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LG전자에 밀려 4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는 처지…유럽과 중국업체에 끼어 세계시장에서도 위축되는 추세</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삼성전자의 생활가전 부문(냉장고·세탁기·에어컨·청소기 등. TV는 제외)은 2002년 1200억원대의 흑자를 끝으로 4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06년에 삼성전자가 총매출 59조원, 영업이익 6조9천억원을 기록했음에도 생활가전 부문은 적자(-1800억원)를 벗어나지 못했다. 글로벌 일류기업인 삼성전자의 이름을 무색하게 만드는 실적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지난 3월9일 생활가전에 대해 “한국에서는 할 만한 사업이 아니다”고 말했다.
디지털 가전도 한계 드러내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가전산업을 육성하면서 기술개발 경험을 축적해 고도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생활가전 사업은 2000년대 초부터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은 “생활가전 산업은 미래산업이 아니다”며 축소를 권고했다. 그 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핵심 기술과 디자인 개발 등을 통해 프리미엄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다. 특히 LG전자는 매출액의 5%를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LG전자 생활가전 부문은 삼성전자와 달리 2005년 4726억원, 2006년 4297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휘센(에어컨)·트롬(세탁기)·디오스(냉장고)로 대표되는 LG전자 백색가전이 삼성전자 가전보다 앞서는 이유는 뭘까? 업계에서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LG전자 생활가전이 삼성을 따라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가전은 2003년에 최초로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던져줬지만, LG전자는 그 해 약 5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LG전자는 외환위기 이후에 빅딜을 통해 반도체 사업을 정리하고 생활가전 사업에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한 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휴대전화를 주력으로 하고 생활가전은 ‘단지 여러 사업부문 중 하나’로 여겼다. 결국 생활가전에서 수년째 적자를 내면서 이제 “그만둘 수도 없고 계속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이른 것이다. 삼성전자가 진행 중인 투자를 보면,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생활가전 신·증설에 투입한 금액은 70억원에 불과하다. 생산설비 보완에 798억원을 투입했을 뿐 생산 능력 증가를 위한 투자는 없다. 2006년 생활가전 부문 투자액(202억원)은 삼성전자의 2006년 총투자액(9조2182억원)의 0.25% 정도에 불과하다.
산업연구원 이경숙 연구위원은 “생활가전은 삼성전자의 주력사업 부문이 아니라서 역량 투입 순위에서 밀려왔다”며 “삼성전자는 비록 생활가전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 다른 데서 이익을 많이 내고 있기 때문에 가전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LG전자는 생활가전 부문 자체가 주력사업에 속하기 때문에 전력투구하고 신흥시장에도 일찍 진출했다. 이런 점이 최근 몇 년 동안 극명한 영업 성과의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LG전자는 전체 매출액에서 생활가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6년 3분기 현재 25.6%를 차지한 반면 삼성전자 생활가전은 총매출액의 5.3%에 불과하다.
백색가전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어 사양산업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한쪽에서는 2000년대 들어 첨단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실제로 이런 디지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글로벌 가전업체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한때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던 도시바가 냉장고·세탁기 등 백색가전 사업을 정리했고, 히타치도 백색가전 사업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물론 LG전자·삼성전자는 저가 백색가전에서 디지털 가전, 프리미엄 가전으로 빠르게 옮겨갔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디지털 강국의 역량이 디지털 가전의 경쟁력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브릭스를 공략하는 중국 업체
그러나 디지털 가전도 한계는 있다. TV와 오디오 등 영상가전은 반도체 기술력의 뒷받침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생활가전에서는 첨단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다 해도 신규 수요를 크게 일으키지 못한다. LG경제연구원 배수한 책임연구원은 “생활가전은 김치냉장고의 등장처럼 콘셉트 자체가 확 바뀌지 않는 한 디지털이 접목된다 해도 대대적인 교체 수요가 일어나는 건 아니다”며 “기존 생활가전을 쓰고 있는 소비자들이 특별히 불편을 겪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생활가전에서는 디지털을 활용해 제품 차별화를 꾀하더라도 소비자들을 끌어오기 어렵다는 데 삼성전자의 고민이 있다. 삼성전자 쪽은 “한국 주부들만 유독 최신 프리미엄 가전제품을 선호할 뿐 해외에서는 아직도 백색, 실버 형태가 주류”라고 말했다. 그래서 일까? 삼성전자가 지난해 앙드레김이 디자인한 냉장고를, LG전자가 아트 디오스 냉장고를 선보이는 등 프리미엄 가전 전략은 주로 ‘디자인 혁신’에 집중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외국 가전업체들이 국내 시장을 크게 잠식할 듯 보였으나 외산 업체들의 국내 시장 공략은 아직 위협적이지 않다. 저가형과 소형가전에서 내수시장에 작은 충격을 주고 있을 뿐, 외국 가전업체들은 LG·삼성전자의 견고한 벽 앞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 하이얼이나 미국의 월풀 등 해외 가전업체들은 아직은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 기술력과 디자인 경쟁력에서 우리를 따라오지 못하고, 특히 외산 가전업체들은 국내 유통망을 갖추지 못해 국산 업체들과 승부를 하기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사실 LG·삼성전자의 생활가전 국내 매출액 중 전속 대리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일 정도로 국내 업체들은 막강한 유통망을 갖추고 있다. 애프터서비스망도 외산 가전업체들이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LG전자 관계자는 “국내 가전제품 소비자가격 중 애프터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은 편인데, 그만큼 한국 소비자들은 애프터서비스를 중시한다”며 “외국산 가전은 애프터서비스에서 밀리기 때문에 한국 시장을 뚫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LG·삼성전자가 내수 생활가전 시장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생활가전 부문의 수익성은 왜 악화되고 있는 것일까? 삼성전자에 비하면 그런대로 수익을 내고 있긴 하지만 LG전자도 생활가전의 수익성 저하를 고민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LG전자의 에어컨 수출은 2005년 1∼9월의 8499억원에서 2006년 1∼9월에는 7882억원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에 냉장고 수출도 5748억원에서 5540억원으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LG전자의 생활가전 부문 영업이익은 2005년 4700억원에서 2006년 4200억원으로 감소했고, 영업이익률도 2004년 10%대에서 2005년 8.1%, 2006년 7.4%로 떨어졌다.
