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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안개 뚫고 국산 소형차 질주

현대 베르나, 미국 시장서 약진… 기아 모닝, 국내 판매 호조
등록 2009-04-02 15:15 수정 2020-05-03 04:25

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침체로 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하지만 소형차로 중무장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씽씽 내달리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선 몇 달 동안 시동을 켜지 못하는 차가 수두룩할 정도로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인도·러시아 등 신흥시장도 마찬가지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불황의 안개 뚫고 국산 소형차 질주

불황의 안개 뚫고 국산 소형차 질주

위험관리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

미국 제너럴모터스(GM)·크라이슬러·포드 등 빅3는 경기 불황으로 고전 중이다. 미국에선 중대형 차종 중심으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빅3가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포드는 지난해 3분기 매출이 34% 줄었다. 승승장구하던 일본 업체들도 2분기부터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세로 돌아섰다. 유럽 업체들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임러는 미국과 서유럽 시장 판매 부진으로 3분기 영업이익이 무려 66%나 감소했다.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면서 자동차 기업의 옥석이 가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는 3월11일 ‘세계 자동차 산업의 구조재편 전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세계 20개 자동차 업체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경제위기 충격과 대응능력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현대자동차와 독일의 폴크스바겐 등 충격은 작고 대응력이 강한 업체가 약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GM과 포드 등 충격은 크고 대응력이 약한 기업은 쇠퇴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또 대응력도 크지만 충격도 큰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는 일시적인 감산으로 시장점유율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응력과 충격이 모두 작은 기아차와 중국 창안자동차 등은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위기 극복과 새로운 활로를 찾는 과정에서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개발 경쟁이 자동차 산업 판도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며 “급변하는 상황에선 생산시설 규모보다 시장과 제품 다변화 등 위험관리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시장과 마찬가지로 국내 자동차 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해 내수 판매는 2007년에 견줘 4.5%(5만7천 대) 줄어든 121만6천여 대가 팔렸다. 2004년 이래 계속 성장하던 국내 자동차 시장이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반면 지난해 수입차 시장은 2007년보다 15.5% 늘어난 6만2천 대로, 수입차 점유율이 4.2%에서 5.1%로 뛰었다. 미쓰비시·닛산 등 일본 대중차 브랜드가 새로 진입하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경차도 불황과 고유가로 소비가 늘면서 2007년보다 150% 늘어난 13만4천대가 팔렸다. 업체별로는 기아의 약진이 돋보였다. 기아는 경차 모닝 판매 호조와 모하비, 포르테, 로체 이노베이션 등 다양한 신차 출시로 2007년보다 16.2% 증가한 31만6천 대를 팔아치웠다. 시장점유율 35%를 올려 1994년 이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올해 들어서도 국내 자동차시장엔 경차와 소형차를 중심으로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던 중·대형차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경차를 포함한 소형차 판매 비중이 40%대로 올라섰다. 아반떼는 지난해 6월 이후 20개월만에 쏘나타를 제쳤다. 올 1~2월 경차를 포함한 소형차 내수 판매 비중은 지난해 36.6%에서 42.5%로 뛰었다. 경차 점유율은 2007년 말 5.5%에서 올 1~2월 12.9%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소형차도 3만9945대가 팔려 지난해 점유율 22.6%에서 29.6%로 크게 증가했다.

수출 시장에서도 국내 업체들은 소형차를 무기로 선방하고 있다. 올 2월 프랑스 자동차 시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3% 줄었지만 한국 차는 3171대가 팔려 판매량이 3.9% 늘어났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2월 미국 시장 점유율이 7.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GM(-53.1%), 크라이슬러(-44.0%), 포드(-49.5%) 등은 하락했다. 일본 빅3도 도요타(-39.8%), 닛산(-37.1%), 혼다(-38.0%) 등은 모두 두 자릿수 하락세를 보였다.

현대·기아차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린 것은 소형차였다. 2월 현대 베르나(수출명 액센트)는 미국 시장에서 4334대가 팔려 30% 판매량이 증가했다. 아반떼(수출명 엘란트라)도 8899대가 팔려 31.8% 늘었다. 반면 중대형차인 쏘나타(-44.4%), 그랜저(-80.4%) 등은 판매가 줄었다.

씽씽 달리고 있는 소형차는 현대·기아차뿐만이 아니다.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GM대우 등을 포함해 국내 완성차 5사의 소형차 수출 비중은 크게 늘었다. 5개사 수출 비중 변화(지난해 1월→올 1월)를 보면, △경차 9.2%→11.4% △소형차 54.6%→63.2% △중형차 6.0%→4.9% △대형차 1.6%→1.2% △스포츠실용차(SUV) 23.1%→17.5% 등으로 나타났다. 경차와 소형차를 합친 수출 점유율은 63.8%에서 1년 새 74.6%로 늘었다.

일본 빅3, 엔화 강세로 고전

김철묵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자동차 시장 불황기에는 저가 소형차 비중이 늘어나고 중대형 차종 판매 비중이 감소한다. 소득 감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자들은 저가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유지비를 절약하기 위해 연비가 우수한 소형차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1996년 국내 경차 판매 비중은 2.9%(4만4천 대)에 그쳤으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바로 뒤인 98년엔 20.3%(15만7천 대)로 급격히 증가했다. 중대형 자동차 비중이 높은 미국에서도 2001년 불황 때 전체 자동차 판매는 1.3% 줄어들었지만 소형차 판매는 8% 증가했다.

정희식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에서 픽업과 SUV 수요가 크게 줄어들어 생산 차종을 중소형 차급으로 변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형차 개발에 강점이 있는 일본 및 유럽 업체들뿐만 아니라 경영위기에 빠진 GM, 포드 등 미국 업체들까지 소형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소형차 부문에서 한국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일본 회사들이 엔고로 어려움을 겪는 것도 한국차의 경쟁력을 높이는 이유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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