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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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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잊지 않기 위해… ‘남태령 대첩’ 매콤·발랄하게 기록하다

영화 ‘남태령’ 김현지 감독 인터뷰,
“다양한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한 역사…영웅 아닌 구질구질한 동지 이야기로 봐달라”
등록 2026-05-14 21:57 수정 2026-05-18 11:49
영화 ‘남태령'을 연출한 김현지 감독이 2026년 5월13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영화 ‘남태령'을 연출한 김현지 감독이 2026년 5월13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2024년 12월21일, 1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짓날’이었다. 살을 엘 듯한 추위가 몰아친 체감기온 영하 20℃의 날씨였다. 경남 진주와 전남 무안에서 출발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트랙터 17대 행렬이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멈춰 섰다. 경찰의 차벽이 농민들의 앞길을 막았다. 폭력적인 진압이 이어졌다. 완전한 고립이었다. 한 청년 농업인이 트위터(현 엑스·X)에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남태령으로 모여달라!”는 트위트가 빠르게 확산했다. 손에 반짝이는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고갯길을 메웠다. 민중가요와 케이팝이 함께 울려 퍼지는 신나는 ‘동짓날 기나긴 밤 투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훗날 ‘남태령 대첩’이라 명명된 28시간의 투쟁이었다.

 

‘남태령 대첩’을 지역의 눈으로 알리고자

 

12·3 계엄을 일으킨 윤석열의 체포·구속을 요구하며 시작된 농민 시위에 2030 청년,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지역민, 청소년 등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결합했던 ‘그날’을 기록한 매콤·발랄한 다큐멘터리 ‘남태령’이 2026년 5월20일 개봉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2026년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젠지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출생)식 텐션(활기·에너지)이 흘러넘치는 이 작품을 만든 김현지 감독을 5월1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 ‘남태령’은 2024년 12월21일 트랙터를 끌고 온 전농 소속 농민들이 남태령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막히자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달려온 시민들의 28시간 투쟁 기록을 담았다. 시네마달 제공

다큐멘터리 ‘남태령’은 2024년 12월21일 트랙터를 끌고 온 전농 소속 농민들이 남태령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막히자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달려온 시민들의 28시간 투쟁 기록을 담았다. 시네마달 제공


“저는 엠비시(MBC)경남 피디로 일하는 터라 전봉준 투쟁단이 2024년 12월16일 진주에서 출발할 때부터 취재 중이었어요. 그러다 남태령에 발이 묶인 투쟁단 소식을 유튜브와 트위터를 통해 접했죠. 우리 지역 농민들은 서울에 못 들어가? 왜? 처음엔 빈정이 좀 상하기도 하고…. 남태령 대첩을 다 지켜본 뒤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역의 눈으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하필 남태령이었냐는 물음에 김현지 감독은 이런 대답을 내놨다.

물론 영화로 만들 꿈은 꾸지도 않았다. 처음엔 12·3 내란 뒤 엠비시경남 유튜브 채널 엠키타카에 올리던 ‘국민정신건강프로젝트’의 열세 번째 편에 남태령 1박2일을 다뤘다. ‘무단’으로 갈무리한 수백 수천 개의 트위터 글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들 뭐야? 트위터와 현실 광장을 이중으로 공명하게 했잖아? 이거 한번 제대로 정리해야 하는 것 아냐?” 그렇게 시작된 정리 작업의 결과물이 결국 영화가 됐다는 설명이다. 사실 계엄·탄핵 국면을 거치며 “서울 시민들에게 빚졌다”는 부채감도 컸단다. 내란의 밤, 지역에서는 감히 당장 국회로 달려가겠단 생각을 하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영화 관람인데 트위터 하는 느낌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트위터 게시글과 리트위트 글이 속도감 있게 교차한다. 관객이 마치 지금 현재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트위터를 하며 온라인 소통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남태령 대첩을 주도했던 2030 여성들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까닭”이다. 방송사 피디답게 리드미컬한 박자감마저 감도는 편집기술도 일품이다. 트위터 화면과 함께 남태령 대첩 당시 활동했던 여러 트위터리안의 인터뷰가 삽입된다. 전봉준 투쟁단 소식을 알리며 참여를 독려했던 ‘향연’, 언론보도를 계속해서 교차 확인해 엄청난 양의 속보를 전달했던 ‘에스텔 뉴스 계정’,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투쟁에 참여했던 ‘퀴어 유기체 아저씨’, 계엄·탄핵 국면이 낳은 최대의 화제 인물 ‘내향인 깃발 기수’….