사실 우리나라 가전산업은 1990년 후반부터 이미 수출성장률이 0.3%로 떨어지는 등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내수시장도 1996년 3조9천억원에서 2000년 3조5천억원으로 줄었다. 가전제품 보급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전세계적으로 낮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내수시장에서 냉장고 평균 가격은 2004년 78만8천원, 2005년 81만5천원, 2006년 81만9천원으로, 세탁기는 2004년 43만1천원, 2005년 41만원, 2006년 41만9천원으로 별다른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반면 원자재 가격이 올라 비용 압박이 거세지고 있고, 시장경쟁 과열에 따라 수익성은 낮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가전업체들이 돌파구로 삼은 건 당연히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브릭스’(BRICs) 신흥시장이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고성장 추세에 있는 신흥시장의 소득수준 향상이 백색가전의 신규 수요를 크게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업체 등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해외 가전시장에 빠르게 침투하면서 국내 가전업체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의 가전업체 하이얼은 2005년에 미국 소형 냉장고 시장의 20% 이상을 점유했고, 대형 주방가전 시장 시장점유율을 2005년에 3.9%까지 높였다. 월풀·일렉트로룩스·GE에 이어 LG전자와 업계 5∼6위를 다투는 지위까지 올라선 것이다.
한국 생활가전은 ‘샌드위치’ 형국에 빠져들고 있다. 유럽·북미 시장에서는 월풀·일렉트로룩스 등 토종 로컬 브랜드들에 비해 브랜드 경쟁에서 뒤처지고, 신흥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에 비해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북미 시장의 생활가전 양판점에 진열된 세탁기가 10대라면 월풀과 LG전자 브랜드가 4∼6대이고 삼성전자 브랜드가 1대꼴이다. 인도 시장의 경우 2005년에 LG전자의 냉장고·세탁기·에어컨·전자레인지가 모두 시장점유율 30%대를 유지했으나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 현지 가전업체들의 가격 공세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20%대로 떨어지고 있다. 사실 백색가전 시장은 혁신적인 기술보다는 원가경쟁력이 승부를 가르는 무기다. 따라서 신흥시장의 가전 메이커들과의 가격경쟁을 위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생산 비용이 싼 해외로 생산 거점을 대거 옮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타이·말레이시아·멕시코·인도 등 6개 해외법인 공장에서 생활가전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일찌감치 북미·중동·멕시코·폴란드·터키·러시아 등에 생산 거점을 구축한 LG전자는 생활가전 매출의 절반을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다. LG전자 쪽은 “냉장고와 세탁기 등은 크고 무겁기 때문에 수출하면 운반 비용이 많이 들어 세계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라서 현지 생산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욱 어려운 건 러시아·인도 등 신흥시장의 수요도 정체상태에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연구원 이경숙 연구위원은 “신흥시장에서도 구매력을 가진 층에서는 이미 생활가전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며 “새로운 신흥시장이 등장하지 않는 한 전세계 가전시장은 수익률 저하를 감수하면서 기존 시장을 나눠먹는 구도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업을 접을 가능성은 없어
물론 삼성전자가 생활가전 사업을 접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삼성전자 쪽은 “국내에서 삼성이 소비자와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이 가전과 휴대전화인데, 삼성의 브랜드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도 생활가전에서 손을 뗄 수는 없다”며 “내수시장은 괜찮은 편인데, 해외 영업 손실이 커서 생활가전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생활가전이 해외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게 되고, 결국 국내 생활가전 사업도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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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전파하는 위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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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최근 “국내 주력 업종의 수익률 저하가 심각하다. 한국 경제가 5∼6년 뒤에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며 위기론을 설파해 주목을 끌고 있다. 삼성전자는 생활가전 부문에서 적자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반도체·휴대전화·디지털TV 등 전체 사업실적으로 보면 매년 6조∼7조원대의 이익을 올리고 있는 초우량 기업이다. 그러나 이 회장이 위기를 언급했듯,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57조∼59조원에서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2004년에 사상 최대인 12조원대를 기록했으나 2006년에는 6조원대로 추락했다. 매출액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액)×100)도 2002년 18.7%, 2003년 16.5%, 2004년 20.8%, 2005년 14.0%, 2006년 11.7%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매년 10% 이상씩 매출이 성장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주력 사업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제는 성장동력이 크게 둔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생활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도 떨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국내 시장점유율(삼성전자가 밝힌 추정치)은 에어컨의 경우 2004년 41.1%, 2005년 43.1%, 2006년 40.4%로, 세탁기는 2004년 43.1%, 2005년 45.3%, 2006년 39.6%로 떨어졌다. 또 냉장고는 2004년 44.3%, 2005년 43.5%, 2006년 46.0%다. 삼성전자의 생활가전 사업이 갈수록 침체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예전에 삼성전자 수원공장에서 생산됐던 전자레인지는 한때 세계 시장점유율 1위까지 올랐으나 2004년에 말레이시아로 생산라인이 이전됐다. 또 수원사업장에 있던 에어컨과 세탁기 공장을 2004년에 삼성전자의 별도 법인(자회사)인 삼성광주전자로 이전했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생활가전 총괄부문의 생산실적은 ‘제로’(0)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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