며 1200원대까지 떨어졌다. 한때 180억달러까지 낮아졌던 외환 거래량도 리먼 사태 이전 수준인 230억달러대를 회복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2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제18차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3분기 성장률은 2분기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하반기 중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라며 “연간으로도 애초 전망치인 -1.5%를 실현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간의 경기회복을 보여주는 소비와 투자는 여전히 부진하다. 고용 사정이 풀리지 않는 것도 하반기 경제를 낙관하기 힘든 이유다. 경기회복은 3분기가 지나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수도권 거주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 하반기 소비 전망에 대해 64%는 ‘상반기와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24%가 ‘소비를 줄이겠다’고 밝힌 반면, ‘늘리겠다’는 사람은 12%에 그쳤다. 월소득 100만∼200만원인 가구에서는 줄이겠다는 응답자가 42.6%를 차지해 늘리겠다는 사람(8.5%)의 5배 수준이었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 모습. 최근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4채 중 1채꼴로 아파트값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06년 수준을 회복하는 등 부동산 투기 열풍이 심상치 않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 모습. 최근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4채 중 1채꼴로 아파트값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06년 수준을 회복하는 등 부동산 투기 열풍이 심상치 않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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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사정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선행 지표인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 수는 6월 8만3천여 명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 일자리를 찾아나선 구직 인원은 142만 명인 반면 기업들이 밝힌 채용 계획 인원은 3분의 1(53만 명) 수준에 그쳤다.

취업자 수가 지난 6월 4천 명 규모로 소폭 증가했지만 희망근로 등에 기댄 일시적 성격이 짙다. 정부의 한시적 일자리 지원정책이 끝나는 내년 초 고용 대란이 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우리나라 청년 고용률은 2000년 이후 최악으로 떨어졌다. 통계청이 7월29일 내놓은 ’2009년 5월 청년·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만 15~29살의 청년층 취업자는 404만2천 명으로, 41.3%의 고용률을 보였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1%포인트 하락했다. 고용률은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 수의 비율을 말한다. 청년층 고용률이 40%대라는 것은 절반 이상의 청년층이 일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경기회복세가 가시화될 때까지 확장적 거시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7월30일 열린 이명박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정부는 ‘출구 전략’(exit strategy) 논란에 대해서도 종지부를 찍었다. ‘준비는 하겠지만 시행은 시기상조’라고 청와대와 재정부 모두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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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전략은 과도하게 풀린 자금을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 없이 회수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그동안 ‘선제적 집행이 필요하다’는 주문과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맞서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출구 전략의 조기 시행을 주문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KDI는 7월2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사용한 비상 조치들을 이제는 거둬들여야 한다”고 밝혀 출구 전략 논란에 불을 댕겼다. 하지만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면서 “지금 출구 전략을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면서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줘선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확장적 재정정책 여력에 의문

하지만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계속 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올 상반기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부은 돈은 167조1천억원으로, 올해 전체 주요 사업비 257조7천억원의 65%에 이른다. 재정의 약발이 떨어지면서 3분기 성장률이 애초 목표했던 1%보다 낮은 0%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희망근로 참가자들이 7월16일 경기 시흥시 정왕동 그린테마동산 조성사업 현장에서 화단을 가꾸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희망근로 참가자들이 7월16일 경기 시흥시 정왕동 그린테마동산 조성사업 현장에서 화단을 가꾸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실탄이 부족한 이유는 정부의 부자 감세 탓이 크다. 소득세·법인세·종합부동산세·양도세 등 정부의 대대적인 감세정책으로 올해 11조2천억원의 세수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를 유보하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법인·소득세 인하는 이미 대내외에 약속한 것이어서 예정대로 추진한다며 밀어붙이고 있다. 대신 정부는 한때 술·담배세를 올리려고 시도했으나 ‘부자에겐 감세해주고 서민에겐 증세한다’는 국민 저항에 부딪혔다.

부족한 재정과 관련해 뾰족한 수단이 없다 보니, 정부의 행보는 ‘반기업 프렌들리’로 가고 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7월14일 수해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 안산 반월 시화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상반기에 정부 예산을 많이 썼기 때문에 하반기 예산은 줄어들게 돼 있다”며 “특히 대기업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증현 장관은 7월26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21세기경영인클럽 강연에서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거의 마무리됐다. 이제는 기업에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부는 특정 업종까지 지목하며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윤 장관은 7월15일 과천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보는 업종이 자동차 산업”이라며 “상응하는 움직임을 해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니계수도 ‘상당히 불평등한 단계’

기업에 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기업은 ‘강요’로 듣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7월21일 녹색 성장에 3조6천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가 갑자기 취소하고, 다시 5천억원을 늘려 발표했다. 재계 안팎에선 정부가 대기업들의 투자를 강하게 주문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투자액을 놓고 고민하다 투자 금액을 늘렸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위기 극복 과정에서 현 정부의 정책이 더욱 양극화를 심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서민층은 지난해 말 주식·부동산이 급락하는 과정에서 유동성 압박으로 자산을 내다팔아 손해를 봤다. 이를 견딜 만했던 부유층은 오히려 저점에서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해 자산이 불어난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도시가구의 지니계수는 0.325로 2007년(0.324)보다 0.001포인트 올랐다. 이는 통계청이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90년 이후 최고치다. 지니계수는 소득이 불균등하게 분배되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값이 1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높다. 통상 0.35 이상이면 소득분배가 ‘매우 불평등하다’고 평가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0.325까지 치솟아 ‘상당히 불평등한 단계’에까지 들어섰다.

최근 강남을 중심으로 치솟고 있는 부동산 가격은 잠재적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4채 중 1채꼴로 아파트값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06년 수준을 회복하는 등 부동산 투기 열풍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정부는 집권 이래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완화, 재건축 규제 완화, 투기지역 해제 등 부동산 규제를 푸는 정책을 계속 내놓았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낳은 유동성과 연 2.0%의 저금리는 집값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단기 부동자금이 800조원 이상인 풍부한 유동성, 저금리, 불확실한 금융시장 등 돈이 부동산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최근 들어 주택담보대출(LTV) 규제 방안을 발표하는 등 투기 억제책을 내놓았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온적 투기 억제책에 그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부동산 거품 다시 뇌관으로

고유선 대우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하반기에 약간의 조정이 있겠지만 경기회복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반기엔 자동차 판매 둔화가 예상되는 등 내수가 경기를 받쳐줄 수 있느냐가 경기회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부동산의 경우 정부가 규제를 대폭 완화해놓은 상황에서 유동성도 넘쳐나 부동산 거품을 잡을 수 있을지는 낙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하반기 경기는 민간에서 소비가 늘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서민과 중산층의 고용이 안정돼야 한다. 서민과 중산층의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 이를 소비로 유도하는 정책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경제위기 뒤에 따라올 수 있는 분배 악화와 자산 양극화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의 재분배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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