트위터 계정 속 여러 인물을 화면 앞으로 끌어내기도 쉽지 않았을 듯하다. “‘국민정신건강프로젝트’ 할 때까진 트위터 멘션 등을 무단으로 사용했어요. ‘나라가 이 모양인데 이해해주겠지’라는 심정이었달까? 하하하. 그런데 정식으로 영화에 사용하려면 허락을 구해야 할 것 같았어요. 한땀 한땀 수작업으로 트위트를 그러모아 엑셀로 정리한 뒤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한테 연락했어요. 연락 수단이 오직 디엠(DM·비공개 대화 기능)밖에 없었어요. 저는 구세대(X세대)라 디엠이 익숙지 않아 고생 좀 했죠. 마치 팬미팅을 요청하는 기분으로 인터뷰 요청을 했달까?”

대부분의 트위터리안이 오직 ‘남태령을 전해야겠다’는 목표로 인터뷰에 응했다. 다만,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유명할수록 사이버불링(온라인 괴롭힘)을 많이 당해본 터라 불안해했죠. 얼굴을 다 내놓고 인터뷰에 응한 향연(김후주)이나 퀴어 유기체 아저씨(황승유)는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방송이면 모자이크를 쓰면 되는데, 영화는 그게 안 되니까 최소한의 안정감을 주기 위한 방안을 짜내야 했어요.”

예를 들어 내향인 깃발 기수는 사후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통해 귀여운 다람쥐 탈을 씌웠고, 속보의 제왕 에스텔은 형사 가제트의 빌런처럼 등과 팔, 의자만 보이도록 하는 등 나름의 특성을 살려 촬영했다. 일부는 마스크를 쓰고 촬영했다.

농민과 손을 마주 잡은 2030 성소수자의 모습은 남태령의 연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시네마달 제공

농민과 손을 마주 잡은 2030 성소수자의 모습은 남태령의 연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시네마달 제공


영화는 ‘네임드’ 트위터리안 외에도 남태령 투쟁을 함께한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촘촘하게 조명한다. 허기진 시위대를 위해 음식 선결제를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오병이어의 기적’, 전철역에서 시위대가 있는 곳까지 무료 탑승을 도와준 택시 기사들의 ‘시위장 셔틀’, 추위를 녹여주려는 자발적 모금이 만들어낸 ‘난방 버스’, 봉쇄된 경찰 차벽을 뚫고 음식을 날라준 배달기사들의 ‘구국의 배달’…. “28시간 동안 남태령은 정말 거대한 ‘돌봄의 현장’이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보듬었죠.”

 

‘논바이너리’ 몰랐던 농민 “그렇구나, 알아두겠다”

 

김현지 감독은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전작인 ‘어른 김장하’(2023)와 ‘남태령’이 작품의 결은 완전히 다르지만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김장하 선생을 보면서 그냥 ‘훌륭한 분이구나’로 그치면 안 되잖아요? 그분이 홀로 외롭게 진주라는 한 도시를 돌보는 큰 어른 역할을 하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가 좋은 어른이 돼 그 부담을 나눠서 져야 하는 거잖아요. 남태령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짐을 나눠 지는 현장이었죠. 나를 위해 남을 돌봐야 한다는 깨달음. 김장하 선생의 뜻이 어떻게 보면 남태령에서 폭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이 영화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눈부신 연대를 이뤄낸 소수자들이 시위 현장에서 했던 발언이다. “계급 갈등을 가리기 위한 불쏘시개로 던져진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갈등의 싸움판에서 승자 없는 싸움을 하고 있던 소수자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잖아요. 나이 지긋한 농민들이 ‘퀴어’와 ‘논바이너리’(성별을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잘 모르죠. 2030세대도 농민 의제에 대해 잘 모르죠. 그래도 ‘당신 말을 듣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잖아요.”

영화에는 이런 태도를 응축한 장면이 나온다. 남태령에 논바이너리 깃발을 들고 있는 2030에게 한 농민이 ‘딸들 수고했어’라는 말을 건네자 그는 ‘저희는 사실 딸이 아니에요’라고 답한다. 그러자 그 농민은 ‘그렇구나. 알아두겠다’고 했단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가 상대의 사정을 다 알지 못해도, 전부 이해는 못해도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태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남태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런 태도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그간 12·3 내란 사태와 탄핵을 다룬 여타의 영화와는 달리 이 모든 과정을 경쾌하고 발랄하게 그려낸다. 내향인 깃발을 비추며 ‘이분들 나오면 게임 끝’이라는 멘션이 흐르고, 한 누리꾼이 남태령 투쟁에 합류하기 위한 짐을 싸며 따뜻한 발가락 양말 등의 필수용품을 소개하는 브이로그를 보여주는 식이다. ‘이렇게 귀엽고 매콤한 투쟁, 이게 남태령 코어야!’라는 멘션엔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과도한 비장함은 오래가지 못해요. 박근혜 탄핵 때와 이번이 다른 점이 그거예요. 화는 나지만 다들 웃으며 노래하고 춤을 추고 에너지를 분출했다는 것.”

응원봉을 들고 농민들과 연대해 남태령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모습. 시네마달 제공

응원봉을 들고 농민들과 연대해 남태령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모습. 시네마달 제공


28시간의 대치 끝에 경찰 차벽이 공식 철수하고, 길이 열려 트랙터들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도착하며 남태령 투쟁은 승리로 끝을 맺었다. 영화는 남태령 이후도 기록한다. 남태령에서 함께한 ‘2030 말벌 동지’와 ‘티케이(TK·대구경북)의 딸들’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남태령 소녀’라는 이름으로 파업기금을 보내고 투쟁 현장에 합류해 힘을 보태는가 하면 대구 성서공단 투쟁에도 출동한다. 농민들은 ‘퀴어축제’에 부스를 차리고 기념품을 나눠주며 함께 즐긴다. 집회 이후 자발적으로 꾸려진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는 당시의 발언과 참여자 기록을 온·오프라인으로 아카이빙하며 활동을 이어간다. 이들은 말한다. “남태령 승리의 경험은 소수자끼리 연대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고.

 

남태령에서 외친 ‘차별금지법’은 언제쯤

 

하지만 또한 영화는 당부한다. 남태령이 완전무결한 신화나 전설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고, 남태령을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동지들의 이야기로 봐달라고. “우리는 다들 흠결이 있고 각자가 구질구질함이 있어요. 그걸 서로 조금씩 용인하고 대화하면 돼요. 남태령은 그렇게 만들어진 연대의식으로 동지가 됐던 어느 날의 승리인 거죠. 신화가 되면 재현될 수 없잖아요. 초인적인 영웅을 기다리는 대신 동지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개척한 2030의 유연함을 배워야죠.”

남은 과제도 많다. 남태령 고갯길에서 외쳤던 ‘차별금지법’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계엄·내란 세력 청산도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저기 혐오와 증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안타깝고 슬프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일상을 살며 매일매일 각자의 농사를 짓고, 정치를 해야겠죠. 신호등이 바뀌듯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바뀔 순 없잖아요. 저도, 현장에 있었던 사람도, 유튜브 생중계를 지켜본 사람도 사회를 보는 태도와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동짓날 밤, 영하 20℃의 추위를 녹여냈던 ‘느슨한 연대’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서로 몸을 부대끼며 체온을 조금씩 올렸던 그 밤의 기억은 앞으로의 더 큰 승리를 위한 ‘씨종자’가 될 터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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